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왕관 쓴 찰스 3세…변화 수용했지만 왕실 미래는 불투명

정원식 기자 2023. 5. 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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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간)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대관식을 마친 후 런던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UPI연합뉴스

찰스 3세 영국 국왕(75)이 6일(현지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마침내 왕관을 썼다. 1958년 그가 왕세자로 책봉된 지 65년 만이다. 영국 왕실은 이날 대관식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함을 보여줬으나 군주제에 대한 늘어가는 비판과 영연방의 결속력 약화, 가족 간 불화라는 도전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오전 11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대관식에서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2.23㎏ 무게의 왕관을 찰스 3세의 머리에 씌웠다.

벨벳과 금빛 레이스로 장식된 망토를 걸친 찰스 3세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의 본보기로, 나는 섬김받지 않고 섬길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원수급 100여명이 포함된 2200여명의 참석자들이 합창한 “신이여 찰스 왕을 보호하소서”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울려 퍼졌다.

4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대관식은 오직 영국에서만 볼 수 있는 왕실 스펙터클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날 행사는 1066년 이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40번째 대관식으로, 찰스 3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이후 70년 만이다.

이날 대관식은 그간의 시대 변화를 반영해 다양성과 포용성에 초점을 맟췄다. 사상 최초로 유대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 시크교 등 다양한 종교 신자들이 대관식에 참석해 찰스 3세에게 비종교적 물품을 전했다. 최초로 여성 사제가 성경을 낭독했고 찬송가는 영어만이 아니라 웨일스어, 게일어, 아일랜드어로도 불렸다. 또 찰스 3세의 기도에 “모든 종교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표현이 들어감으로써 종교적 다양성을 적극 수호하겠다는 왕실의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찰스 3세의 약속과 달리 ‘간소한’ 대관식은 아니었다. 이날 대관식 참석 인원은 70년 전의 4분의 1로 줄었으나 대관식에 들어간 비용은 최소 1억 파운드(약 1685억원)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비용의 2배다. 영국 일간 ‘아이(I)’는 생활비 위기 속에서 간호사, 교사 및 기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파업을 벌이는 가운데 열리는 대관식에 대해 ‘혈세 낭비’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찰스 3세 대관식이 열린 6일(현지시간) 버킹엄궁으로 이어지는 런던의 대로 ‘더몰’에서 시민들이 왕실 가족들이 버킹엄궁 발코니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찰스 3세는 왕관과 함께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와 경제난으로 흔들리는 위기의 시대에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자신이 약속한 왕실의 현대화도 추구해야 하는 숙제도 함께 넘겨받았다. 하나 같이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미래 세대인 젊은층의 군주제에 대한 지지는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다. 지난달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연령대의 군주제 지지는 77%로 10년 전과 비슷했으나 18-24세 연령대에서는 군주제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3분의 1 미만을 차지했다. 이는 10년 전의 반토막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트래펄가 광장에서는 군주제 반대 단체 ‘리퍼블릭’ 회원 등 시민 2000여명이 1649년 청교도 혁명으로 처형된 찰스 1세 동상 아래서 “나의 왕이 아니다”라고 적힌 노란색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와 글래스고, 웨일스 카디프 등 영국 내 다른 지역에서도 수백명이 모여 반군주제 시위를 벌였다. 런던 경찰은 대관식 관련 소란 행위, 공공질서 위반, 치안 방해, 공공 방해 모의 등의 혐의로 52명을 체포했다. 이에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경찰이 비폭력 시위대를 강압적으로 체포했다며 “영국이 아니라 러시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영연방을 이탈하려는 국가들의 원심력에도 가속이 붙고 있다. 카리브해 영연방 국가 벨리즈의 조니 브리세뇨 총리는 지난 4일 가디언 인터뷰에서 “2021년 공화국으로 전환한 바베이도스 다음 차례가 벨리즈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밝혔다. 말린 마라후 포트 자메이카 법무부 장관도 이날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대관식이 공화국 전환 계획에 속도를 내게 했다”면서 이르면 내년에 공화국 전환을 위한 국민투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파푸아뉴기니, 자메이카, 앤티가 바부다, 바하마, 벨리즈 등 영연방 12개 국가 원주민 지도자들은 같은날 식민 지배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서한을 찰스 3세 앞으로 보냈다.

차기 왕위 계승 1순위인 윌리엄 왕세자와 찰스 3세의 둘째 아들 해리 왕자의 불편한 관계도 불안 요인이다. 해리 왕자는 이날 부인 매건 마클과 자녀들 없이 혼자 대관식에 참석했고, 대관식에서도 윌리엄 왕세자와 다른 줄에 앉았다. 왕실 가족들의 버킹엄궁 발코니 인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해리 왕자는 넷플릭스 다큐와 자서전을 통해 왕실과 윌리엄 왕세자의 치부를 폭로해 왕실의 눈총을 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찰스 3세의 동생 앤드루 왕자도 성추문에 휩싸여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국가적 위상 하락과 찰스 3세의 첫 결혼을 둘러싼 스캔들이라는 격랑 속에서도 왕실에 대한 영국민들의 신뢰를 굳건히 유지했다. 오랜 기간 미디어를 통해 구축한 이미지가 이 같은 신뢰 형성에 기여했다. NYT는 그러나 찰스 3세는 “수십년 동안 국제적 인물이었지만 그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의 어머니, 아내, 아이들이었다”면서 “그에게는 (엘리자베스 2세처럼) 오랜 기간 쌓인 애정이나 유명세가 없고, (나이를 고려할 때) 앞으로 쌓을 시간도 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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