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가창신공] 트로트 전문 작곡가 윤준호…가수 윤항기 아들

조성진 기자 2023. 5. 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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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에 특화된 ‘대기만성’형 작곡가
태진아 전속 작곡가 출신
現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 실용음악학과장
조기흠‧임은하수‧이세호 스승
20대서 원로까지 세대불문 많은 가수와 작업
“트로트 핵심은 ‘흥’과 ‘한’”
“트로트가수에겐 현장 대처 순발력 필수”
“향후 힙트로트 해보고 싶어”
사진=조성진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트로트 장르는 그 어떤 음악보다 현장에서 가수의 ''100% 이상 발휘돼야 합니다. ''안엔 노래 기본기는 당연하고 특히 순발력이 중요합니다.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연령층을 상대해야 하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은 트로트 가수에겐 필수죠."

"음악으로서의 트로트는 ''''이 핵심이죠. 결국 ''''을 얼마만큼 어떤 식으로 끄집어내는 게 관건이라고 봅니다."

"일반 가요가 '너무 슬퍼'라고 표현한다면 트로트는 '너무 슬퍼서 죽을 것 같아', 일반 가요가 '나 너무 행복해'라면 트로트는 '나 너무 행복해서 날아갈 것 같아'라는 식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가사나 멜로디, 감정연출 등 전체적으로 좀 더 극단적이어야 합니다."

트로트 작곡가 윤준호(47)의 말이다.

윤준호 작곡가는 '별이 빛나는 밤에', '장밋빛 스카프' 등 여러 히트곡으로 한 세대를 풍미한 가수 윤항기(79)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처녀뱃사공' 작사가 윤부길, 고모는 윤복희, 그야말로 3대째 음악을 하고 있는 가요계의 '로열패밀리' 집안이다.

윤준호는 태진아의 진아기획(진아엔터테인먼트) 소속 작곡가로 활동했고 윤항기, 쟈니리 등에서 최근 젊은 트로트 가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가수 곡을 썼다. 현재 서울 예장동에 있는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KETC)' 실용음악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국내 실용음악학과장의 경우 재즈를 전공한 사람이 대부분이며, 학과 과정도 재즈 이론 전반을 중요시한다. 반면 윤준호 학과장은 트로트를 중점적으로 파고 있다. 그러다 보니 트로트 가수를 꿈꾸거나 트로트 음원 제작 또는 트로트 발성 트레이닝 등 트로트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를 찾는다. 기존 트로트 가수들도 윤준호 학과장에게 곡을 의뢰하는 빈도가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트로트 가수는 많지만, 트로트만 작곡편곡하는 사람을 찾긴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윤준호 작곡가의 경쟁력은 돋보인다.

트로트 신동(SBS '스타킹')으로 화제를 모은 '모황도' 조기흠을 비롯해 임은하수, 이세호 등이 모두 윤준호 제자들이다.

"사람들은 조기흠보다 '모황도'란 이름에 더 익숙할 만큼 조기흠은 출발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국악(판소리)까지 공부해 그 깊이는 더할 나위없죠."

"임은하수는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색깔로 말하면 임은하수는 무지개랄 수 있죠. 발라드에서 트로트세미트로트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는 가수입니다."

"이세호는 임영웅영탁처럼 요즘 트렌드에 적합한 트로트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몇몇 가요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실력을 검증받았죠."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에서 트로트 보컬트레이닝을 전담하고 있는 임은하수는 오는 가을 정통 트로트의 신곡을 발매할 예정이다. 스승인 윤준호 작곡가는 임은하수 신곡에 대해 "비오는 날 항구에서 들었을 때 굉장히 끈적끈적해지는 느낌의 트로트"라고 말했다.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인 미국에서 자신을 업그레이드해보라는 아버지 윤항기의 권유로 윤준호는 중학 3학년 때 도미했다. 미국에서 대학까지 마친 그는 귀국해 9711월 입대(해군홍보단)했다. 당시 해군홍보단엔 국내 유명 가수들도 복무 중이었는데 윤준호는 이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음악세계에 눈뜨기 시작했다. 작곡을 해보고 싶단 생각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제대 후 작곡/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보려 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아버지 윤항기가 보기에도 아들 나이 이미 26, 아이돌 가수 하기엔 늙었고, 작곡을 하겠다고 하지만 군대 시절에 관심이 생긴 것일 뿐 실제 관련 분야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등등.

윤준호는 포기하지 않고 듀엣을 조직해 데모테입을 만들어 여러 기획사 문을 두드렸다. 결국 여성 댄스그룹 '클레오' 소속사인 'eela I'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연락이 왔고 이렇게 해서 그는 데뷔를 눈앞에 둔 듯 보였지만 회사 내부 사정으로 인해 결국 데뷔앨범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실의에 빠진 윤준호에게 아버지 윤항기는 "이제라도 제대로 공부를 해봐라"고 했고, 그는 28살이란 늦은 나이에 예음신학교에서 음악 전반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29세에 '큐브'라는 4인조 그룹을 결성해 데뷔앨범을 발매했다. 큐브는 가요 스타일의 CCM을 추구하는 팀으로 윤준호는 여기에서 리더 겸 프로듀서래퍼를 맡았다.

이어 그는 애니메이션 음악 분야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당시 잘 나가던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윤준호의 '일타 스승' 이상호가 제자인 윤준호에게 '제트레인저' 타이틀 음악 작업을 맡겼고 무리 없이 잘하자 계속 관련 음악 작품을 맡긴 것이다. 이렇게 해서 윤준호는 이상호 감독이 맡은 여러 작품에 함께 하며 재능을 발휘했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2000년 초반 카스 맥주 CF음악('젊음' )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CF에 흐르던 랩은 MC스나이퍼가 맡아 더욱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에서 강의 중인 윤준호 작곡가.

이후 태진아의 '진아기획사'와 계약하며 태진아 작곡가로 합류하며 윤준호 음악인생에 일대 전환점이 왔다.

그는 태진아 '당신만의 아픔''당신 편이야'를 작곡하며 트로트 작곡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생애 처음 쓴 트로트 곡이었음에도 외부 평가도 좋았고 당사자인 태진아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음악활동을 해야겠다며 여러 분야를 넘나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진짜 재능'이 트로트에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제가 쓴 곡을 들려주자 태진아 선생님은 멜로디 등 전체적으로 뻔한 스토리가 아니라 때 묻지 않은 게 있어서 좋다고 칭찬 해주셨어요."

태진아 작곡가로 함께 하며 특히 그는 태진아의 음악성과 의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태진아 선생님은 주위 사람들을 너무 잘 챙겨 주십니다. 일단 자기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빼지 않죠. 행사하러 갈 때면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게 됩니다. 그럴 때 코러스 한 명이라도 배가 고프다고 하면 함께 움직이던 모든 차량이 서야 합니다. 태진아 선생님은 직접 빵집으로 들어가시어 빵을 많이 사서 전해줍니다. 그만큼 당신 사단, 자기 사람을 잘 챙기고 배려하는 게 대단하죠."

"레전드 스타임에도 태진아 선생님은 방송 프로그램 리허설 때 해당 하우스 밴드마스터에게 단원들 음료수라도 마시게 하라며 주변을 챙겨 주시는 꼼꼼함과 따뜻함도 돋보입니다."

그는 태진아에게 일생일대 중요한 가르침을 받았다. 몇 년 후 새 곡을 갖고 태진아에게 건넸는데 태진아의 반응이 일그러진 것이다.

"처음엔 신선하고 좋더니 이제 너는 신선함이 없어졌다. 처음 네 음악이 찌개였다면 지금 네 음악은 찌개에 소시지, 콩나물, 쌈장까지 너무 많은 걸 올렸다"고 윤준호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어 태진아는 "찌개면 찌개여야 하는 데, 지금 네 곡은 반찬이 너무 많고 표현하려는 것도 많다"고 덧붙였다. 순간 윤준호의 머리 속으로 ""하고 번개가 치듯 깨우침이 왔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값진 가르침이었다.

윤준호는 작곡가로서 잠깐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가 있었다. ", 태진아 작곡가야"란 태도로 거만해진 것이다. 이를 기화로 본격적으로 뛰어다니며 활동해야 할 '신인작곡가'가 거드름 피우며, 여러 곳에서 곡을 의뢰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올 줄 알고 기다리기만 했던 것이다. 이때의 잘못된 애티튜드는 작곡가이자 음악가 윤준호에게 뼈아픈 성찰의 시간을 줬고 그만큼 더 성숙해지게 됐다.

작곡가 윤준호가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윤준호는 KETC(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 전임교수에 이어 2020년 실용음악학과장으로 선임됐다.

"음악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버텨야 한다는 겁니다. 곡 의뢰가 오지 않더라도 거의 매일 곡 작업(믹스까지)까지 하고 귀가했어요. 제 자신에게 떳떳해지고 싶어서였고 또한 학생들에게 창피하지 않은 음악인/선생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건 힘이 아니라 끈질김이다'란 말을 해주곤 합니다. 버텨라. 버티다 보면 언젠간 분명히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죠."

결국 2018년 지인으로부터 곡 의뢰를 받았고 이게 터지자 또 다른 의뢰가 들어왔고 이렇게 해서 의뢰가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돌 '레드애플' 출신 이도진 곡도 히트하며 윤준호는 드디어 작곡가로서 명성을 쌓아가기에 이른다.

'똑순이' 김민희의 '천생연분'도 그가 썼다. "꺾기 등 트로트 기교는 억지스럽게 하면 금방 티가 납니다. 그런데 김민희 님은 자연스럽게 코로 나오는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저를 높게 평가해주시고 굉장히 잘 대해주신 게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윤준호 작곡가는 MBC개그맨 문용현, 김민채 신곡 '디스코' 등 여러 곡을 작곡하며 히트를 이어갔다. 새샘트리오 현진옥 솔로앨범 제작(작사작곡편곡레코딩) 및 현진옥 아들인 주찬 작업도 맡았다. 이외에 '미스터트롯' 출신 안훈 '이건 못참지''깐부 친구', 인기 유투버 배그나 곡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배그나는 '아프리카TV'에서 시아준수 형이 주관하던 방송에서 우승하며 화제를 모았는데, 윤준호는 당시 이 프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배그나와 인연을 맺게 된 것.

이외에도 윤준호는 배우 함은정 및 송아리 녹음 등등 많은 곡 작업으로 이제 20대 가수에서 원로가수 등 세대를 아우르는 트로트 작곡가로 자기영역을 확고히 구축해가고 있다.

작곡가 윤준호는 "일은 낮에 하자"는 주의다. 술은 잘 마시지 않으며, 거의 종일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에서 후학 양성 및 작곡편곡음원작업에 몰두하는 편이다. 누워있다가도 악상 떠오르면 휴대폰에 저장해 놓는 습관이 있다. 지금까지 스마트폰에 수백 개 이상의 곡이 저장돼 있을 정도다.

잠실 예음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인 2006년 무렵 컴퓨터음악(미디)을 배우러 왔던 학생에게 반해 몇 개월 연애 끝에 결혼으로 이어졌다.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집 벽 한면을 채우고 있는 피규어 컬렉션.

"공부 잘하는 큰아들과는 달리, 작은아들은 공부와는 담을 쌓았어요. 하지만 음악적 재능은 특별한 것 같아요. 피아노 경연만 출전하면 평균 3~4위엔 올라가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다수 애니메이션 음악에 관여해서 그런지 두 아들보다 파워레인저, 가면라이더 관련 캐릭터를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애들과 잘 통한다고.

윤준호 작곡가의 취미는 피규어 수집이다. 지금까지 각종 리미티드에디션 포함해 여러 종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오리지널에 도색하는 걸 즐긴다.

"'힙트로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트로트 반주(리듬)에 훅/테마만 살려 랩을 삽입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윤준호 하면 '좋은 작곡가'로 기억되길 바라고, 그렇게 하기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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