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10만원 넘긴 ‘망고 빙수’...호텔들 “이렇게 팔아도 남는 건 없어요” [밀착취재]

김수연 2023. 5. 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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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호텔 빙수값 일제히 인상…12만원대까지 등장
“특별한 경험이지만 해도해도 너무 올라” 불평도
호텔 측 “원가율 60% 넘어. 이윤보다 이벤트”
이은희 교수 “젊은층 과시소비 계속될수록 인상도 지속”
지난달 29일 서울신라호텔에서 판매 중인 애플망고 빙수.
 
“망고 1조각당 3000원꼴이야. 조심히 먹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 입구 쪽은 줄을 서서 대기 번호를 받는 10명 이상의 손님들로 북적였다. 몇몇은 안내 직원에게 “빙수 품절됐냐”고 물으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다수가 이틀 전 판매를 시작한 ‘애플망고 빙수’를 먹기 위해 발걸음한 이들이었다. 올해 신라호텔의 망고빙수 가격은 9만8000원. 빙수치고 다소 비싼 가격에 기꺼이 지갑을 열면서도 “해도 해도 너무 올랐다”는 볼멘소리도 터져나왔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가정의 달을 맞아 서울 주요 특급 호텔에서 일제히 인상된 가격으로 ‘애플망고 빙수’ 판매를 시작했다. 망고빙수의 원조로 꼽히는 신라호텔은 전년 대비 18.1% 가격을 올렸고, 롯데호텔 서울은 지난 4일부터 제주 애플망고 빙수를 지난해보다 4.5% 올린 9만2000원에 판매 중이다.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의 제주 애플망고 빙수도 9만2000원이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건 당연 포시즌스 호텔의 ‘제주 애플망고 가든 빙수’다. 이달부터 판매를 시작한 포시즌스 호텔 빙수의 가격은 전년 대비 30% 이상 인상된 12만6000원. 주요 5성급 특급 호텔에서 판매하는 애플망고 빙수 중에 가장 비싼 가격으로, 호텔 빙수 가격이 10만원을 넘어선 건 호텔업계가 고가 빙수를 선보이기 시작한 2011년 이래 처음이다.

10만원짜리 빙수, 과연 그 값어치를 할까. 지난 주말 신라호텔에서 주문 뒤 20여분 만에 받은 망고 빙수는 ‘산처럼 쌓여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만큼 수십개의 망고 조각이 가득 올라가 있었다. 숟가락을 넣는 순간 옆으로 망고가 우수수 떨어질 정도였다. 투명 케이스에 담아 빙수를 서빙해온 직원은 “일반 망고보다 당도가 훨씬 높다”며 “따로 제공되는 망고 셔벗과 팥도 직접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신라호텔에서 전년 대비 18.1% 인상된 9만8000원에 애플망고 빙수를 판매 중이다.
 
이날 만난 손님들 다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면서도 “두 번 먹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아이들을 데리고 친구와 함께 찾았다는 심모(35)씨는 “당연 냉동 망고보다는 싱싱하고 아이들 먹이기에도 좋았다. 4명이서 와서 먹기 좋은 양”이라면서 “다만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하다. 안 그래도 비쌌는데 올해는 너무 많이 오른 것 같다. 이 가격을 주고 웨이팅이나 오픈런은 더 못하겠다”고 평했다.

이 같은 손님들의 불평에 호텔들은 “가격을 인상해도 남는 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엄선된 제주산 애플망고 중 당도 13브릭스 이상만 사용한다. 손질이며 데커레이션이며 품이 많이 가는 메뉴”라며 “특히 원가율이 60%를 상회하는 수준이라 보통 호텔 식음료업장의 적정 원가율인 40%에 못 미치고, 판매량 제한까지 있다. 사실상 남는 게 거의 없다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식음료 고객은 투숙이나 다른 서비스 이용보다는 식음료 서비스만 이용하고 가는 비율이 높아 다른 매출로 이어지지도 않는다”며 “망고빙수로 이윤을 본다기보다 다양한 고객층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서울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와 더 파크뷰 앞에서 대기 중인 손님들.
 
실제 호텔 객실 이용객 비율은 중장년층이 더 높은 반면 식음료 이용 연령층은 20~30세대가 높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MZ세대를 중심으로 스몰 럭셔리 트렌드가 계속되며 호텔 간 고가 빙수 경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라호텔에서 만난 고객들 역시 젊은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다수가 빙수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호텔 내부를 촬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구나 연인 등 2명씩 온 고객들 중에는 사진 촬영 후 “양이 너무 많다”며 몇 입 맛본 후 남기는 이들도 종종 있었다.

매년 부정적인 평이 잇따르지만 MZ 세대의 소비가 계속되는 한 호텔 측의 빙수 가격 인상도 계속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빙수 하나만 놓고 보면 너무 비싼 가격이지만, 젊은층들은 호텔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느끼고 SNS에 자랑하며 ‘체험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가격이 오르는 데도 과시욕 등으로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는 베블런 효과에 들어맞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요즘 젊은층 소비 패턴을 볼 때 ‘거지방’ 유행처럼 평소에는 거지처럼 필수재에는 1원까지 아끼다 한 번에 아낌없이 지른다”며 “호텔 객실까지는 비싸서 예약 못하지만 호텔 빙수를 먹으며 그에 준하는 만족을 느끼는 대리 경험을 하는 것이다. 호텔 측도 이런 니즈를 알고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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