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큰 바다가 큰 배를 띄운다

김기철 기자(kimin@mk.co.kr) 2023. 5. 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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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 상금 역대 최고찍자
LPGA 韓 선수 하락세 완연
'내수용'에 만족하기 시작하면
글로벌 경쟁력 침식으로 귀결
스포츠뿐 아니라 기업도 그래

매출 기준 세계 1위 자전거 회사는 대만의 '자이언트'다. 2021년 기준 연간 매출이 2조5000억원을 넘는다. 그렇다고 자이언트가 미국이나 유럽의 명품 자전거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헤리티지 브랜드'는 아니다. 자전거 생산 업력으로는 이제 50년, 자체 브랜드를 내놓은 지는 40년이 됐을 뿐이다.

역사로 말할 것 같으면 국내 대표 자전거 생산업체인 삼천리자전거가 자이언트보다 훨씬 길다. 삼천리자전거는 1944년에 창업했고 1952년에 최초의 국산 자전거인 '3000리호'를 생산했다. 그런데도 삼천리자전거의 연간 매출은 1300억원으로 자이언트의 5%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시장'을 어떻게 정의했느냐가 두 회사의 차이를 만들었다. 삼천리자전거는 그 이름 그대로 '삼천리' 우리 국토에 갇혔다.

반면 자이언트는 1981년 자체 브랜드 자전거를 생산할 때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했다. 대만 시장만으로는 생존 자체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저가 자전거가 아니라 '투르 드 프랑스'나 산악자전거 대회에서도 통할 수 있는 고성능·고품질 자전거에 도전했다. 창업자 킹 류의 '문샷(Moon Shot)' 전략이 자이언트를 세계 1위 자전거 브랜드로 만든 것이다.

4~7일 진행된 여자골프 국가대항전인 한화 라이프플러스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전년도 우승팀인 우리나라 대표팀이 예선에서 탈락했다. 단기전에서 나올 수 있는 부진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계 최고의 무대인 LPGA에서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의 퇴조 현상이 뚜렷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선수가 거둔 승수는 4승에 불과하고 올해는 아직 1승뿐이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5승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하락세가 지나치게 가파르다.

세계 최고 여자골프 무대에서 한국 선수들의 하락세는 역설적으로 국내 대회의 성장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올해 KLPGA는 32개 대회가 치러지고 총상금 규모는 311억원으로 역대 최대 금액이다. 19개 대회 총상금이 107억원이었던 2012년과 비교하면 11년 만에 3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국내 여자골프 시장이 이렇게 성장하다 보니 대부분 선수들이 해외 진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비용 등 측면을 따져보면 국내 대회를 뛰는 것이 LPGA에 진출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되기도 한다. 국내 무대를 휩쓸고 있는 박민지 선수만 해도 LPGA 진출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여자골프 꿈나무들이 세계 최고를 꿈꾸던 '박세리·박인비 효과'가 희미해져가고 있다. 여자골프가 '수출용'이 아니라 '내수용'에 만족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무대에서 입증된 경쟁력이 국내 시장을 키운 것처럼 역으로 세계 무대에서의 퇴조가 길어지면 이것이 국내 시장 자체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세계 무대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이유다. 스포츠뿐 아니라 기업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한때 '글로벌 넘버원'을 자랑했던 일본 전자 산업의 몰락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이라는 든든한 내수시장이 오히려 글로벌 표준화나 혁신 경쟁에서 일본 전자 업계가 뒤처지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내수용 상품이었던 한국 드라마는 OTT라는 세계를 향한 시장이 열리니 수출용 상품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니 보다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스토리들이 창작되고 이것이 다시 더 많은 투자를 이끌어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큰 성공을 위해서는 큰 시장이 필요하다.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아이폰처럼 시장 자체 크기를 키워버리는 예외적인 상품도 있지만 대부분의 비즈니스 크기는 시장 크기가 결정한다. 큰 바다가 큰 배를 띄우는 법이다.

[김기철 콘텐츠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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