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은 없는데 정부는 ‘뒷짐’”[윤석열 정부 1년-연금개혁]
윤석열 정부 출범 1년간 3대 개혁과제 중 하나인 연금개혁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국회에서 국민연금 재정수지 균형을 위한 모수개혁(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 논의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아직 초안도 내지 못했다. 정부는 제5차 재정추계를 통해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간표’만 내놓았다.최근엔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을 금융화·관치화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지난 3일 공개한 ‘국정과제, 30대 핵심 성과’ 자료집에서 연금개혁 관련 성과로 “정부·국회 등 사회적 논의체계 마련”을 들었다. 지난해 7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해 그해 11월 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가 꾸려져 모수개혁 논의를 이끌었다. 민간자문위는 소득대체율(현 42.5%, 2028년 40%) 인상 여부를 두고 위원들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보험료율 인상안(현재 9%→15%)을 언급한 민간자문위 논의 내용이 세간에 알려지자, 국회 연금특위는 지난 2월 “모수개혁보다는 구조개혁을 먼저 논의하겠다”며 물러섰다. 여론의 부담을 느낀 탓이다. 연금특위는 개혁안 초안을 만들지 못한 채 활동기간을 오는 10월까지로 6개월 연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말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시험계산)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지난 3월 말 재정추계 최종안을 공개했다.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2041년 기금은 적자로 전환돼 2055년 고갈된다.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이라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도 연금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진다. 저출생이 이어진다고 가정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60년 기준 보험료율은 34.3%로 치솟는다.
복지부는 공청회 등을 거쳐 오는 10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때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야만 그나마 연금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온다. 그 다음 정치권 합의가 필요하다. 내년 총선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개혁안을 만들 때부터 사회적 논의, 공론화 과정이 중요한데 정부든 국회든 발 벗고 나서는 쪽은 없다. 전문가들이나 시민단체나 “연금개혁 논의 불씨가 사그라들었다”며 우려한다.
구조개혁은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위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 직역연금 등 공적 연금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개혁을 말한다. 윤 대통령은 기초연금을 현재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다만 지급대상(노인인구 소득 70% 이하)이 좁혀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퇴직연금·직역연금 개혁은 현재로선 ‘먼 얘기’다.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이 역대 최저(-8.22%)를 기록하면서 최근엔 기금 수익률 제고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6일 “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복지부는 다음날 기금운용위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바꿔 ‘정부 추천 금융전문가’를 늘렸다. 이어 3월31일 재정추계 최종안에서 ‘기금 수익률이 기본가정보다 1%포인트 올라가면 기금 소진 연도가 5년 늦춰진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대체투자·해외투자를 늘리고 기금운용위에 전문가를 더 채우자는 주장이 잇따라 나왔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4일 민주노총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가 개최한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사회보험정책 평가 토론회’에서 “지난 1년간 연금의 제도개혁과 관련해서는 실현된 게 없으나 최근 기금운용과 관련해선 ‘수익률 지상주의’, ‘전문가 주의’에 근거해 정부가 발 빠르게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사회적 기금을 금융화하고, 기금운용을 관치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고 비판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 추진하고 대통령이 나서 설득할 의지가 없는데 개혁이 가능할까 의문”이라며 “국회의 논의 과정도 실망스럽다”고 했다. 남 국장은 “(정부·국회의 개혁안을) 기다리기만 하다가 정부가 기금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끝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시민사회가 진지하게 대응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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