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주인공된 자우림 “세상이 점점 나빠져도 우리는 계속 노래한다”[인터뷰]

오경민 기자 2023. 5. 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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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자우림 멤버들이 지난 달 28일 전주 영화의거리 한 카페에서 인터뷰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선규(기타), 김윤아(보컬), 김진만(베이스). 서성일 선임기자

1997년.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부터 영화 주제가가 인기를 얻는 일이 있었다. 영화 <꽃을 든 남자>의 ‘헤이 헤이 헤이’다. 홍대 인디클럽 블루데빌에서 ‘미운 오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4인조 밴드는 이 곡과 함께 ‘자우림’이란 이름으로 새 출발을 했다. 밴드는 데뷔와 동시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오버그라운드 무대를 누볐다. ‘돈독’이 들어 상업적인 음악을 만든다는 둥, 보컬 김윤아가 곧 나머지 멤버들을 버리고 나갈 거라는 둥 의심과 힐난이 따라다녔다. 김윤아가 2005년 ‘헛소리는 집어 치워라’라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에 게시하며 반박했어야 할 정도로 난무했던 이 주장들은 여러모로 무색해졌다. 이들은 여전히 26년째 함께하고 있다. 2017년 드럼을 치던 구태훈이 일시 탈퇴했지만 김윤아, 이선규, 김진만은 충원 없이 음악을 만든다.

자우림은 지난해 팬들과 함께 대표곡 11곡을 녹음한 데뷔 25주년 기념앨범을 냈다. 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찍었다. 자우림의 음악과 일상을 담은 영화 <자우림, 더 원더랜드>(김지환·허민 감독)가 지난달 28일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상영을 앞둔 자우림을 전주 완산구 영화의거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제 외모만 변한 것 같아요. 다른 건 변한 게 없어요.”

26년간 밴드 활동을 하면서 자우림에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느냐고 묻자 기타리스트 이선규는 거꾸로 ‘유일하게 변한 것’을 답했다. 베이시스트 김진만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더 좋은 음악을 만들자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멤버) 서로에 대한 고마움도 계속 똑같다”라고 말했다. 보컬 김윤아는 “저도 서로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진지한 음악 다큐 만들고 싶었는데···숲속의 스머프 같은 이야기가 돼버렸죠”
<자우림, 더 원더랜드>의 한 장면.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자우림, 더 원더랜드> 제작은 자우림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자우림 멤버들은 지난해 25주년을 맞아 ‘올해를 자우림 페스티벌의 해로 만들자’고 마음 먹었다. 앨범, 크리스마스 미니앨범, 공연 등을 구상했지만 더 특별한 게 필요했다. 그때 김윤아가 이전해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참여하며 봤던 음악 다큐멘터리들을 떠올렸다. 1000명의 이탈리안 뮤지션들이 모여 합을 맞추는 <1000명의 락커, 하나의 밴드>와 여성 최초의 미국 대형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이야기를 담은 <더 컨덕터: 매린 올솝>이었다. 전자를 보고 팬 100여명을 코러스로 초청해 25주년 앨범을 함께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얻었고, 후자에 감명받아 음악적 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꾀했다. 다큐멘터리는 뮤직비디오 작업을 함께 했던 영화제작사 서티세븐스디그리와 작업했다.

김윤아는 “저희가 작업하는 걸 다큐멘터리로 남겨보자고 시작했다. 사적인 이야기보다는 음악 작업의 영역에서 앨범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해보려고 했다”며 “어두운 작업기록물을 상상했다. 저희가 느끼는 작업은 정신적으로 굉장히 지치는, 타이트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고뇌하고, 뼈 빠지게 일하고,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자우림…이런 게 나올 줄 알았지만 영화에서 저희가 마치 숲 속의 요정이나 스머프들 같이 나왔다”고 했다. ‘스머프’는 날카롭고 매섭기보다는 다정하고 눈물이 많은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한 자우림을 김윤아식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선규는 “저희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김윤아는 다시 “불만스러운 건 절대 아니다. 제가 (<더 컨덕터: 매린 올솝>의) 올솝 선생님 같은 사람은 아니니까. 스머프로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노래 ‘샤이닝’, 발표 당시보다 요즘 사회에 더 어울려요”
밴드 자우림 멤버 김윤아씨(보컬)가 지난달 28일 전주 영화의거리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자우림은 꾸준히 사회에 관심을 가지며 영감을 얻고, 세상의 눈높이에 맞춘 음악을 만들어 왔다. 강한 남자와 예쁜 여자가 등장하는 대중매체를 소재로 한 ‘격주 코믹스’, 주한미군의 강간살해 사건을 바탕으로 한 ‘동두천 찰리’, 청소년 자살을 다룬 ‘낙화’ 등 여러 사회 이슈를 다뤘다.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것만 배운 사람의 시점에서 쓴 ‘광야’, 낮은 곳과 약한 이에게만 분노하는 이를 비판한 ‘광견시대’ 등을 발표했다. 경쟁으로 점철된 각자도생 사회를 꾸준히 비판해 오기도 했다.

음악의 영감이 자신으로부터 오는지, 타자나 세상으로부터 오는지 묻자 김윤아는 이렇게 답했다.

“명백히 후자예요. 개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인생의 폭이 한정돼 있잖아요. 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좋아해요. 대중의 마음을 읽는 창처럼 느껴져요. 뉴스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시민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인구의 아주 일부에 불과한 작은 표본 같아요. SNS도 인터넷 접근성이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매체이긴 하지만 댓글보다는 훨씬 보편적인 표본 집단을 만드는 것 같거든요. 뉴스를 보고, SNS를 통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을 되게 좋아합니다. 그런 게 곡의 소재가 되죠.”

이선규, 김진만에게 어떤 창구를 통해 세상을 만나냐고 물었다. 이선규는 “윤아를 통해서”라며 웃더니 “윤아가 우리 중에 가장 귀가 쫑긋 서 있고, 들은 이야기를 자주 얘기해준다”고 했다. 김윤아가 “간호법(간호인력 및 간호에 관한 사항을 의료법, 보건의료인력지원법 등으로부터 분리시켜 독자적으로 규정한 법률. 인터뷰 전날인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이 통과됐습니다,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재연했다.

밴드 자우림 멤버 이선규씨(기타)가 지난 달 28일 전주 영화의거리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김윤아는 “다른 밴드들은 무슨 얘기하고 노는지 잘 모르겠는데, 저희는 (신문) 사회면이나 정치면 이야기를 하는 편”이라며 “셋 다 정치성향이 비슷하면서 다르다. 형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다른 면 때문에 속 터질 때가 많다. 어쨌든 같은 편”이라고 했다. 이어 “진만이형은 시니컬하게 세상을 보는 편이고, 선규형은 감정적으로 세상을 본다”라며 “같이 방향을 보고 있지만 조금씩 관점이 다른 멤버들이 한 팀이기 때문에 같은 소재를 노래해도 이 형은 시니컬하게, 저 형은 감정적으로, 저는 좀 돌직구처럼 할 수 있다. 그런 조화가 자우림의 음악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이선규는 “비틀어서보기보다는 보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를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10년, 20년이 지나도 있는 것은 운이 좋아서이지 않을까”라고 했다.

세 사람은 ‘사랑 노래’를 쓰는 데에는 재주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재주가 없어서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밴드 <자우림> 멤버 김진만(베이스)이 28일 전주 영화의거리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4.28 /서성일 선임기자

영화 <자우림, 더 원더랜드>에서 김진만은 인터뷰 중 “‘샤이닝’이 (발표한) 그때보다 지금 더 잘 어울리는 노래가 돼 가고 있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2006년 발매된 6집 <애쉬스 투 애쉬스(Ashes to Ashes)>에 수록된 ‘샤이닝’은 진솔한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로 사랑받은 곡이다. ‘이유도 없는 외로움’과 ‘살아있다는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이가 화자다. 김진만은 세상이 점점 더 누군가를 외롭고 괴롭게 만들고 있다고 느낀 게 아닐까. 김진만은 이날 인터뷰에서 “그날 앞에 있는 김지환 감독이 먼저 글썽여서 따라 울었다”고 해명했다. 이선규는 “그 양반 얼굴이 또 슬퍼”라며 거들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
정답이 없는 질문들
나를 채워줄 그 무엇이 있을까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있다는 괴로움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 자우림 ‘샤이닝’ 가사 중에서

“전세계가 비슷한 양상인데, 혐오 프로파간다로 세상이 우경화되고 있어요. 여자아이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많은 것을 알아가는데, 일부 어리석은 이들은 우경화됐죠. 그런데 그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거예요. 똑똑해져야 흐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어요. 학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돼야 해요. 장성한 사람의 뇌를 바꾸기는 너무 어려우니까요. 연산만 가르치거나 답을 외우게 하는 게 아니라 질문하게 해야 합니다. 어떤 정보를 들으면 왜 이 정보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졌는지, 이걸 통해 이익을 얻는 집단은 누군지, 그래서 이 정보는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세상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고 있어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있으니까 더 우려가 돼요. (주입식 교육과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아이들이 미래 사회 지도층이 될 텐데, 이들이 지도층이 된 사회를 생각하면 너무 끔찍한 일이에요.”

김윤아는 이렇게 말했다. 이선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동조했다. 김진만은 “좋아진 측면도 있다. 그런데 사회의 기조라고 할까, 그게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세상이다. 분노와 혐오가 차곡차곡 쌓이며 몸집을 키운다. 김윤아는 다르다. 당한 폭력만큼 세상에 돌려주지 않았다. 그는 영화에서 어릴 적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오랜 기간 가정폭력을 당했음을 고백한다. 지난해 초 예능 프로그램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정서적 학대와 신체적 학대를 매일 당했다는 그는 성장해 세상에 위로를 건네는 뮤지션이 됐다. 방송을 통해 남편 김형규와 함께 평등하고 다정한 가정을 꾸린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어떻게 폭력을 전이시키거나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김윤아는 “저는 학대의 생존자가 아니라 승리자라고 생각한다”며 “그 경험이 저를 나쁜 방향으로 가도록 만들지 못했다. 이 형들을 만나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 못했다면 나쁜 사람이 됐을 수도 있다. 음악을 할 수 있었기에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상한 세상 속에서, 자우림의 음악은

26년째, 자우림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다. 이선규는 “노래는 계속 똑같은 태도로 만들고 있다. ‘나나 잘하자’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김윤아는 “음악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가르친다기보다는 음악, 영화 등 예술은 감상하는 사람이 작품과 공명해서 즐기는 것이고 저희가 어떤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다만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를 삼을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변해갈 것”이라고 했다.

자우림은 ‘이 앨범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매 앨범을 만든다. 김윤아는 앨범 작업을 마치면 시력이 조금 떨어질 정도로 피로가 쌓인다. 김진만은 “앨범을 만드는 동안 항상 ‘다시는 못하겠다’고 생각한다. 선규는 매번 다음에는 싱글이나 3~4곡 짜리 미니앨범을 만들자고 제안하는데 막상 만들면 그렇게 안 된다”고 했다. 이선규는 “결국은 다시 정규앨범을 만들고 셋이 엄청 뿌듯해 하고, 그 ‘뽕’에 차서 몇 달동안 그 앨범만 들으면서 ‘너무 잘한 것 같아’라는 말을 나누는, 그런 재미로 한다. 셋 다 ‘자뻑’이 엄청나다”라고 했다. 벌써 그렇게 11개의 정규앨범이 만들어졌다.

인터넷에는 앨범을 준비하면 김윤아가 20곡을 쓸 때 이선규는 3곡, 김진만은 0~1곡을 쓴다는 소문이 떠돈다. 세 사람은 “실제로는 김윤아가 15곡을 쓸 때 이선규가 2곡, 김진만이 2곡을 쓴다”고 정정했다. 김진만은 “더 노력하자는 생각을 26년째 하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데뷔 26주년을 맞아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묻자, 김윤아는 “숙제를 잘하세요”라고 말했다. 이선규와 김진만은 “숙제를 잘하자”고 되뇌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김윤아는 다음달에 솔로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자우림은 여름 페스티벌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활동하면서 연말 투어 콘서트를 할 계획이다.

밴드 자우림 멤버들이 지난 달 28일 전주 영화의거리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윤아(보컬), 김진만(베이스), 이선규(기타). 서성일 선임기자
밴드 자우림 멤버들이 지난 달 28일 전주 영화의거리 한 카페에서 인터뷰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부터 이선규(기타), 김윤아(보컬), 김진만(베이스). 서성일 선임기자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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