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1년…지출 늘리면서 부채 줄이는 마법은 없었다
“당초 정부가 올해 세수(세금 수입) 전망을 보수적으로 잡았는데도 2022년 말과 2023년 1분기 부동산·주식시장, 경기가 빠르게 위축돼 관련 세수들이 당초 예상보다 덜 걷히고 있다. 세수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 살아야 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3년 4월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말이다. 올해 세수 결손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인정하며 예산을 아껴 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3년 1분기(1~3월) 국세 수입은 87조1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조원(21.6%) 줄었다. 목표 대비 세금이 걷히는 속도인 ‘진도율’은 3월까지 21.7%로, 지난해 같은 기간 진도율 28.1%보다 크게 뒤처졌다. 정부가 계획한 2023년 국세 수입은 400조5천억원인데, 이런 속도라면 애초 예상보다 20조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10조원 이상 세수 결손이 발생하는 건 2014년 이후 처음이다.
고물가·고금리, 서민 부담 가중
세금 항목별로 줄어든 내용을 뜯어보면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다. 세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득세는 2022년 같은 기간보다 7조1천억원(20.1%) 줄었다. 기재부는 “부동산 거래가 위축되면서 양도소득세가 줄었고, 경기가 나빠 소규모 자영업자에게 종합소득세 납부를 미뤄준 게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요 세원인 법인세 역시 2022년 같은 기간보다 6조8천억원(21.9%) 감소했다. 2022년 4분기부터 수출 부진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영업이익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3대 세목 가운데 마지막 하나인 부가가치세도 2022년 같은 기간보다 5조6천억원(25.4%) 줄었다.
세금이 잘 들어오지 않는 건 경기 부진 때문이다. 지난 1년간 고물가·고금리에 서민 경제의 부담이 가중됐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당시 연 1.75%이던 기준금리는 1년 만에 연 3.5%로 두 배 올랐다. 금리를 빠르게 올렸지만 물가는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2년 5월 5.4%에서 2023년 4월 3.7%로 정점을 지나 떨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가격변동성이 심한 농산물·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1년 내내 4%대 이상 유지하고 있다. 국민경제 총량을 나타내는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22년 2분기 0.7%(전 분기 대비)에서 3분기 0.3%, 4분기 -0.4%로 떨어졌다가 2023년 1분기 0.3%로 다소 올랐다.
눈에 띄는 점은 무역 실적이 크게 악화한 것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던 수출은 2022년 10월부터 2023년 4월까지 7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석유화학 등이 글로벌 수요 둔화와 유가 하락 등의 영향을 받아 실적이 나빠졌다. 특히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반도체 수출액은 2022년 8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수요 둔화로 재고가 쌓이자 급기야 삼성전자가 2023년 4월 반도체 감산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3년 4월 수출입동향 보도자료에서 “반도체 업황이 단기간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주요 메모리업체 감산에 따른 공급축소 효과 등 영향으로 3분기 이후 개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14개월 연속 무역적자, 구조화되나
수출액보다 수입액이 더 많은 무역적자는 2022년 3월부터 14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무역수지가 이렇게 오랜 기간 나빠진 건 1995년 1월부터 2년5개월간 연속 무역적자가 난 이후 처음이다. 최근의 수출 부진과 무역적자를 단순히 경기 영향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최근 무역 상황을 보면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2000년 이후 한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본 적 없었다. 2013년 흑자 규모가 628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21년까지 연 200억달러 이상 흑자를 유지하다가 2022년 흑자가 12억달러로 급감했고, 2023년 들어서는 3월까지 79억달러 적자를 기록 중이다. 2022년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주요 지역을 봉쇄하면서 중국 경제가 둔화했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중국과의 기술경쟁력 격차가 좁아진 측면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5월1일 낸 보고서에서 “최근 한국의 대중국 교역수지 악화는 코로나19, 글로벌 경기 등 영향이 큰 것으로 판단되지만, 중국의 교역경쟁력 상승이 동반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기술력 발달로 중국 제품이 한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빠르게 상승했고, 상대적으로 중국에서 한국 제품의 경쟁력은 낮아졌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혁신 능력을 높이는 등 본원적인 산업 경쟁력을 개선하고 시장 다변화로 안정적인 교역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불평등이 심화하고 산업구조도 바뀌면서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지난 1년간 보여준 경제정책은 이런 대세에 역행하는 ‘작은 정부’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로 쓴 수단은 ‘감세’다. 세금을 덜 걷으면 기업이나 가계가 투자·소비를 더 해서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감세 만능론’에 기반한 것이다. 정부는 2022년 7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3%포인트 내리는 등 과세표준 구간별 감세 계획을 발표했다가 세수 부족 우려 등으로 과표구간별로 1%포인트씩 내리는 것으로 확정했다. 보통 12월 결산법인은 그해 영업실적을 바탕으로 8월에 법인세 절반을 먼저 내고(중간예납) 나머지 절반을 이듬해 3월에 낸다. 2023년 상반기에 나타난 기업 실적 부진과 감세 효과가 당장 8월 법인세 수입부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또 반도체 기업의 투자 촉진을 위해 세액공제를 늘리는 이른바 ‘케이(K)-칩스법’을 발의해 3월30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은 최대 25%, 중소기업은 최대 35%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유류세 인하 역시 8월 말까지 연장된 상태다.
종부세, 법인세 깎아주면서 건전재정?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종합부동산세를 낮춘 정부는 지방세인 재산세까지 줄여주는 정책도 추진한다. 5월2일 행정안전부는 1주택자 재산세 부담을 완화한다며 과세 기준에 적용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공시가격을 과세표준에 반영하는 비율)을 낮춘다고 발표했다. 이 비율은 2021년까지 60%였다가 윤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22년 45%로 대폭 낮췄는데, 2023년엔 공시가격 3억원 이하 주택은 43%, 3억원 초과~6억원 이하 주택은 44%로 낮추고, 6억원 초과 주택은 45%를 유지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런 감세로 2023년 예상되는 주택 재산세는 5조6798억원으로 2022년보다 1조40억원(15%)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감세를 밀어붙이는 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지출 효율화’로 해결한다는 입장이다. 불필요한 예산을 줄여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추경호 부총리는 4월17일 국회 기재위에서 증세 계획을 묻는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세수 부족이 금년에 일부 있더라도 과연 구조적이냐, 이를 증세로 연결해서 가야 할 것이냐는 제일 마지막에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저희는 재정지출 효율화로 먼저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수정예산) 편성 계획도 없다고 해 결국 비공식적으로 각 부서에 예산 불용을 종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방식은 국회 동의를 거쳐 확정돼야 할 예산을 정부 임의로 적게 쓰는 것이어서 민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국채를 발행해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2023년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의 50.4%인 1134조4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건전재정’ 기조를 천명한 정부가 여기서 대규모 빚을 더 늘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증세도 하지 않고 빚도 늘리지 않으면 결국 지출을 대폭 삭감해야 하는데 정부는 이마저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재정 운영에 관한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적극적 재정 운용 통한 공공지출 확대 시급”
정부는 현재 2024년 예산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재부의 2024년 예산안 편성 지침을 보면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약자 복지,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 국방·치안 등 국가의 기본기능 강화에 중점을 두고 편성하고, 현금성 지원사업, 불투명하고 부정하게 집행된 보조금 등 재정 누수 요인은 차단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참여연대·한국노총 등 13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5월2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지출의 원칙은 가정 살림과 반대로 경기가 부진할 때 지출을 늘리고 경기가 과열될 때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어떠한 정부도 지출을 늘리면서 세금도 줄이고 부채를 줄일 수 없다”며 “최근 악화되는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 재정 운용을 통한 공공지출 확대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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