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영 무료급식소’ 몰린 어르신들···‘복지 축소’ 정부의 그림자[어버이날 현장]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후문에 노인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섰다. 국가혁명당 총재인 허경영씨(76)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서 급식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었다. 허씨는 지난해 4월부터 탑골공원 무료급식소 운영을 시작했다. 급식은 오전 11시30분부터 시작되지만 11시부터 대기줄은 이미 100m 넘게 이어졌다.
등판에 ‘허경영 하늘궁 무료급식소’ ‘유튜브 허경영 강연’ 등의 글자가 적힌 빨간 점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행렬을 통제했다. 자원봉사자가 급식 대기번호표를 나눠주며 “허경영!”을 외치자 일부 노인들이 따라 외쳤다. 비가 내리며 날씨가 궂었던 전날 오전에도 노인 230여명이 이곳에서 무료급식을 받아 갔다. 하늘궁 무료급식소 관계자는 “비가 오면 오는 사람이 좀 적지만 평소에는 300명, 많을 때는 500명도 온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사는 정근모씨(63)는 매주 네댓번 이 급식소를 찾는다. 평소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몇 차례 환승 끝에 충남의 한 무료급식소에서 어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오전 11시쯤 탑골공원에 도착해 하늘궁 무료급식소에서 도시락을 받아 간다. 이후에도 인근 원각사 무료급식소, 청량리 밥퍼 무료급식소 등을 전전한다고 했다. 혹여 무료급식이 떨어졌거나 없는 날에는 두부나 떡 따위로 끼니를 때운다. 정씨는 “늘 오다 보니 아는 얼굴들이 꽤 있다”며 “나처럼 오전 일찍부터 여러 곳의 무료급식소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100명은 넘는다”고 했다.

허씨의 무료급식소가 특히 성황인 것은 기존에 운영되던 다른 무료급식소들이 코로나19와 이후 고물가 여파로 운영난을 겪으며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사비까지 털어 봉사 개념으로 운영되던 급식소들이 하나둘씩 운영을 중단하자 자본과 인력이 풍부한 허씨가 그 틈새를 파고든 것이다. 탑골공원 인근에서 30년 동안 무료급식을 해 온 원각사 무료급식소 관계자는 “물가 상승뿐 아니라 전기요금 등 공과금이 한꺼번에 올라서 부담이 커졌다”며 “사비를 쓰거나 그때그때 가격이 저렴한 식자재를 사용해 식단을 꾸리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지난 대선에 출마하기도 한 허씨가 급식소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급식소 현장이 정치적 선전에 이용되는 모습도 엿보였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며 ‘봉사대통령 허경영’ 등 키워드를 함께 올리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게시하는 식이다. 유튜브와 SNS에는 무료급식 관련 후원계좌 번호를 적어놓기도 했다. 지지자들은 영상과 게시글을 공유하며 “역시 허경영, 이런 분이 대통령 됐으면 국민은 돈 걱정 없이 살고 있었을 텐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날 탑골공원에는 허씨의 얼굴과 그의 후원계좌 등이 인쇄된 현수막과 입간판이 걸려 있었다. 무료급식소 한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허씨의 정치 활동 등 이력을 소개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하늘궁 무료급식소 관계자는 “정당 가입을 독려하거나, 후원금 모금 등의 활동은 하고 있지 않다. 관심이 있다는 사람에게 방법을 알려주는 정도”라며 “탑골공원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한 것도 어려운 형편의 노인분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어서 일 뿐”이라고 했다.

여러 우려에도 급식소 이용자들은 허씨를 ‘고마운 존재’라고 표현했다. 정씨는 “이렇게 무료급식을 한다는 것도 어쨌든 능력이 돼야 하는 것”이라며 “무료급식 받는 처지에서는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이모씨(73)는 “허 총재가 형편 어려운 서민들에게 봉사하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인지상정이라는 게 있지 않나. ‘대통령에 나오면 찍어준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선진국보다 소득보장제도가 뒤떨어져 있는 데다 노인 세대는 그나마도 연금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며 “전통적인 사회보장체제였던 가족이 해체되고, 평균 수명은 늘어나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는 이념체계가 복지를 축소하는 쪽이기 때문에 사설 무료급식소 같은 영역이 늘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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