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5월, 이팝나무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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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가 우리말을 조사·연구하던 1930년대 쌀밥을 '이밥'이라 했다.
이팝나무꽃은 그보다 조금 늦게 핀다.
그 길에서 보면 하얀 꽃에 덮인 이팝나무는 마치 소복을 입은 것 같아 보인다.
서울에선 이제 4월 하순이면 이팝나무꽃이 활짝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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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조선어학회가 우리말을 조사·연구하던 1930년대 쌀밥을 ‘이밥’이라 했다. 전라남도에서는 ‘니팝’이라 했다. 니팝나무는 꽃송이가 사발에 퍼담은 쌀밥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배고픈 사람의 눈이 아니라도 그 꽃잎은 눈부시게 하얀 쌀 같아 보인다. 니팝나무는 발음하기 좋게 곧 이팝나무로 이름이 바뀌어 사전에 실렸다. 수백년 살아남은 고목이 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들은 순천, 광양, 고창, 진안 등 전라도와 김해, 양산, 포항 등 경상도에 다 있다. 쌀 생산이 많은 곡창지대에 자생지가 많았던 게 우연 같지가 않다.
꽃 모양이 마치 좁쌀(껍질 벗긴 조)로 지은 밥처럼 보인다는 조팝나무는 4월부터 꽃을 피운다. 이팝나무꽃은 그보다 조금 늦게 핀다. 1980년 5월18~27일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 피 흘려 싸우던 사람들을 조용히 지켜보던 게 바로 이팝나무다. 그 인연을 살려 1994년 5·18묘지를 새로 조성할 때 묘지로 가는 길 양편에 3㎞에 걸쳐 이팝나무 가로수 길을 조성했다. 그 길에서 보면 하얀 꽃에 덮인 이팝나무는 마치 소복을 입은 것 같아 보인다.
‘5월 광주항쟁’을 상징하는 그 꽃은 오늘날 가로수로 전국에서 인기가 아주 높다. 산림청 집계를 보면, 2021년 현재 우리나라 가로수는 왕벚나무(112만그루), 은행나무(104만그루), 이팝나무(72만그루) 차례로 많다. 서울시에도 2011년 8874그루이던 이팝나무 가로수가 2019년 1만7639그루로 늘어났다. 전체 가로수의 5.8%로, 은행나무,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느티나무, 벚나무에 이어 다섯번째로 많다. 2011년에는 회화나무, 메타세쿼이아가 이팝나무보다 더 많았는데 제쳤다. 은행나무, 회화나무, 메타세쿼이아가 줄어든 자리를 이팝나무로 다 채웠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이 심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이팝나무의 개화 시기도 점점 앞당기고 있다. 서울에선 이제 4월 하순이면 이팝나무꽃이 활짝 핀다. 그렇다고 ‘5월 꽃’의 이미지가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 이팝나무는 꽃이 20일 넘게 간다. 4월27일 광주를 찾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광주항쟁을 ‘북한 간첩이 선동한 폭동’이라고 했다. 그런 넋 나간 소리에 밀리지 않도록, 피로써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낸 이들을 기억해야 할 ‘이팝나무꽃 필 무렵’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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