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한국대사관, '尹 비난' 중국 관영언론에 항의... 효과는 미지수
해당 언론, 제목만 수정... 사드 배치에 연일 맹공
"중 언론, 윤 정부 '친미'로 돌아섰다고 판단한 듯"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적 발언을 연일 거친 어조로 비난했던 중국 관영언론들에 주중 한국대사관(이하 '한국대사관')이 항의 서한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언론들이 '자제 모드'를 취할지 관심이 쏠린다. 재외공관이 주재국 언론사에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까지 하는 건 꽤 이례적인 조치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전례를 볼 때 중국의 태도 변화가 있을 가능성은 작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중국 언론들은 한국 정부의 공식 항의를 받았지만, 이렇다 할 논조 변화는 없었다. 한국의 '불만 표출' 제스처가 큰 효과를 보진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대사관 "역지사지 입장에서 보도를"
7일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와 그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에 대사관 측이 항의 서한을 보낸 건 지난 4일 저녁이다. 서한에서 대사관은 두 매체를 향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부적절한 어휘를 사용해 우리 정상은 물론, 역내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치우친 시각에서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폄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재발 방지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역지사지'의 자세를 요구했다. 한국대사관은 "만약 한국 언론이 중국 지도자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연일 보도할 경우, 중국 국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두 언론의 보도는) 한중 관계의 건강하고 성숙한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바, 보도에 있어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말 윤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지난달 24~30일) 직전 외신 인터뷰 내용 중 '대만 문제' 언급을 두고 지난달 23일 공동사설에서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 났다"고 평가한 게 대표적이다. 같은 달 20일 글로벌타임스는 "대미 굴욕외교" "미국에 대한 아첨" 등의 표현도 동원했다. 또, 30일에는 윤 대통령이 '친미 외교'를 한다며 "북·중·러 3국의 전략적 보복에 직면하고, 윤 대통령에겐 '악몽'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두 매체는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계열사다. 중국의 강한 민족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중국 정부가 상대국에 대해 차마 공식석상에서 밝히기는 힘든 불만을 원색적으로 드러내 왔다. 관영 언론들 중에서도 특히 강경한 논조를 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보수가 '중국 국익 침해' 인식 커졌다"
중국 언론에 대한 한국대사관의 공식 항의가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던 2017년 9월,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임시 배치와 관련한 환구시보 사설에 대해서도 대사관 측이 문제를 삼은 바 있다. 당시 환구시보는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이냐" "한국은 북핵과 강대국 사이에 놓인 개구리밥이 될 것" 등 저열한 수준의 어휘까지 동원했다.
이에 한국대사관은 서한을 보내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의견을 개진하면서 격식과 품위 있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강력히 항의했다. 환구시보는 하루 뒤 해당 기사의 제목만 고쳤을 뿐, 문제가 된 원색적 표현들은 그대로 뒀다. 또, 이후에도 사드 배치 움직임을 주시하며 박근혜 정부에 대한 맹공을 연일 퍼부었다. 사실상 보도 태도가 바뀌지 않은 셈이다.
베이징에서 근무했던 전직 외교관은 "사드 배치 이후 한국 보수 정권의 외교가 중국 국익을 해친다는 중국 언론들의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고 짚었다. 그는 "얼마 전만 해도 중국 관영 언론들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를 관망했지만, 이번 방미로 한국이 완전히 미국에 기울어졌다고 판단해 비판 수위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환구시보 등은 한국대사관의 항의와 관련해 7일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한미동맹은 물론,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가속화 움직임에 중국이 날 선 비판을 해 온 흐름을 감안하면, 7일 한일 정상회담 이후에도 한국을 비난하는 중국 관영매체들 보도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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