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양상 美 은행주…당국, 공매도 투기세력 의심
'파산 위기설' 팩웨스트, 50% 폭락 하루만에 80% 폭등
당국, 시장조작 등 집중조사…공매도 일시 금지도 검토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김정남 뉴욕 특파원]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 은행 위기가 진정되지 않는 가운데 미 중소·지역은행 주가가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국은 은행주의 과도한 변동성의 배경에 공매도 투기 세력이 관여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한시적으로 은행주 공매도를 금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파산 위기설’ 팩웨스트 주가 돌연 82% 폭등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5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팩웨스트 뱅코프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81.70% 폭등한 5.7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6.22달러까지 치솟았다. 전날 50.62% 폭락한 이후 갑자기 다시 오른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를 본사로 한 팩웨스트는 최근 파산한 퍼스트 리퍼블릭에 이은 위기 은행으로 지목 받아 왔다. 팩웨스트는 자산 매각을 포함한 전략적 옵션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직접 밝혔고, 그 이후부터 SVB와 시그니처은행, 퍼스트 리퍼블릭에 이어 붕괴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 웨스턴 얼라이언스 뱅코프, 코메리카, 자이언스 등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소·지역 은행 주가도 이날 각각 49.23%, 16.76%, 19.22% 치솟았다. 특히 애리조나주 피닉스를 거점으로 한 웨스턴 얼라이언스는 회사 전체 혹은 일부 사업의 매각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 이후 주가가 폭락했다가 은행측이 이를 공식 부인하면서 반등했다.
지역은행 주가가 갑자기 뛴 것은 JP모건이 이날 웨스턴 얼라이언스, 코메리카, 자이언스 등에 대한 투자 의견을 상향 조정한 덕분으로 보인다. JP모건 애널리스트들은 이들 은행이 “강한 공매도 압력”으로 “잘못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매도는 특정 종목의 주가 하락이 예상되면 해당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JP모건은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사태)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한 우려가 이들 은행주의 가치를 끌어내렸다고 지적했다. 웨스턴 얼라이언스와 코메리카의 투자의견은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상향됐고, 자이언스는 ‘비중 축소’에서 비중 확대로 두 단계 올라갔다.
“공매도 세력, 은행주 폭락 조작했나”…당국 집중 조사
당국은 중소 은행주들의 과도한 주가 하락 요인으로 꼽힌 공매도에 투기 세력이 개입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전날 소식통을 인용해 “당국이 은행 주가 변동성 뒤에 있는 시장 조작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며 “최근 주가 변동성은 많은 지역 은행들이 안정적인 예금과 충분한 자본 등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데이터 분석 회사인 오텍스는 지난 4일 팩웨스트, 웨스턴 얼라이언스, 자이언스, 퍼스트 호라이즌 등에 대해 총 4억3047만달러(약 5712억원)의 공매도 주문이 몰렸다고 집계했다. 또 공매도 세력은 5월 첫 이틀 동안 12억달러(약 1조6000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같은날 미국은행연합회(ABA)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지역은행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멈추게 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지역은행들도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에게 공매도의 상당 부분이 “은행들의 재정상태를 반영하지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이를 막아달라고 서한을 보냈다.
겐슬러 위원장은 은행주들에 대한 공매도에 시장 조작 움직임이 있었는지를 집중 조사할 것이라고 했으며, 백악관도 이미 은행주에 대한 공매도 압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당국은 한시적인 공매도 금지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 금융당국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에도 일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한 바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공매도 자체를 금지하는 것보단 시장 조작 등 위법 행위를 식별해 내고 기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한편, 일부에서는 은행주 변동성이 실제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소피의 리즈 영 투자전략 책임자는 “지역은행 부문의 여파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유동성 위기는 보편적인 어려움”이라고 했다.
장영은 (bluera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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