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로스토, 거셴크론과 한강의 기적
선진국을 그저 따라하지 않고
창의적 전략을 폈기 때문
남들과 달랐던 것이 성공 비결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은 내용이나 형식에서 많은 한국인에게 뿌듯함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미국의 도움을 받아 전쟁과 가난을 이겨냈지만 지금은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미국을 도와주는 나라가 됐다는 것이나, 영어 연설로 기립박수를 23차례 받은 것 등은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고 자긍심도 높여주었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이 왜 일어났고 개도국에 어떤 함의를 주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교정과 부연이 필요한 것 같다. 윤 대통령은 "1960년대 케네디 행정부가 로스토 교수의 경제성장모델을 권유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 산업화의 기반이 되었다"고 말했다.
월트 로스토의 '경제성장단계론'이 개도국에 희망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의 부제는 '비공산주의자 선언(Non-Communist Manifesto)'이다. 자본주의자의 '착취'에 의해 양극화가 심해져 공산혁명이 일어난다는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자 선언'과 달리 단계적으로 성장해서 풍요로운 대중소비사회에 도달한다는 낙관적 전망을 담았다. 냉전시대에 소련과 체제 경쟁을 벌이던 미국이 전파하고 싶은 모델이었다.
그러나 로스토 모델의 맹점은 모두가 똑같이 '5단계 성장'을 거친다는 지나친 일반화에 있다. 따라서 선진국이 한 것들을 단계별로 따라 하면 개도국도 성공한다는 정책적 함의 이상을 내놓지 못한다. 지금의 '글로벌 스탠더드' 논의와 방법론적으로 똑같다. 남이 한 것을 따라 해 성공한다면 경제발전은 '식은 죽 먹기' 아닐까? 하지만 제대로 성공한 나라는 많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그 성공에 '기적'이라는 말이 붙는다.
이 부분을 비판하며 다른 발전모델을 내놓은 사람이 '후발주자 경제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알렉산더 거셴크론 교수다. 거셴크론은 후발국이 선발국에 비해 자본과 기술력이 떨어지는 불리함이 있지만 선발국이 발전시켜 놓은 기술이나 조직을 낮은 비용으로 습득하고 시행착오도 줄이는 유리함이 있다고 강조하며, 상대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유리함을 활용하는 체제를 만든 후발국이 압축성장한다고 설파했다.
한강의 기적은 로스토보다 거셴크론의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선진국 기술을 받아들였지만 선진국과 다른 방식으로 '캐치업(catch-up)'했다. 미국에서 개별 기업이 발전을 주도한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긴밀하게 협력했고 기업도 재벌이라는 비즈니스그룹 위주로 발전했다. 미국 기업이 내수로 성장한 뒤 해외로 나간 것과 달리 한국 기업은 수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자본과 기술,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체제였다.
발전모델에 대한 해명은 한국이 "도움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돋움한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돈 주는 것보다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생산적인 일인데, 현재 정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그 비결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필자와 만난 동남아 재벌 회장은 한국이 삼성, 현대, SK, LG와 같은 세계적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제일 궁금해했다. 동남아와 중남미에도 재벌이 많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내수에 의존하고 세계적 브랜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반면 한국의 재벌은 거셴크론적 발전이 만들어낸 세계적 수작(秀作)이다.
많은 사람이 전략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벤치마킹'이나 '글로벌 스탠더드' 같은 일반론을 강조하는 오류에 빠진다. 전략의 요체는 남과 다르게 하는 것이다. 비슷한 것 같아도 조금이라도 다르게 하는 데서 경쟁력이 좌우된다. '한강의 기적'의 비결도 무엇을 다르게 했는가에서 찾아야 한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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