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늑장대응보다 '임창정' '라덕연' 개인탓 몰아간 SG주가조작 보도
금융당국 늑장대응 지적보다 한국경제 "고수익에 눈 먼 탐욕"
조선일보 "임창정은 피해자일까… 수익날 때는 잠잠"
금융위 4월 초 제보 받아, 시장에선 지난해 말 '작전설' 돌아
국민일보 "금융당국 관치는 신속 진행, 본연 감독 임무에는 소홀"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코스피에 '하한가 폭탄'을 던진 SG사태가 주가조작 의혹으로까지 번지면서 가수 임창정, H투자전문업체 라덕연 대표 등 개인 책임 여부에 초점을 맞춘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금융당국의 늑장대응이나 2019년 차액결제거래(CFD) 규제 완화 등 구조적 배경보다 개인의 진실공방이 주요 보도 대상이다. 각종 악재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세계적으로 금융 불안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정부가 시장 안정성을 확보하도록 대책 마련을 촉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국계 증권사, 소시에테제네랄(SG) 거래 창구에서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삼천리, 대성홀딩스 등 8개 종목이 지난달 24일 폭락했다. 줄곧 상승세를 타던 해당 종목들은 이후 연일 큰 폭으로 떨어졌고 검찰과 금융당국이 수사를 공식화하면서 주가조작 의혹은 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H투자자문업체 라덕연 대표를 포함한 H사 관계자들은 매수자와 매도자가 가격을 정해 거래량을 늘려 주가를 끌어올리는 '통정거래' 의혹을 받고 있으며 이들은 투자자의 스마트폰을 직접 받아 주식을 매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가수 임창정씨가 SG사태에 연루됐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임창정씨의 피해자 여부가 연일 화제에 올랐다. 지난달 26일부터 현재 시점까지 다수 일간지 랭킹기사(네이버 기준)에는 임창정씨가 '나도 피해자'라고 주장한 내용, 임창정씨 부부가 주가조작단 주최 파티에 참석했다는 내용, 라덕연씨를 향해 '아주 종교야'라고 말한 내용 등이 모두 상위권에 올라 있다.
라덕연씨와 김익래 다움키움그룹 회장 사이의 진실공방 또한 지면을 뒤덮고 있다. 라덕연씨는 김익래 회장이 승계 목적으로 다우데이터 주가를 내리기 위해 주가 폭락을 유발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김 회장은 주식 매도는 적법하게 진행됐으며 주가조작 세력과 연계된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들의 책임 넘기기는 현재 쌍방 소송전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개인의 책임 유무를 넘어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는지 당국의 대응을 따져봐야 하는 시점이다. 더군다나 시장에선 특별한 이유 없이 폭등세를 기록하는 종목들에 대해 지난해 말부터 작전세력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금융 당국은 4월 초 문제가 터지기 전 제보로 이미 사건을 인지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금융위는 폭락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금융감독원과 자료를 공유하는 등 공조 체계가 부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의 늑장대응을 놓고 정치권에선 도이치모터스와 비교해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실을 알면서 돈을 빌려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MBC라디오 '시선집중'에서 “주가조작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거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라는 느낌이 좀 들었다”며 “갑자기 정무위나 금감원이 최근 엄청나게 이 사건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 정도 관심을 2주 전부터 들였다면 이렇게 관련 매물이 갑자기 나와 하한가 반대매매를 초래하는 상황은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일간지를 제외하면 이같이 금융 당국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보도는 없다. 오히려 조선일보와 한국경제 등은 당국 대신 개인 탐욕을 비판 대상으로 상정한 모습이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9일 기사 <아난티 前회장도, 가수 박혜경도 “나도 주가조작에 손해”>에서 “이들이 결과적으로 시세조종의 '전주(錢主)' 역할을 했으니 순수한 피해자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세력의 일부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전문가 발언을 인용했고, 지난 4일 데스크칼럼 <임창정은 피해자일까>에선 “임씨는 한 달 반만에 두 배 가까운 수익(58억 원)이 날 때까지만 해도 잠잠했다. 그러다가 폭락 사태로 원금을 까먹고 60억 원 빚까지 지고 난 뒤 '피해자'를 자처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경제는 4일 사설 <주가조작 사태에서 드러나는 자산가들의 탐욕과 도덕적 파탄>에서 “주가조작 수법은 범죄영화를 떠올리게 할 만큼 치밀했다”며 “고수익에 눈이 먼 자산가의 탐욕이 작전의 배양분이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나고 있는 일부 부유층과 유명 연예인의 모럴해저드는 자본시장을 좀 먹는 독버섯”이라고 했다.
2019년 차액결제거래(CFD)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조선일보와 경제지는 크게 다루지 않았다. 이들은 그간 금융시장의 규제 완화를 줄곧 주장해온 신문들이기도 하다. CFD는 실제 투자상품을 보유하지 않고도 기초자산을 매수하는 시점의 가격과 매도하는 시점의 가격 간 차액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장외파생상품으로 최대 2.5배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해 수익성이 큰 만큼 리스크도 높다. 계약 당사자가 아닌 증권사 명의로 거래돼 불법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고 정해진 증거금률을 유지하지 못하면 반대매매(강제청산)돼 하락세를 걷잡을 수 없게 된다.
CFD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투자자만이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지만 2019년 금융 당국이 개인 전문투자자 지정 요건을 기존 금융투자상품 잔액 기준 5억 원 이상에서 5000만 원 이상으로 낮추고, 재산 가액을 순자산 10억 원 이상에서 5억 원 이상으로 줄였다. 서울신문은 지난 1일 사설 <증시 투전판 만든 CFD 완화 전면 정비해야>에서 “그로 인해 전문투자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증권사들도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증시를 투전판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CFD를 이용하는 개인전문투자자는 2017년 이후 2021년 기준 20배가 늘었다.
매일경제는 CFD 상품에 대한 문제제기 대신 주가조작 세력의 엄벌을 촉구했다. 지난 4일 사설에서 매일경제는 “재발을 막으려면 주가 조작 세력이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 패가망신할 정도로 엄한 벌을 받도록 하는 법안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경제는 4일 데스크칼럼 <주식시장의 봉이 된 연기금>에서 국민연금을 다시 소환해 “(연기금은) 이번 사태로 대규모 손실을 봤다”며 “연기금은 속된 말로 증시에서 호구가 됐다”고 했다.
미국에선 은행 파산 위기 소식이 들리고 국내 가계부채는 언제 뇌관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개인 책임 여부보다는 당국의 기민한 대응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 1일 사설에서 “'대출이자 억제' 등 관치는 신속히 진행하면서 정작 본연의 감독 임무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며 “주가조작 예방을 위한 시스템 구축과 더불어 금융당국의 진정한 각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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