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지금 이 순간, 책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심영구 기자 2023. 5. 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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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코로나 이후 처음 열린 런던 북 페어 (글 : 황정원 작가)
런던 북 페어 전경


2019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던 런던 북 페어가 올해 다시 개최되었다. 런던 북 페어는 프랑크푸르트, 볼로냐와 함께 세계 3대 북 페어 중 하나다. 업계 종사자가 아닌 한 개인이 현장에 간들 실질적인 것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섰지만, 북 페어가 무엇인지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박람회장을 찾았다.

세계 최대 출판사 펭귄-랜덤 하우스의 부스
6월 출간 예정인 한국 여행 서적


박람회장을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린 펭귄-랜덤 하우스 부스의 크기에 입이 딱 벌어졌다. 과연 전 세계 책 시장의 25%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 출판사다운 규모였다. 소형 출판사의 열 배는 쉽게 넘을 법한 부스는 수많은 출판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부스 한 편의 한국 관련 서적 광고를 보고 반사적으로 리셉션 데스크에 다가갔다. 광고 속 책의 담당자와 이야기 나눌 수 있는지 물었다. 영화, 드라마, 웹툰, K-Pop 등 다양한 창작 분야에서 한창인 한류가 출판 시장에서도 나타나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북 페어 기간 동안 모든 미팅 스케줄은 다 선약이 되어 있다며, 거절당했다.

역시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겠구나 생각하며 북 페어에 대한 브리핑을 찾았다. 주요 행사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에 이어 2022년 영국 출판시장의 매출 규모와 관련된 수치들이 발표되었다. £2.5 bn (약 4조 가량)의 출판 시장 규모, 2018년 이래 50% 증가한 오디오북 판매, 전체 매출의 37%를 차지하는 오프라인 서점 매출 등 현재 시장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수치들을 흥미롭게 듣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화들짝 놀랐다.

"책 구매자 네 명 중 한 명은 북톡 (BookTok) 사용자다."

나는 '북톡'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책 구매자의 1/4이 사용한단 말인가? 회의장 밖으로 나오니 마침 틱톡 부스가 눈에 띈다. 짧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은 책과 전혀 무관할 것 같은데 왜 북 페어에 부스를 설치했을까, 혼란은 커져만 갔다. 부스를 지키는 담당자에게 방금 들은 브리핑을 언급하며 설명을 청했다.

북톡은 틱톡의 하위 커뮤니티로 #booktok라는 해시태그를 사용, 한두 문장으로 책을 소개하거나 언박싱, 책을 읽는 자신의 반응 등 책과 관련된 소소한 일상을 공유한다. 북톡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특히 틱톡을 주로 사용하는 세대, 이른바 GenZ에게 북톡의 영향력은 커, 출간 후 잊힌 책을 다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려놓는 등 판매와 직결되었다.

급기야는 펭귄-랜덤 하우스 같은 대형 출판사도 북톡을 염두에 두고 출판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고, 반스 앤 노블스 같은 미국 대형 서점 체인들까지 매장에 북톡 베스트셀러 코너를 따로 마련하는 추세라고 한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는

북 페어 기간에는 박람회장 곳곳에서 출판에 관련된 수많은 세미나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번역, 기술, 지속가능성, 작가 등 주제도 다양하다. 그 세미나들을 찾아다니느라 내내 분주했지만, 그 와중에도 절대 놓칠 수 없는 행사가 하나 있었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 발표였다. 짬짬이 시계를 확인하다가 시간에 맞추어 발표장으로 달려갔다. 흥분과 기대로 공기는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부커상 최종후보로 천명관의 '고래'를 호명하는 레일라 슬리마니 심사위원장


올해 심사 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여섯 권의 최종 후보 중 하나로 천명관의 '고래'를 호명했다. 이어진 그의 소감에 백 퍼센트 공감하며 물개박수를 보냈다.

"이런 줄거리는 읽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냥 읽어 보세요. 그리고 스토리텔링의 순수한 기쁨과 에너지에 빠져 보세요."

나도 그랬다. 그래서 춘희는 어떻게 되는가, 책을 펼치는 순간 이야기에 빨려 들어 다급히 페이지를 넘겨 가며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이 소설이 모국어로 쓰였다는 사실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 수상작은 5월 23일에 발표될 것이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국에서 번역 출간된 국외 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5만 파운드의 상금이 작가와 번역가에게 동등하게 분배될 정도로 번역의 역할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니만큼 부커 상 재단은 인터내셔널 부문의 최종 후보를 발표하기에 앞서 영국 내 번역 소설에 대한 통계를 공유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가장 많이 구매하는 연령대는 60-84세인데 비해 번역 소설은 25-34살이 가장 많이 구매해 상당히 젊은 독자층을 지닌다. 35세 미만의 연령대를 모두 합치면 이들이 번역 소설의 절반 (48.4%)을 구매한다.

성별, 학력, 거주지, 직업 등 세부 조사 면면도 흥미로웠지만 2022년 번역 소설 베스트셀러 30권 중 14권이 일본 서적이라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안타깝게도 순위 안에 한국어 서적은 없었다. 앞서 펭귄-랜덤 하우스에서 묻지 못한 출판 시장 내 한류에 대한 답을 우회하여 들은 느낌이었다.

블룸스베리 출판사 부스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문학 번역은 올해 런던 북 페어의 중요한 테마였다. 패널과 관중들은 다양한 주제의 문학 번역 세미나에서 번역가의 역할을 비롯, 번역을 둘러싼 첨예한 이슈들에 대해 가감 없는 의견을 나누었다. 패널들이 세계 전역의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문가들이다 보니 그들의 이야기엔 다양한 사례와 구체적인 경험들이 농축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책 겉표지에 번역가의 이름을 표기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부터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 작가의 작품 번역을 할 수 있는가?"까지 질문은 짧고 단순했지만 짚어봐야 할 문제들은 복잡하고 길었다.

세미나 '번역가의 진화'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번역가 안톤 허


앞서 거론된 비슷한 맥락의 주제는 "검열관이 아니라 파트너"라는 제목의 세미나에서도 논의되었다. 출판 및 저작 관련 제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Kevin Anderson & Associates의 시니어 에디터 한나 고메즈는 작품 속 특정 문화가 올바르게 표현되었는지를 출판 전에 체크해 주는 서비스를 소개했다. 어느 때보다도 문화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이 강조되는 요즘, 문학 작품도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탁상공론이 아니라 책의 출판 과정에 실제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고메즈가 예로 든 두 작품 중 아멜리 웬 자오의 데뷔 소설 'Blood Heir'는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인종차별적이라고 낙인찍혀 작가가 출간을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자오는 결국 수정을 거쳐 예정보다 늦게 소설을 출간했다. 지닌 커민스의 'American Dirt'의 경우 출간 초기 스티븐 킹의 극찬을 받고, 오프라 윈프리의 북클럽에 선정되는 등 승승장구를 누렸지만 비 멕시코인 작가의 멕시코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확한 묘사가 문제되어 작가도, 작품도 큰 곤욕을 치렀다. 이 모든 사태는 문제를 꼬집은 블로그 글 하나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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