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의 MLB스코프] 진짜 '라스트' 댄스였나, 카디널스의 끝없는 추락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심각하다. 오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게 연장 승부 끝에 패하면서 8연패 늪에 빠졌다. 초반 3대0 리드를 지키지 못한 역전패였다.
세인트루이스의 8연패는 2007년 9월 9연패 이후 16년 만이다. 2007년은 세인트루이스가 마지막으로 5할 승률이 좌절된 시즌이다. 세인트루이스는 오늘 패배로 시즌 승률도 2할대로 추락했다(10승24패 0.294). 세인트루이스 역사상 시즌 첫 34경기에서 이보다 더 낮은 승률은 단 두 번 뿐인데, 무려 116년 전의 일이었다(1903년 & 1907년 9승25패 0.265).
세인트루이스의 흑역사는 하나 더 있다. 어제 디트로이트와의 시리즈 1차전을 내줌으로써 이번 시즌 11번의 시리즈 1차전을 모두 패했다. 시즌 개막 직후 시리즈 1차전 11연패는 1981년 캔자스시티 13연패 이후 가장 나쁜 기록이다.
항상 1차전을 지고 출발하기 때문에 시리즈 전적도 좋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11번의 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가 1차전 패배를 극복하고 승리한 건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개막 3연전과 콜로라도 로키스 원정 3연전밖에 없다. 또한 시리즈 1차전 패배로 인해 현재까지 3연승도 하지 못했다.
지난해 세인트루이스는 93승69패로 통산 12번째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2016-2018년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를 딛고 2019년부터 다시 4년 연속 포스트시즌을 이어갔다. 특히 앨버트 푸홀스와 야디에르 몰리나, 애덤 웨인라이트 3인방의 라스트 댄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더 기억에 남는 시즌이었다.
올해도 세인트루이스의 포스트시즌 진출 전망은 낙관적이었다. 푸홀스와 몰리나가 은퇴했지만, 몰리나 대신 포수를 맡아줄 윌슨 콘트레라스를 영입했다(5년 8750만 달러). 세인트루이스는 몰리나보다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 콘트레라스가 팀 전력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현지에서는 세인트루이스 마운드도 보이는 것보다 더 견고하다고 평가했다.
세인트루이스를 향한 밝은 전망은 이내 어두워졌다. 개막 3연전을 2승1패로 마쳤지만, 4연패를 당하면서 5할 승률이 무너졌다. 위태로운 외줄타기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5할 승률에 다가서다가 후퇴하기 일쑤였다. 앞서 언급한 시리즈 1차전 패배가 일상이 되면서 치고 나가는 구간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세인트루이스는 4월 27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를 패하면서 지구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연승과 연패를 좌우하는 건 선발 야구다. 선발진이 강력하면 타선이 약해도 연패를 면할 수 있고, 연패 기간도 단축시킬 수 있다. 그런데 올해 세인트루이스는 선발 야구가 되지 않고 있다. 선발진 평균자책점이 5.44로 내셔널리그에서 세 번째로 높다. 위기에서 팀을 구해 줄 에이스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세인트루이스 선발진은 지난해 조짐이 있었다. 규정 이닝을 채운 두 투수가 30대 중반의 마일스 마이콜라스(12승13패 3.29)와 40대 웨인라이트(11승12패 3.71)였다. 젊은 투수들이 원투펀치로 올라서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겨울 세인트루이스는 마운드 보강을 등한시했다. 외부에서 투수를 한 명도 구해오지 않았고, 오히려 올해 4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마이콜라스의 계약을 3년 5575만 달러로 갱신시켜줬다. 마이콜라스는 올해 연봉을 1575만 달러에서 1875만 달러로 올리고, 2025년까지 연봉 1600만 달러를 보장 받았다(계약금 500만 달러).
세인트루이스의 믿는 구석은 잭 플래허티였다. 지난 3년간 부상에 허덕였던 플래허티가 건강하면 2019년 사이영상 4위 투수의 퍼포먼스(11승8패 ERA 2.75)를 재현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포심 커맨드가 불안해진 플래허티는 첫 두 경기 10이닝 13볼넷을 내주더니 지난 5일 LA 에인절스전에서는 2.1이닝 9피안타 10실점으로 무너졌다(2승4패 ERA 6.29). 이대로라면 선발진에 남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계약을 업그레이드해 준 마이콜라스도 만족스럽지 않다(1승1패 ERA 5.79). 지난해 이적한 스티븐 매츠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다(4패 ERA 6.39). 웨인라이트도 오늘 복귀전에서 5이닝 4실점(8피안타)에 그쳤다. 선발진이 전체적으로 흔들리면서 팀의 연패가 길어진 것이다. 선발진이 붕괴되면 불펜 운영은 당연히 차질이 생긴다.
팀이 이토록 망가진 데 있어서는 올리버 마몰 감독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몰은 2021시즌 후 마이크 실트 감독이 퇴진하면서 깜짝 발탁됐다. 1986년생으로 현역 최연소 감독이며, 두 번째로 어린 로코 볼델리 미네소타 트윈스 감독보다도 5살이나 어리다. 이에 지난해 연장자 3인방을 어떻게 대할지가 화제였다.
지난 시즌이 예행 연습이었다면, 이번 시즌은 마몰의 진짜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본 무대였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존재감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연패 기간에도 팀 분위기를 수습하는 모습이 없었다. 오히려 잘못된 선택들로 팀을 궁지에 몰아 넣었다.
투수 교체는 결과론이다. 그러나 과정이 합당했는지는 따질 수 있다. 이번 시즌 마몰은 투수 교체 타이밍이 대부분 납득하기 어려웠다. 내려야 할 투수를 내리지 않고 더 두고 보면서 그르치는 경기가 셀 수 없었다. 실제로 세인트루이스는 투수가 내려올 때 루상에 남겨둔 승계주자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더불어 가장 많았다(70명).
파격적인 불펜 운영도 통하지 않았다. 지난 4일 에인절스전이 그랬다. 마몰은 마무리 라이언 헬슬리를 7회 2사 후에 올렸다. 헬슬리가 8회 초를 막자 9회 초에는 지오반니 가예고스를 올렸다. 가예고스는 첫 타자 제이크 램에게 홈런을 맞으면서 한 점차 리드를 곧바로 날렸다. 그리고 마이크 트라웃에게 홈런, 앤서니 렌돈에게 적시타를 맞고 1이닝 3실점 패전을 떠안았다. 4월 동안 가예고스는 분명 세인트루이스 불펜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였지만, 변화를 준 불펜 운영이 통하지 않으면 비판 수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도 마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시즌 초반 타격감이 좋았던 놀란 고먼을 플래툰으로 기용한 것도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경기 승부처에서 대타를 내보내는 작전도 거의 통한 적이 없다. 참고로 세인트루이스 대타 타율은 내셔널리그 최하위다.
내셔널리그 팀 대타 타율 하위권
0.167 - 다저스
0.167 - 샌디에이고
0.150 - 필라델피아
0.136 - 세인트루이스
빈약한 선발진과 무기력한 타선, 여기에 감독의 아쉬운 지도력이 더해진 세인트루이스는 벌써 홈구장 부시스타디움에서 야유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그들이 우리보다 좌절감이 더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불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말이었다.
과연 세인트루이스는 팀 DNA에 걸맞은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커다란 전환점이 나와줘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이 전환점을 마련해 준 몰리나는 더 이상 팀에 없다. 물론, 떠난 몰리나를 계속 그리워한다면 세인트루이스의 가을은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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