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선적 리더십…‘정치가 사라졌다’[윤석열 정부 1년]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 1년을 맞는다. 지난 1년의 시간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단선적인 직진형 리더십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일방향 ‘개혁’을 압박할 수 있지만 개혁 동력을 마련하긴 어렵다. 대통령 ‘결단’으로 대외 정책을 바꿀 수 있지만 광범위한 지지를 얻긴 어렵다. 여당을 장악할 수 있지만 야당과 협치하긴 어렵다.
이같은 리더십에 극단적 정치실종이 결합하면서 정국은 이완 없는 긴장 상태로 고정됐다. 결과적으로 내치·외치·정치 등 각 분야에서 경직성이 강화한 반면 역동성은 퇴색했다. 윤석열 정부 명운이 달린 취임 2년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한국 사회의 ‘결정적 시간’이 함께 걸렸다.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최초의 0선 대통령, 정치입문 8개월만의 당선이라는 기록 속에 기대와 우려를 함께 받으며 취임했다. 1년간 각 분야의 국정운영은 ‘선명한 선택 → 일관된 추진 → 비판 정면돌파’로 요약된다. 국정 방향 설정에서 피아 구분을 선명하게 하고 이를 일관되게 밀어붙이면서 반대 여론 등은 뚫고 나가는 방식이다. 취임사에 35번, 최근 미국 의회 연설에 46차례 등장한 ‘자유’를 이 모든 것의 기반으로 깔았다.
‘ABM’·피아 구분에 집중한 정책
정책 면에선 전임 문재인 정부의 반대방향을 택하는 ‘ABM(Anything But Moon)’이 피아를 가르는 선명한 기준이 됐다. 전임 정부 탈원전 정책은 “지난 5년 동안 바보 같은 짓”을 했다며 백지화했다. 부동산 정책은 ‘정치와 이념’에 기반했다며 방향을 돌렸다. 대북 정책은 “교실에서 오직 한 명의 친구(북한)에게만 집착하는 학생”에 빗대 비판했고, 대일 외교는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를 방치했다”고 화살을 돌렸다.
정책의 피아 구분은 노동 ‘개혁’ 추진 과정에서 극대화됐다. 부패 기득권 세력과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일부 노동조합을 등치시키면서 적대시했다. 노조 조합원과 비조합원, 기득권과 미래 세대 등 이분법적 접근 속에 노동 개혁은 ‘노조 개혁’으로 규정됐다. 노동시장의 중층적 구조와 복잡한 이해관계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 지워졌다. 개혁의 한 축인 노조와의 대화 노력은 미약했다. 개혁 찬반을 둘러싼 진영 구도가 강화되면서 광범위한 개혁 동력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는 ‘주69시간 근로제’ 파문으로 이어졌다.
‘검찰공화국’은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검사 출신들이 대통령실을 장악했고, 총리실과 교육부, 금감원 등에까지 전면적으로 배치됐다. 검찰 친위부대를 통한 통치가 이뤄지면서 권력기관 개혁은 후퇴했고, 견제와 균형도 사라졌다. ‘법치주의’를 앞세운 검찰식 사고방식이 윤 대통령 통치의 틀로 자리잡았다. 정국 주도권을 쥐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데만 집중했고 정치적 반대 측과의 대화와 타협은 사라졌다.
모호성 버리고 미국 밀착
거대 야당에 막힌 국내 입법과 달리 대외 정책은 방향 전환 선언부터 실제 구현까지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핵심은 전임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 폐기에 이어진 선명한 선택으로 요약된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안보와 경제 등 모든 면에서 명료하게 미국을 택했다. 한·미·일 3국 공조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에 맞춰 예민한 한·일관계도 선제적으로 풀었다. 강제동원(징용) 배상 문제에서 일본에 면죄부를 준 선택은 대승적 ‘결단’으로 포장됐다. 피해 당사자에 대한 사전 설득과 대화보다는 윤 대통령의 결단과 ‘사후 설명’이 이뤄졌다. 부정적 여론과 반발에는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을 언급하며 역시 정면돌파를 택했다. 사실상 대국민 담화였던 지난 3월2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과거사 사과를 요구하기보다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러시아를 향한 외교 공간은 대폭 축소됐고, 한반도에는 긴장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분명한 선택’에 따라온 ‘분명한 리스크’는 취임 2년 차부터 당장 맞닥뜨릴 과제다.
요지부동 ‘고체 정부’
정치에서는 협치를 거부했다.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경색과 이완이 반복되며 출렁이던 한국 정치의 익숙한 풍경이 사라졌다. 윤석열 정부 첫 1년은 ‘최대 공약수’를 찾는 정치가 사라진, ‘무한 경색’ 국면으로 고정됐다.
윤 대통령발 협치 신호는 취임 첫달 코로나19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의회주의자’를,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국민 모두가 광주 시민’이라고 선언한 것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끊겼다. 야당 지도부와의 만남은 전무했다. 검찰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권 인사 수사가 본격화하며 진영간 대결 국면은 강화됐다.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실 폐지로 검찰 수사에 표면적 거리를 뒀지만, 이 대표 기소 전부터 대화의 다리를 끊으면서 국정운영 파트너에서 배제했다.
거대 야당이 입법권 단독 행사로 맞대응하며 정치 영역은 더 좁혀졌다. 극단적 대립과 정치 실종 비판이 이어졌지만 기조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 등 국정과제 달성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윤 대통령은 취임 2년차에 명운을 건 결정적 시간에 진입한다. 내년 4월 치러질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소야대 국면을 뒤집느냐에 따라 국정운영 주도권이 좌우된다. 윤 대통령이 지난 2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변화가 느린 부분은 다음 1년에 속도를 더 내고, 변화의 방향을 더 수정해야 되는 것은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1년의 국정운영 성찰과 방향타 수정이 현실화하는지가 관건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대통령의 정치는 갈등을 풀고 사회를 통합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것인데 야당, 언론, 여당 내 비윤계 등과 싸우면서 정치가 사라지고 민주주의 퇴보 현상이 나타났다”며 “취임 2년차부터는 ‘대통령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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