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대화…“일방통행 넘어 역주행”[윤석열 정부 1년-노동개혁]

김지환 기자 입력 2023. 5. 7. 11:35 수정 2023. 5. 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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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16일 첫 국회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연금·노동·교육 개혁은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16일 취임 뒤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3대 개혁과제를 제시했다. 이 중에서도 노동개혁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봤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앞두고 국무조정실이 지난 3일 공개한 ‘국정과제 30대 핵심 성과’ 책자를 보면, 정부는 개혁 분야 성과에서도 첫 번째로 노동개혁을 꼽았다. 하지만 정부 자체 평가와 달리 사회적 대화를 건너뛰고 전문가 중심으로 만든 노동시간 개편안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노동개혁 동력은 크게 떨어졌다.

특히 정부의 ‘속도전’을 두고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에서 ‘박근혜 정부 때도 이렇게 밀어붙이진 않았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대화 파트너가 아니라 개혁 대상이 된 노동계는 “일방통행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역주행이 이뤄진 1년”이라는 평가를 했다.

실종된 사회적 대화와 전문가주의 득세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7월 노동개혁을 목적으로 전문가 자문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시켰다. 교수 12명이 모인 이 연구회는 5개월간 노동시간, 임금체계 개편 등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밑그림을 그렸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끝이 아니었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각론 마련을 위해 상생임금위원회 등 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4개 기구를 또다시 꾸렸다. 정부가 전문가 중심으로 정책을 만들면서 노사정 대화는 실종됐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개점휴업’ 상태다.

지난해 7월18일 오전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첫 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여소야대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도 거치지 않은 노동개혁 입법안은 현실적으로 올해 하반기에도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렵다. 정부·여당도 이를 알면서 속도를 줄이지는 않는다.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행보라는 게 노동계 분석이다. 정문주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노조가 정부지원금을 받으면서도 회계자료도 안 낸다’는 프레임을 만든 것처럼 정부 입법안도 내년 총선까지 노조 때리기를 위한 전선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진 않고 있다. 정 사무처장은 “‘주 69시간’부터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세대별 갈라치기를 노렸지만 오히려 MZ세대가 반발했다”며 “화물연대 파업 당시 강경 대응으로 지지율이 올랐다고 여기는 것 같은데 일방적 밀어붙이기는 결국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대화의 실종엔 여권의 노조혐오 정서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을 “북핵 위협”에 빗댔고, 건설노조를 “건폭”이라고 지칭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민주노총을 “민폐노총”, 건설노조를 “경제에 기생하는 독”이라고 몰아붙였다.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조를 악마화하고 무리한 수사를 이어가는 와중에 건설노동자 양회동씨(50)가 지난 1일 노동절에 분신한 뒤 하루 만에 숨졌다. 민주노총은 양씨 사망 이후 ‘정권 퇴진’ 구호를 공식화했다. 노정 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중구조 개선’ 알맹이는 빠져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7일 국무회의에서 “소수의 귀족노조가 다수의 조합원과 노동 약자들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구조”라며 대기업·정규직 노조에 화살을 돌렸다. 대기업·정규직 노조가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동자 간 격차 해소에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원·하청 불공정 거래, 대기업의 비정규직 양산 등은 빼고 기성노조 탓만 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화물연대가 조합원 투표 끝에 총파업을 중단하기로 한 지난해 12월9일 경기도 의왕시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에서 조합원들이 투표 결과를 듣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근본 대책은 정부가 ‘노동 약자’로 부르는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단체교섭을 통해 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정부 들어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한 곳을 보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화물노동자, 학교 비정규직, 배달 라이더 등 주로 불안정 노동자 계층”이라며 “이중구조를 개선하려면 이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개선될 수 있는, 안정적 단체교섭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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