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앞에 최애 사진···‘예절샷’이란 무엇인가[K팝 머글의 덕후 도전기]

최민지 기자 2023. 5. 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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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A씨가 카페에서 커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찍은 ‘예절샷’. 포토카드에는 A씨가 좋아하는 배우 김강민의 어린시절 모습이 담겨있다. A씨 제공
흔히 ‘덕질 DNA는 따로 있다’고들 합니다. 타고난 기질에 따라 덕질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나뉜다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덕후’와 ‘머글’ 사이에는 거대한 강이 흐릅니다. 머글에게 덕후의 언어는 마치 외국어 같습니다. 수시로 진화를 거듭하는 K팝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콘텐츠 소비의 개인화가 심화하면서 이 간극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덕후 DNA가 없더라도 ‘학습’은 할 수 있습니다. ‘K팝 머글의 덕후 도전기’는 이 간극을 줄여보는 코너입니다. K팝 세계의 트렌드와 토막 상식을 전합니다. 덕후는 못 되어도, ‘좀 아는’ 머글은 될 수 있습니다.

※머글 :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유래한 단어로 마법사가 아닌 보통의 인간을 가리킨다. 현재는 특정 분야를 깊이 파는 ‘덕후’(오타쿠)의 상대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덕후들이 한 자리에 모일 때면 반드시 치르는 의식이 있다. 가방에 소중히 보관해 둔 ‘최애’(가장 좋아하는 스타)의 ‘포카’(포토 카드)를 꺼내 한데 모은 뒤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들이 사진을 찍는 때와 장소는 다양하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뒀을 때도, 풍경이 아름다운 여행지일 때도 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각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업로드한다.

일명 ‘예절샷’이라 불리는 이 의식은 덕후 세계의 놀이 문화 중 하나다. 최근 1~2년 사이 K팝 덕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졌다. 예절샷이라는 단어가 언제,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불명확하다. 덕후라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예절이라는 뜻에 사진을 의미하는 ‘샷’을 붙였다는 추측이 나올 뿐이다.

예절샷을 찍을 때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별다른 장치 없이 포카만 놓고 찍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예쁘게 ‘탑꾸’된 포카를 내고 싶은 것이 덕후의 마음이다. ‘탑꾸’란 탑로더 꾸미기의 줄임말이다. 탑로더는 포카를 넣을 수 있는 케이스를 카리킨다. 탑꾸에는 덕후의 개성이 반영된다. 간단하게는 탑꾸용으로 판매되는 탑로더를 사거나 스티커와 파츠를 붙이는 방법이 있다. 일부 솜씨 좋은 덕후들은 LED를 사용해 포카가 번쩍번쩍 빛을 내게 만들기도 한다.

유튜브에 ‘탑꾸’를 검색하면 K팝 덕후들이 올린 탑꾸 영상이 나온다. 덕후들은 포토 카드를 예쁘게 꾸미는 방법을 공유하는 데 적극적이다. 유튜브 갈무리

덕후들은 왜 예절샷을 찍을까. 지난 20년간 아이돌 그룹과 래퍼, 밴드 등 여러 스타들을 두루 덕질해 온 직장인 A씨도 요즘 예절샷 찍는 재미에 빠졌다. 현재 배우 김강민을 최애로 꼽은 그는 예절샷 찍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저는 포카를 너무 좋아해요. 강민이를 좋아하니까 갖고 다니면서 보고 싶거든요. 들여다볼 때마다 왠지 마음의 안정을 주기도 하고요. 사진을 찍는 건 재미있기 때문인데요.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갔을 때 ‘우리 애기도 같이 왔다’ 이런 느낌으로요.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은 어디 올리기 부담스러운데, 최애 사진을 나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해요.”

팬들 사이에서 예절샷이 유행하자 이에 응답하듯 K팝 그룹 멤버들이 스스로 ‘셀프 예절샷’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에스파, 소녀시대, 레드벨벳, 엔믹스 등 그룹의 멤버들은 자신의 모습이 담긴 포카로 직접 사진을 찍었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은 최근 자체 콘텐츠를 통해 직접 예쁘게 꾸민 포카로 예절샷을 찍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타가 찍은 예절샷이 ‘머글 같다’고 해도, 즉 어설프다고 해도 상관없다. 덕후들에겐 그마저도 기쁨이자 덕질의 연료가 된다.


☞ [K팝 머글의 덕후 도전기] ‘홈마’를 보는 두 가지 시선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4130700001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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