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K콘텐츠가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가져간다?

정덕현 문화 평론가 2023. 5. 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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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원대 넷플릭스 투자보다 더 중요한 것들…K콘텐츠 지속 성장 위해선 합리적인 분배 구조 절실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이제 K콘텐츠라는 지칭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위상이 달라졌다. 하지만 이런 위상과 달리 K콘텐츠는 그만한 실속을 챙기고 있을까. 현재 K콘텐츠의 지속 성장을 위해 진짜 필요한 건 과연 무얼까. 

4월24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이뤄진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진 접견에서 넷플릭스의 공동 최고경영자 테드 서랜도스는 향후 4년간 한국에 25억 달러(약 3조3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앞으로 4년간 한국 드라마, 영화 그리고 리얼리티쇼의 창작을 도울 것"이라며 "이 금액은 우리가 한국에 진출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투자한 총금액의 2배에 달하는 액수"라고 밝혔다. 

이 발표는 곧바로 언론들에 윤 대통령의 '투자 유치' 성과로 보도됐다. 하지만 몇몇 언론은 과연 이걸 '투자 유치'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넷플릭스의 K콘텐츠 투자액수는 지난해에만 8000억원 규모에 이르렀다. 올해 역시 8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한다고 넷플릭스가 발표한 터였다. 이 같은 흐름이라면 굳이 공식 발표가 아니더라도 4년간 25억 달러 규모가 채워지는 셈이라는 입장이다. 즉 이건 이번 방미의 성과라기보다는 넷플릭스의 정해진 K콘텐츠 투자 방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4월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영빈관 접견장에서 열린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진 접견에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와 함께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투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넷플릭스 투자,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넷플릭스의 이런 투자는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거둔 성과와 무관하지 않다. 《오징어 게임》은 253억원의 제작비로 1조원의 경제 가치를 만들었다. K콘텐츠의 위상은 그 후로 지속적으로 이어져 2022년에도 한 해 동안 전 세계 넷플릭스 회원의 60%가 1편 이상의 K콘텐츠를 시청했다(넷플릭스 발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이 큰 성과를 냈다. 올해도 《더 글로리》가 역대 비영어 TV부문 중 가장 많이 본 콘텐츠 5위에 올랐다. 즉 K콘텐츠가 거둔 일련의 성과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넷플릭스로서는 이에 대한 투자가 당연한 비즈니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 방문에 대한 호의로서 이뤄진 이러한 투자 발표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나, 과연 그 성과를 말하는 건 어딘가 그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고군분투해온 K콘텐츠 종사자들에게는 섭섭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과연 정부는 K콘텐츠의 이러한 비약적 성장에 그만한 지원을 해줬을까. 그래서 그 성과를 이야기하는 것에 당당해도 될까. 

《오징어 게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K콘텐츠가 매력적인 건 이른바 '가성비'가 좋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콘텐츠의 완성도는 높은데 제작비가 착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제작비가 착하다는 건 제작 현장을 들여다보면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심지어 누군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과노동·저임금 문제와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제작비 분배 문제까지 이 '착한 제작비'와 무관할 수 없어서다. K콘텐츠 종사자 대다수가 지속 가능한 K콘텐츠를 위해 필요한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공평한 분배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실제로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여전하다. 이러한 착취 구조로는 K콘텐츠의 가장 큰 기반이 되는 '노동력'이 지탱하기 어렵게 된다. 

또 한 가지 K콘텐츠가 저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는 건 지식재산권(IP)을 모두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넷플릭스도 그들이 제작하는 방식에 따라 IP에 대한 기준을 다르게 세워두고 있다. 즉 전액 투자하는 작품은 제작비의 약 10% 수익을 제작사에 주는 대가로 IP 전체를 가져가지만, 제작사가 제작비를 내고 제작한 작품에는 방영권 비용만 내고 방영하는 대신 IP를 가져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의 경우 100% 제작비를 넷플릭스가 투자해 IP 전부를 가져갔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경우 에이스토리가 제작해 방영권만 넷플릭스에 준 사례로 IP는 에이스토리가 갖게 됐다. 

하지만 거대한 자본력을 가진 넷플릭스 앞에서 제작비 압박을 받는 중소 제작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제작비 전액을 투자받는 조건으로 IP를 내주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결국 좋은 작품에 대한 기획들을 갖고 있어도 돈이 없어 IP를 파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만일 정부가 K콘텐츠의 IP를 지켜내는 일이 중차대한 문제라는 걸 인식한다면, 중소 제작사들이 IP를 지킬 수 있게 제작비 지원을 위한 시스템 마련에 앞장설 수 있지 않을까. 

'재상영 분배금'과 '창작자 권리 보장' 문제 또한 지속 가능한 K콘텐츠엔 절실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즉 한국과 달리 미국, 유럽, 남미권 일부 국가에서는 해당 국가 넷플릭스로 서비스되는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재상영 분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래서 K콘텐츠가 넷플릭스에서 힘을 받기 시작하자 한국의 제작자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재상영 분배금'을 이들 외국으로부터 받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왜 국내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 프랑스의 경우는 넷플릭스의 IP 독점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함으로써 창작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이런 방안을 마련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넷플릭스가 2022년 12월16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의 한 건물에 마련한 넷플릭스 서울 사랑방에서 콘텐츠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창작자 권리는 왜 보장받지 못하나 

국회는 최근 창작자 권리를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즉 연출, 각본 등 영상물 저작자가 제작사에 IP를 양도했어도 OTT나 방송사 등 콘텐츠 최종 제공자에게 보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발의된 개정안이다. 하지만 이 법안 발의는 현재 수개월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시장원리를 무시한다는 이유에서다. 불균형한 흐름에도 개입하기보다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로 이를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창작자 권리 문제는 이들이 사실상 K콘텐츠의 동력이라는 점에서 중차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IP 문제만 하더라도 넷플릭스 같은 거대 플랫폼과 IP를 전부 가져가는 계약을 제작사가 어쩔 수 없이 하면, 이에 참여한 창작자들도 고스란히 피해를 본다. 만일 작품이 엄청난 성공을 거둬도 리메이크나 부가 사업 등을 통한 수익 다각화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2016년부터 현재까지 K콘텐츠의 비약적 성장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 5~6년 사이에 한국 콘텐츠는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로 불릴 정도의 위상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넷플릭스가 K콘텐츠에 일방적으로 제공한 수혜라고 볼 수는 없다. 넷플릭스 역시 K콘텐츠를 통해 지난 몇 년간 치열해진 글로벌 OTT 경쟁에서 상당한 성과들을 낸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양자가 앞으로도 계속 '윈윈'할 수 있는 합리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가 하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는 없다. 그만한 성과를 내는 작품들이 창작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합리적인 투자와 더불어 이뤄지지 않는다면 향후에도 계속 나올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가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양자가 서로 공평한 분배 구조를 만들어낼 때 그 수익은 지속 가능해진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그래서 단지 투자 유치가 아니다. 좀 더 합리적인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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