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어떻게 탈원전을 이뤘나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 역사적인 탈원전을 실행했다. 에너지 위기를 가져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탈원전을 한 나라는 독일이 유일하다. 독일은 지난달 15일 자정 엠스란트 네카베스트하임2 이자르2 등 자국에 마지막 남은 원전 3곳의 가동을 중단했다. 이들 3곳은 1988, 89년 시작돼 35년간 가동돼 왔으며 탈원전법에 따라 이날 자정부터 가동권한이 공식 소멸됐다. 1961년부터 최대 37개 원전을 가동, 전체 전력의 3분의 1가량까지 원전에 의존해 왔던 독일이 62년 만에 원전에서 완전히 손을 뗀 셈이다(국제신문, 2023년 4월 16일).
CNN(2023년 4월 15일)은 ‘새로운 시대 독일, 원전 3기 폐쇄’라는 제목의 특집보도를 내놓았다.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녹색당 의원)의 인터뷰는 인상적이다. “독일 정부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원자력은 녹색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속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에너지생산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CNN은 독일의 탈핵의 발자취를 소개했다. 독일은 1970년대 강력한 반핵운동이 일어났고, 원전과 핵무기와 연관성을 우려해 탄생한 녹색당이 현재 연립 여당의 일부가 되었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와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원전대참사로 2000년 들어 독일 정부는 원자력의 단계적 폐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2009년 새 정부가 집권했을 때, 원자력이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교기술’로 유예를 받을 것처럼 보였으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대참사가 일어났다. 사고 발생 3일 뒤 종래 핵을 지지했던 물리학자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는 이를 “일본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며 세계에는 전환점”이라며 “독일은 노후원전을 즉시 폐쇄하면서 핵 폐기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가스가 없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두려움으로 독일 정부는 2022년 12월에 마지막 원전 3기 폐쇄계획을 연기하려 했으나 지난 4월 15일까지만 운영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것은 반핵운동을 해온 사람들에게는 승리의 순간이었다. 이와 함께 기후 위기에 따른 저탄소 에너지원의 증대라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후쿠시마대참사 이후 독일의 원자력에너지 감소는 주로 석탄 증가로 상쇄돼왔다는 것이다.
NHK(2023년 4월 16일)도 ‘독일서 탈원전 실현, 가동중이던 마지막 원전 3기 정지’라는 제목의 특집보도를 내놓았다. 대체로 과제가 부각됐다. 독일에서는 이달 여론조사에서 탈원전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9%로, 찬성 34%를 크게 웃돌아 경제계에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며, 향후 독일 정부가 재생가능에너지를 축으로 한 전력의 안정적 공급 여부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 등이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발전사업자 등으로 구성된 연방에너지수도사업연합회에 따르면 발전에서 원자력 비중이 2000년 30%로 석탄 다음으로 많았지만 2022년에는 6%로 크게 준 반면 재생에너지는 2000년 7%에서 2022년 45%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은 “원자력발전에는 사고 리스크에 더해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원전과 같이 공격에 노출될 위험성도 부각되었다”며 “원자력은 지금도, 앞으로도 리스크가 있는 기술로 계속 남아 있으며 그 위험은 독일과 같은 기술력이 높은 나라조차 제어할 수 없다”며 탈원전의 의의를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사태 이후 독일은 감소한 러시아산 가스 대신 LNG수입을 증가시키거나 석탄발전을 확대시켜 왔는데 가스 및 전기요금이 급등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2030년 전력소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80%로 한다는 방침을 새로 내걸었는데 쾰른대학 에너지경제연구소의 추산에 따르면 매년 추가로 필요한 전력이 육상풍력은 8.4 GW(기가와트), 태양광은 17.4GW로 2021년까지 10년간에 비해 풍력은 약 3배, 태양광은 4배 정도 확대할 필요가 있는데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했다. 또한 장기간에 걸친 원전의 폐로작업과 더불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지도 정해져 있지 않아, 독일 정부의 원자력안전과 관련된 과제는 수십 년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독일의 탈원전 도전에 대해 일본 학자가 독일과 일본을 비교해놓은 자료가 눈에 들어왔다. 2022년 11월 26일 일본 시가현 오쓰(大津)시에서 일본과학자회의 시가(滋賀)지부 주최로 요시다 후미카즈(吉田文和) 아이치학원대 교수(홋카이도대 명예교수)가 ‘독일의 도전-에너지 대전환의 일본 독일 비교’라는 제목의 특강을 했다. 요시다 교수는 후쿠시마사고 이후 일본은 다시 원전 재가동으로 간데 비해 독일은 단계적 탈원전으로 나간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를 했다. 요시다 교수는 2021년 12월에 특강 제목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요시다 교수는 독일이 탈원전을 한 것은 메르켈 총리가 조직한 17명으로 구성된 ‘안전한 에너지공급에 관한 윤리위원회’가 에너지전환과 관련해 큰 역할을 했는데 보고서 ‘독일의 에너지전환-미래를 위한 공동사업(2011년 5월)’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①원전의 안전성은 높아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②사건이 일어나면 다른 어떤 에너지보다 위험하다. ③다음세대에 폐기물처리 등을 남기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다. ④원자력보다 안전한 에너지원이 있다. ⑤지구온난화문제도 있으므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⑥재생에너지 보급과 에너지 효율성 정책으로 원자력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일은 장래의 경제를 위해서 큰 기회이다.
그럼 독일은 후쿠시마원전사고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①후지산 자락을 3분 간격으로 정확하게 신칸센이 달리는 고도로 조직된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원전사고는 독일에게 큰 충격이었다. 심각하고 장기적으로 수습하기 어려운 사고가 발생했기에 독일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②재해수습의 전망이 서지 않는데다 최종적인 손해 산출이나 피해지역의 최종확정이 불가능하기에 원자력은 다른 에너지원의 결점과 과학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비교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널리 퍼져 있던 견해가 설득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③현실은 지진에 대한 안전성과 쓰나미의 최대 높이 등이 ‘예상’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기술적인 리스크 평가의 한계가 분명해졌다. 즉, 원전의 리스크 자체는 후쿠시마사고로 인해 변화된 것은 아니지만 기술적인 리스크 평가나 에너지에 관한 리스크와 편익의 비교판단이라는 방법의 한계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분명해져 독일인으로 하여금 리스크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윤리위원회 설치의 근거로 ‘원자력 이용이나 폐쇄, 다른 에너지 생산 형태로의 전환에 관한 결정은 모두 사회에 의한 가치결정에 기초한 것으로, 이것은 기술적 혹은 경제적 관점보다 앞선다’는 기본적인 인식에 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한 가치평가의 열쇠 개념은 ‘지속가능성’과 ‘책임’이다. 안전한 에너지공급, 특히 원자력의 평가를 둘러싸고는 ‘인간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무엇이든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회발전의 기본명제를 고려해야 한다. 단기적인 이익에 우선하여 미래세대에 부담을 강요하는 결정에는 사회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사회가 기술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 사고방식이 일본에서는 결여돼 있다고 요시다 교수는 지적했다.
일본과 독일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①독일은 후쿠시마원전사고를 파고들어 실패의 교훈으로 삼았고 일본은 교훈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②독일은 노조를 포함해 원전반대운동과 핵무기반대운동이 통합돼 왔고, 행정재판소에 의한 적극적인 사법심사가 실시되어왔지만, 일본은 원전추진파 노조를 포함한 연합의 문제가 있고, 사법 판단도 소극적이었다. ③일본과 마찬가지로 1960년대부터 1970년대 걸쳐 대학 분쟁이 있었지만, 그 분쟁을 거친 세대가 독일은 꾸준한 노력을 통해 녹색당 등의 창당으로 이어진 반면 일본에서 그러한 사례가 없었다. ④독일에서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하여 건물이 건설되었으나 맹렬한 반대운동으로 가동되지 않았고 이것이 탈원전으로 이어졌다. ⑤원래는 1986년 체르노빌사고로 인한 독일의 방사능오염을 계기로 2002년 당시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내각에 의해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의 폐로 결정이 내려졌지만 그 후 방침이 바뀌었으나 메르켈 내각이 다시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것은 체르노빌사고도 교훈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에너지전환에 따른 독일의 과제는 무엇일까? ①탈원전과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동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전자는 달성 가능하나 후자는 전력 이외의 열원과 교통 분야의 감축이 곤란한 상황이다. ②남부의 원전 폐지에 따라 북부의 풍력발전의 전력을 남부로 송전할 계획이지만 송전선 건설에 동의를 얻지 못해 비용과 시간이 걸리고 있다. ③발전차액지원제도(FIT)에서는 저소득층에도 같은 부담이 되고, 에너지빈곤이란 사태도 생기고, 특히 상대적 빈곤층에 대한 경제적 부담 저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끝으로 요시다 교수는 일본이 독일에게 배워야 할 점으로 다섯가지를 들었다. ①사실과 논리의 중시 ②장기전망과 전략성 ③공론 형성과 공론의 역할 ④참여와 투명성의 확보 ⑤리스크 파악 방법이 그것이다. ①은 재처리 등 기술·사회적 어려움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논리적으로 정책 목표를 정해, 체계적으로 정책수단을 정비한다는 점 ②는 에너지 측면뿐만 아니라 생산에 대해서도 ‘제4차 생산혁명’을 내걸고 장기전망과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점 ③은 언론, 연방의회, 주의회, 시의회 등이 다양한 논의와 논쟁을 벌여왔다는 점 ④는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이를 행하는 것이 정책 추진의 보증이 된다는 점 ⑤는 윤리위원회 보고서에 있는 ‘사회에 의한 가치결정’에 근거한 판단을 우선시하고, 단기적인 경제비용에 따라 원자력을 평가하는 자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본의 경우 독일과 비교하여 지진·쓰나미·화산이라는 고유의 리스크가 수반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것이다(http://www.nonukesshiga.jp/wp-content/uploads/0d912e436b7d0d7705541a46565c5a8c.pdf).
이러한 독일과 일본과의 원전정책 추진 관련 특성 비교는 우리나라와 독일을 비교해도 비슷하게 나올 것 나올 것 같다.
한겨레21(2023년 4월 20일)은 ‘세계 최초의 완전 탈원전, 독일이 해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나라의 원전 편중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1969년 첫 상업가동 이래 독일엔 36개 원전이 있었다. 총 전력 생산의 31.6%를 차지했다. 독일의 탈원전 기조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기된 ‘에너지 위기’로 한때 흔들렸다. 탈원전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녹색당을 비롯한 집권 ‘신호등’ 연정은 계획을 일부 변경했을 뿐 탈원전을 마무리 지었다. 조선일보 등 일부 국내 보수 언론은 “에너지 위기로 독일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 “세계적 ‘원전 추진’ 움직임에 독일만 거꾸로”라고 보도했지만, 독일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중략) 독일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1990년 3.79%에 불과했고 그나마 수력발전이었지만, 2009년 ‘에너지 구상 2010’, 2014년 재생에너지법 제정 등으로 꾸준히 확대돼 2022년 43%에 이르렀다. 2030년까지 8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7.5%다. 태양광·풍력만 따지면 4.7%뿐이다. ‘RE100’에 따라 100% 재생에너지 전기를 써야 하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국내 생산공장을 늘리는 문제를 두고 고심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재생에너지 확대가 당장 급한데도 정부와 보수 언론은 원전산업계 걱정만 한다. 2022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원전 비중은 9.2%로 매년 주는 반면 태양광·풍력은 12.1%였다. 대체 무엇을 보고 세계가 원전으로 회귀한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고리2호기를 비롯한 노후원전의 수명 연장 등 원전폭주정책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원전안전신화의 맹신에서 비롯된 ‘우물안 개구리’식 원전폭주정책이 심히 우려되는 이유는 독일에서와 달리 ①사실과 논리의 중시 ②장기전망과 전략성 ③공론 형성과 공론의 역할 ④참여와 투명성의 확보 ⑤리스크 파악 방법 등 어느 하나도 국민에게 설득력이 없이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무지·무책임, 에너지정책의 ‘철학의 빈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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