70년만에 '왕의 행렬'… 영국인들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

한재범 기자(jbhan@mk.co.kr) 2023. 5. 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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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엄궁·웨스트민스터 사이
황금마차 지나는길 인파 몰려
선왕 예복 재활용 전통 부각
여사제 성경 낭독 다양성 추구
"내 왕 아니다" 시위 52명 체포

◆ 찰스3세 대관식 ◆

①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대관식을 마친 후 런던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②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성 에드워드 왕관'을 찰스 3세에게 씌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③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가 황금색 마차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타고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에서 버킹엄 궁전으로 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진행된 찰스 3세 영국 국왕 대관식의 하이라이트는 '왕의 행렬'이었다. 찰스 3세는 커밀라 왕비와 함께 황금색 '다이아몬드 주빌리' 국영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을 출발해 대관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으로 향했다. 65년을 기다린 대관식 장소로 가는 왕의 행렬이다. BBC 방송에 따르면 행렬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시내 일대에는 비가 내렸다. 그럼에도 이미 길가에는 많은 시민이 진을 치고 있었으며, 세기의 행사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명당'을 차지하려고 일찍부터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있었다. 찰스 3세 국왕과 커밀라 왕비가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을 나서자 이를 맞은 인파는 일제히 환호를 보냈다.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찰스 3세에게 '성 에드워드 왕관'을 씌웠다. 영국 국왕이 일생 단 한 번 착용하게 되는 이 왕관은 무게가 2.23㎏에 달하며 보석이 무려 444개 박혀 있다. 이어 웰비 대주교는 "신이여,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라고 외쳤고 초청된 국내외 내빈들은 이를 제창했다.

대관식은 1000년 가까이 이어져온 왕실 전통의 틀을 대체로 따랐다. 대주교 승인, 서약, 도유(성유 바르기), 왕관 수여, 즉위 등 5개 주요 의식이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특히 왕실 일원들의 의복은 영국민의 추억을 자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찰스 3세는 영국 국왕이 대관식 때 전통적으로 입는 화려한 국가예복을 착용했는데, 할아버지인 조지 6세가 1937년 대관식 때 입었던 예복을 재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관을 쓸 때 입었던 금색 '제국 망토' 역시 1821년 조지 4세의 대관식을 위해 처음 제작된 '선왕의 유산'이다.

④ 찰스 3세 국왕 대관식을 맞아 런던 버킹엄 궁전 앞에 인파가 운집해 있는 가운데 한 시민이 왕관 모양의 장식물을 머리에 쓰고 축하하는 반면, 군주제 반대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있다. 로이터·AP연합뉴스

커밀라 왕비가 착용한 목걸이와 귀걸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53년 대관식 때 착용한 것이었다. 찰스 3세의 맏며느리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은 선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 전 20대이던 시절 조지 6세에게서 받아 애용하던 페스툰 목걸이를 착용했다. 왕실의 주요 일원들이 대관식을 맞아 오래전부터 이어온 왕실의 전통을 부각시킨 셈이다.

다만 일부 의식에서는 '다양성'이라는 시대 변화도 반영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이 열렸던 1953년에는 유색인종 출신이 영국 국민의 1%였지만 현재는 25%에 달할 정도로 다양해진 만큼 전통과 현대적 가치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도다.

먼저 영국 국교인 성공회 예배 형식으로 진행되는 대관식 의례에 불교,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각 종교를 대표하는 이들이 초청됐다. 대관식 의례에 타 종교 인사들이 참석한 것은 사상 최초로, 영국 내 확대되고 있는 종교적 다양성을 배려하기 위한 조처로 읽힌다.

⑤ 대관식이 끝나고 버킹엄궁으로 돌아온 찰스 3세와 왕실 가족들이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날 찰스 3세가 대관식 선서에 "모든 믿음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언한 것도 선왕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때와 뚜렷하게 달라진 대목이다. 대관식에서는 처음으로 여성 사제가 성경을 낭독하는 등 여성의 역할이 이전에 비해 부각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대관식의 변화를 두고 "이번 대관식은 1000년의 전통에 현대적인 접근을 혼합해 치러졌다"며 "이 같은 시도는 군주제의 유의미성을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왕실의 시도"라고 설명했다.

한편 군주제를 반대하는 이들이 시위를 벌여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날 영국 경찰은 대관식을 전후로 소란 행위, 공공질서 위반, 치안 방해, 공공 방해 모의 등 혐의로 52명을 체포해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 이 중 반군주제 단체인 '리퍼블릭' 회원 등도 포함됐다. 이 단체 회원 수백 명은 런던 중심가에 모여 '내 왕이 아니다(#NotMyKing)'라고 적힌 노란색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런던 외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와 글래스고, 웨일스 카디프 등 영국 내 다른 지역에서도 수백 명이 모여 반군주제 시위를 벌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군주제를 폐지하고 국민을 먹여살리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왕정 타도"를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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