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전기요금 인상과 한전 사장 거취
문재인 정부 초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인 백운규 전 장관이 지난 1월 재판에 넘겨졌다.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장들에게 사퇴를 압박한 혐의다. 일명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이다. 확정 판결이 나기 전까지 유죄 여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대신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는 공공기관장을 도중에 내쫓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이 최근 여당의 타깃이 되고 있다. 정 사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산업부 차관을 지낸 뒤 임명됐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8일 공석에서 정 사장의 사퇴를 처음 요구했다. 전기요금을 올려 달라고 하기 전에 방만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나흘 뒤엔 "요금 인상은 시간이 아닌 여건의 문제"라며 한발 더 나갔다. 정 사장의 사퇴 없인 요금 인상도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임기 중 사퇴를 종용할 수 없으니 도의적 책임을 물어 사퇴를 권고하는 느낌이다.
정 사장에게 책임이 없다고 단언할 순 없다. 그렇다고 그의 사퇴가 요금 인상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주객이 뒤바뀌어 본질을 놓칠까 우려된다.
늦어지는 요금 인상에 한전은 하루 이자로만 수십억 원을 낸다. 모두 국민이 부담할 돈이다. 곳곳에서 부작용도 나타난다. 송배전망 공사가 지연되니 중소 전력업체들은 일감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태양광·풍력발전은 걸핏하면 발전을 멈춘다. 탄소중립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삼성이 300조원을 들여 만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기 공급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다. 국가 전력 체계가 무너지는 신호들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한전 때리기'도 모자라 정 사장을 공개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려둔 채 요금 인상을 한 달 넘게 미루고 있다. 그렇게 강조한 요금 현실화의 절박성은 빛이 바래고 있다. 요금 인상이 지체될수록 미래 세대가 떠안는 부담은 커진다. 문재인 정부에서 넘어온 빚이 이미 한가득이라 더 기다릴 여유도 없다. 과감한 결단이 시급하다. 이번에 또 실기(失期)하면 그때에는 미래 세대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블랙리스트에 올릴지도 모른다.
[송광섭 경제부 opess1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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