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기차 무덤’서 정보를 캐다…제주 전기차 진단기술센터 가보니

2023. 5. 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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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산기술연구원 곳곳 ‘전기차 산업 육성’ 의지
주행 데이터 수집…배터리·구동부품 성능평가 한창
최첨단 장비·방대한 데이터 활용해 정비기업 지원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중산간 초지에 렌터카로 쓰이던 BMW 전기차 i3 수십대가 방치돼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제주)=김지윤 기자] 지난해 3월, 제주도 한라산에는 BMW 전기차 ‘i3’ 200여대가 무단으로 방치됐다. 제주 지역 내 한 렌터카 업체가 파산하면서다. 전기차 200여 대는 최저 20만원부터 최대 1600만원 사이에 무더기로 낙찰, 섬 밖으로 반출됐고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했던 제주도는 경제적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전기차 천국’으로 불리는 제주도의 이면이다. 제주도는 2021년 말 기준 전기차 보급 대수 2만1325대로 전국 3위다. 전국에서 전기차 보급 비중은 서울(18.4%), 경기(17%) 다음인 10.4% 수준이다.

‘청정 관광지’라는 특성을 살려 도 차원에서 전기차 도입에 박차를 가한 덕분이다. 하지만 전기차 보급 선두에 선 만큼 최근에는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모터 등 주요 부품에 대한 성능평가와 진단기술 부재로 방치되는 중고 전기차가 쌓이면서 지역 내 경제적 손실이 증가하고 있다. 제주 지역 내에서 중고 전장품에 대한 재활용, 재제조, 재사용 검증 및 인증 프로세스 확립을 통한 신산업 도출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전기차 배터리 팩의 성능을 평가하는 장비.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제공]

지난 3일 방문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 전기차 진단기술센터 역시 이 같은 목적의 일환으로 전기차 구동 부품의 성능평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배터리 성능평가 사업을 추진 중인 ‘제주 테크노파크’, 디젤차량 대상 전기차 개조사업을 추진 중인 ‘JDC’와 전기차 서비스 신사업 진출을 꾀하고 있다.

홍영선 KITECH 센터장은 “2021년 제주지역 내 전기차 보급률이 5%를 달성하는 동안 정비업체 502개 중 59곳은 폐업을 했다”며 “전기차 전환에 따른 주요 전장품과 관련해 정비기술력 고도화, 업종전환, 지자체 차원의 대응전략 수립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KITECH에 따르면 전기차 고장 사례에서 모터(39%)와 배터리(27%)가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또 200㎞ 내외의 주행거리를 갖춘 1세대 전기차에서 400㎞ 내외의 주행거리를 확보한 2세대 전기차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고객들은 가장 큰 불만 요인으로 정비 문제를 꼽았다. 제주연구원이 전기차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정비 부문에 대한 만족도는 60%에 그쳤다. 운행비 절감(98%), 배터리 성능(79%) 등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홍 센터장은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자동차 고장진단 장비를 활용한 검사 방법을 도입하는 등 국가가 고장 데이터 중심의 진단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우리 역시 전기차 유지보수 기술보급 및 전후방 산업 육성 측면에서도 이러한 선도기지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기차의 전비 측정 및 분석, 주행 재현을 통한 전기차의 성능을 평가하고 있다.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제공]

또 “기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면서 전기차 애프터마켓 신시장을 창출하는 두 가지 지원전략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KITECH의 전기차진단기술센터는 이 같은 목적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2020년 4월부터 국·도비 190억원이 투입된 ‘전기차 통합 유지보수 실증기반 구축사업’을 통해 각종 장비 및 전기차 고장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중이다. 정비기술 보급 및 기업지원 등 통합 유지보수 플랫폼도 개발하고 있다.

이날 센터에서는 ‘전기차 주행재현장비’, ‘배터리 모듈·팩 성능평가 시스템’, ‘실주행 전기차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 ‘실험용 전기차’, ‘내폭형 환경챔버’, ‘안전성 및 신뢰성 평가 장비’ 등 총 29종의 장비를 볼 수 있었다.

센터에서는 구축된 장비를 활용 전기차, 모터, 배터리, 전력변환장치 등에 대한 생애주기 특성 및 고장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진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센터에 따르면 현재까지 200여 대의 실시간 주행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등 2TB 분량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전기차의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는 모습. [김지윤 기자]

특히 전기차 주행재현장비는 바닥 구름판, 풍력 기구 등을 활용, 실제 도로 환경을 재현해 전기차의 성능을 평가하고 있었다. KITECH는 이곳에서 수명이 다한 일부 셀을 탑재해 전기차의 성능 변화 등도 테스트하고 있다.

강병수 KITECH 선임 연구원은 “배터리 노후화를 진행해 전기차에 탑재한 뒤 실험하는 등 각종 주행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며 “이 같은 결과를 도내 정비사들에게 알려주는 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부품이 어느 정도를 운행할 경우 고장이 발생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이상이 감지되는지 등을 분석, 데이터로 축적해 관련 부품 수급의 유연성 확보를 돕고, 이에 대한 정비 방식 구축에도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국내 전기차 선두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과도 여러 방면에서 데이터 확보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홍영선 센터장은 “전기차에 대한 각종 검사, 진단·정비, 수명 예측 및 유지관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센터가 확보한 전기차 생애주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향후 수소전기차 주요 부품으로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등 미래 자동차 산업구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jiy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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