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내 고향 대전
가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서슴없이 대전이라고 대답한다. 대전은 구체적인 지명이 아니라 나의 할아버지와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땅이다.
나는 대전 대동 산1번지에서 태어났다. 평생을 너무나 당연하게 대전 사람으로 살아왔던 나와는 달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으로 넘어와 힘겨운 생활을 하셨다. 특히 할아버지께서는 전형적인 옛 선비의 자태를 유지하셨기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도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는 모습을 뵐 수가 없었다. 그 덕에 할머니와 아버지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이 처음 대전에 자리를 잡은 곳은 당시는 대전 밖이었던 '두계'였다. 농사지을 땅도 없고 마땅한 수입원도 없었던 탓에 두계에서의 생활은 몹시 힘겨웠다고 한다. 어차피 어려운 살림이니 시내로 들어가면 그래도 나아질까 싶어 대동 산동네로 들어왔단다. 부모님은 거기서 나를 낳고 조금 있다 중동으로 이사했다.
그 후, 아버지는 주류도매상을 시작하셨는데 다행히 사업이 잘되어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안락함을 맛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삼촌과 고모들까지 온 일가족이 모두 우리 집에 모여 살았던 덕분에 나는 사촌들과 어울리며 시끌벅적하고 행복한 유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어린 시절 나의 놀이터였던 대전천의 사계절과 보문산의 녹음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여름 피서지였던 안영리와 신탄진 다리 밑의 산들바람까지.
이제 대전은 나의 할아버지가 처음 발을 디뎠던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자연만큼은 저 시절의 모습이 그립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산들바람과 녹음, 첨벙거리던 대전천과 꽁꽁 언 썰매장을 지금의 아이들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대전 서구청장과 대전시장을 거치면서 더 나은 대전을 모두와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전거전용도로와 공용자전거 '타슈'나 1993년 대전엑스포가 끝나고 방치되다시피 했던 엑스포 남문광장과 엑스포다리 경관을 다듬어 대전 사람들이 바쁜 일상에서 한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저소득층이 밀집돼 낙후되어 있던 동구 대동, 중구 문창동 등에는 무지개 프로젝트로 희망을 전달하고자 했다.
대전 발전을 위해 추진했던 다양한 프로젝트는 내가 대전에 대해 느끼는 애정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향은 언제든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대학 시절 5년간의 서울 유학 기간을 빼고는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 군 생활까지 대전에서 했고 아직도 유성에서 살고 있다. 인생을 오롯이 대전 곳곳에서 보냈다. 살고 있는데도 늘 그립고 정겨운 내 고향 대전에서 앞으로도 계속 삶의 희로애락을 이어가고 싶다.
[박성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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