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위한 70대 예술가의 2억원 가치 동작 [김승민 큐레이터의 아트, 머니, 마켓]
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행위 예술의 대모이자 현존 가장 유명한 작가. 이 명성과 존경을 얻기까지, 그 길은 험난했다. 그의 연인이며 예술 파트너였던 울라이와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행위 예술의 길을 걸어왔고, 1988년 만리장성의 퍼포먼스를 끝으로 12년의 동행을 종결지었다.
그 후 20년 세월이 흘러, 그는 행위 예술의 정상에 올라서 있었다. 2010년 뉴욕 MoMA 미술관 회고전에서 관객들과 서로 침묵하며 응시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무려 732시간. 사람들은 밤을 새워가며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샤론 스톤, 비요크 등도 그 앞에 앉아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한 남자가 그 앞에 앉는다. 그러자 두 사람 사이로 깊고 오랜 세월의 강이 흐른다. 그가 먼저 손을 뻗고, 둘은 손을 잡았다. 울라이었다. 그 순간은 그 어떤 예술로도 그려낼 수 없는 감동이었다. 당시 그는 63세. 일주일에 6일씩 9시간 동안 앉아 관객들을 맞았다. 실로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도전을 요하는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대체 그 힘든 예술 행위로 어떻게 돈을 벌지? 마리나는 울라이와 이별한 뒤 뉴욕의 션 켈리 화랑과 일하기 시작한다. 화랑은 그의 행위 예술 장면을 한정된 수의 작품으로 판매했다. 이런 지원이 없었다면 그는 이렇게 오랜 세월 작업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무릇 행위 예술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들에게 공통된 숙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행위 예술은 판매가 되는 것일까? 극한적 고통이 수반됐던 과거 작품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을까? 누가 사는 것일까? 그렇다. 위 전시는 그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2010년, 경매에서 거래된 작품 수는 12개로 급증했다. 거래 총액도 40만 달러. 2016년도는 70만 달러를 갱신한다. 이런 데이터는 작품이 소장되고, 시장이 형성됨을 반증한다. 행위 예술은 가장 급진적인 예술 형태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재를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형태이다. 그렇기에, 그의 예술 세계 속 느낄 수 있는 예술가의 아우라를 작품으로 사는 것이다.
마리나의 퍼포먼스는 한계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었고, 그 시대를 반영했다. 그 스스로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 작품은 '레스트 에너지(1980)'였다. 마리나는 활의 활대를 쥐고 있고, 울라이는 마리나의 가슴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 자세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균형을 잃으면 화살은 마리나 심장에 박힌다. 나는 소마미술관 '몸과 맘의 뫼비우스' 전시를 기획하며 사진으로만 보던 이 작품을 마리나 측에 연락해 실제 사이즈로 전시하고 싶다 말했다. 그는 전시를 허락하고, 주제에 맞는 다른 작품은 무료 대여해 주었다. 실제 크기로 재현된 작품 레스트 에너지에서는 4분 10초 동안 극한 대치 속 점점 커지는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를 공간에 울려 퍼트렸다(퍼포먼스 당시 마이크로 숨소리를 녹음했었다).
그리고 전시를 준비하는 사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마리나는 SNS를 통해 강하게 러시아를 비난했다. 2010년의 세기적 퍼포먼스를 경매하겠다 선포했다. 최고 낙찰자가 자신의 앞에 앉게 되고, 그 금액을 우크라이나를 돕는 데 쓰겠다 했다. 실제로 그의 2010년 공연 초상화는 약 1억 원에 거래되고 있었기에, 반복될 수 없던 그 역사의 순간의 조우를, 이 자선 경매 낙찰자는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022년 션 켈리 갤러리, 낙찰자 2명은 2010년 작품이 프로젝션되는 전시장 속 마리나와 마주 본다. 그 장면은 세기적인 작가가 찍고, 낙찰자는 사진작품으로 영구소장하게 되었다. 낙찰금 약 2억 원은 전액 구호금액에 전달됐다. 활촉을 자신의 심장에 겨눴던 용기, 70세가 넘었지만 여전하다. 그 돈은 결코 명성에 비해 큰돈이 아닐 거다. 제프 쿤스 작품이 1,000억 원에 팔리는 거에 비하면, 아직 저평가됐다.
김승민 슬리퍼스 써밋 & 이스카이 아트 대표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엄마가 미안해, 한순간도 널 잊고 산 날이 없었어" 입양보낸 딸 찾는 이복임씨
- "가루 만들고 시럽 따르고…" 약사들도 소아과는 '절레절레'
- "해외 카드결제가 환전보다 싸다고?"... 알뜰 여행객 꿀팁
- “신이여, 찰스 왕을 지켜주소서”… 마침내 왕위 오른 찰스 3세
- 첫 폴더블 폰 내는 구글, 삼성전자와 안드로이드 동맹까지 접히나
- 재활용하겠다면서... 일반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보조배터리
- "심리 이용한 北 해킹 기승… 훔친 이더리움 쪼개고 바꿔서 돈세탁" [인터뷰]
- "사랑해서 한 행동" 서정희, 전 남편 故 서세원 언급…끝내 눈물까지
- 111층 한국에서 '가장 높은' 구름 위 사무실 풍경 보실래요
- "내 기분 건드리면 죽여" 목 졸려 죽은 노숙인이 경고한 '위험한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