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첫 파독광부 유한석 "탄광 막장은 생지옥…경제기여 자부심"

이율 2023. 5. 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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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철 "말못할 고생 모든 것 각오하고 견뎌내…편가르기 그만해야"
독일 파독광부 60주년 기념식서 만난 파독광부 1진들

(에센[독일]=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독일에 60년 전 처음으로 파견된 광부 중 일원인 파독광부 1진 유한석(85)씨는 당시 독일 탄광 막장이 '생지옥'이었다고 회상했다.

60년 전 독일에 사상 처음으로 파견된 파독광부 1진 유한석씨 (에센[독일]=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독일에 60년 전 처음으로 파견된 한국인 광부 중 일원인 파독광부 1진 유한석씨가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5.6

유씨는 독일 에센에서 파독광부 60주년을 맞아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광산 막장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면 생지옥"이라며 "2천m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37∼38도에 달하는 고온 속에 산소가 줄어들어 숨이 답답한 데다 막장 안의 먼지와 돌가루를 호흡하면 목이 아팠다"고 말했다.

휴식 시간도 없이 일을 하다 배가 고파 빵조각을 먹으면 검은 석탄 가루가 묻어 모래를 씹는 맛이 났다. 석탄을 캐내기 위해 가장 앞장서 굴을 뚫으면서 천장과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둥을 설치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유씨는 "당시 한국인 광부들은 8시간 근무 후 연장근무를 할 것인지 물어보면 빨리 돈을 벌어 고국으로 보낼 욕심에 모두 '야(Ja.예)'라고 답했는데, 연장근무 7시간을 추가해 15시간을 일하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세수하면 반드시 코피가 났다"고 기억했다.

유씨는 한국광부 파견에 관한 한독협정서 체결 이후 1963년 12월 22일 오후 6시 독일 뒤셀도르프공항에 처음 도착한 광부 123명의 일원이다.

우리나라의 광부 파독은 당시 유씨를 포함한 1진 247명이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77년까지 모두 7천936명이 광부로 독일에 파견됐다.

유씨는 대구 농촌진흥원에서 일하던 중 평균 월 650∼950마르크(당시 원화가치 기준 약 13만∼19만원)로, 당시 월급 3천여원의 수십 배에 달하는 서독의 광부 모집 광고를 보고 응시해 130:1의 경쟁률을 뚫고 광부들을 실은 첫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부친이 사업을 하다 도산해 집안을 일으키고, 당시 서울대에 합격한 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후에 동생은 대학교수가 됐다.

60년 전 독일에 사상 처음으로 파견된 파독광부 1진 유한석씨 (에센[독일]=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독일에 60년 전 사상 처음으로 파견된 한국인 광부 중 일원인 파독광부 1진 유한석씨가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5.6

유씨는 독일에 온 뒤 3개월이 지나던 무렵 퇴근 후 고향·연애 이야기 등을 나누던 같은 방 동료 광부가 광산 안에서 사고가 나 그 자리에서 사망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다른 동료들과 관을 나를 때 눈물을 쏟으면서 부르던 애국가가 너무 가슴이 아파 아직도 애국가만 들으면 눈물이 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막장에서 천장과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둥을 설치하다 스스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적도 있다.

유씨는 3년여 광부 생활 이후 철공소에서 일하다가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에 입사해 실험실과 제조 현장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했다.

그는 "대학생들도 많았고, 다들 고등교육을 받았는데 힘이 어디서 나오나 신기해했는데 모두 자기 몸을 희생한다는 생각도 안 하고 고국의 가족에 한 푼이라도 더 보태려는 악착같은 마음으로 일했다"면서 "우리가 가장 처음 와서 외화를 벌어들였으니 그나마 경제성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는 데에 지금도 어디를 가나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1961년 서독에서 1억5천만 마르크(당시 원화가치 기준 약 300억원)의 상업차관을 받기로 합의하고, 이후 번성하던 독일 경제에 부족한 인력을 지원하기 위해 1963년 한국 광부 파견에 관한 한독협정서를 시작으로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다.

1964∼1975년 광부와 간호사들의 국내 송금총액은 1억7천만 달러로, 초기에는 당시 총수출액 대비 2%에 육박하는 큰 금액이었다.

60년 전 독일에 사상 처음으로 파견된 파독광부 1진 김근철씨와 부인 강신자씨 (에센[독일]=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60년 전 독일에 사상 처음으로 파견된 파독광부 1진 김근철씨와 부인 강신자씨가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5.6

1963년 12월 22일 유씨와 함께 처음으로 독일 땅을 밟은 김근철(86)씨는 당시 파독광부들의 실상은 정말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씨와 같은 독일의 대표적 공업지대인 루르 지역 아헨 인근 메르크슈타인 아돌프 광산에서 한국인 광부들을 위한 통역을 담당했다.

그는 "그때 광산에서 다들 얼마나 고생한 줄 아십니까"라고 반문하면서 "실상은 정말 겪어본 사람만 안다"고 강조했다.

전남 나주에서 아버지와 농사를 짓다 서독 광부 모집에 응시한 그는 "실업을 면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우리는 희생했지만,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견뎌냈다"면서 "우리는 고생했지만, 우리 후세대들은 독일에서 인정받는다"고 밝혔다.

그는 "고국의 발전이 느껴지지만, 편을 갈라서 싸우는 내분은 그만둬야 한다"면서 "서로 상부상조하고 서로를 위해 평화롭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파독광부 800여명의 평균 연령은 78세로 독일에 처음으로 파견된 1진 광부들은 구순을 바라보고 있어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다.

6일(현지시간) 독일 에센 파독광부기념회관에서 열린 파독광부 60주년 기념식에는 유한석, 김근철, 유재천 등 파독광부 1진 4명이 참석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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