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경기마약퇴치본부장 "합법적 마약류, 안전장치 필요"[인터뷰]

이병희 기자 2023. 5. 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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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합법적 마약류, 마약이 보편화된 이유 중 하나"
프로포폴·나비약·공부 잘하는 약 '합법적 마약류'
"합법·불법 종이 한 장 차이…생활 속 예방 필요"

이정근 경기도마약퇴치본부 본부장.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뉴시스] 이병희 기자 = "흔히 마약이라고 하면 불법 마약류를 얘기하지만, 실제 마약류 사범은 불법 마약류보다 합법적 의료용 마약류 사범이 더 많아요. 제대로 사용하면 문제 될 게 없지만,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게 약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정근 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 본부장은 7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약이 보편화된 이유 중 하나로 '합법적 마약류' 사용을 꼽았다.

프로포폴·졸피뎀 등 진통제, 수면제, 마취제뿐 아니라 최근 문제가 된 '나비약' 같은 식욕억제제(살 빼는 약), 공부 잘하는 약으로 알려진 ADHD치료제 등이 모두 합법적 마약류에 속한다.

약사이기도 한 이 본부장은 "의료용 마약류가 개인에게 문제 없이 처방된 뒤 개인 간 거래로 판매되거나 2차적으로 불법에 연루되기도 한다"며 "처방 단계부터 안전장치를 마련하거나 의료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안전한 약물 유통을 위해 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는 2021년부터 '마그미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약사가 의료용 마약류를 사용하는 '잠재적 중독위험군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한 약물사용 방법을 안내해 중독위험성을 낮추는 서비스다.

그는 "합법과 불법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불법 마약류를 퇴치하는 것은 수사기관이 나서야 할 일이지만, 합법적 마약류 문제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예방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마그미약국이란? (사진=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본부장은 마약을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로 봤다. 그는 "단순한 호기심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불화·단절·소외 등 개인과 개인 관계나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한다. 마약 문제가 향후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팬데믹을 불러일으킨 코로나19도 마약이 퍼지는 데 영향을 끼쳤다.

이 본부장은 "일상과 관계가 단절되면서 '코로나블루' 같은 우울감 등이 마약이 늘어난 데 영향을 미쳤다. 또 코로나19로 비대면 주문과 유통이 활성화된 것도 마약이 퍼진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불과 7~8년 전까지만 해도 40대 마약 범죄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20~30대가 가장 많다. 10대도 숫자는 적지만 5년 전에 비해 5배 가까이 늘었다. 모바일에 익숙한 젊은 층에게 마약이 유통되면서 전국적 평준화가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항구도시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마약 관련 이슈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유통망 자체가 바뀌면서 전국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됐다"라고 진단했다.

이 본부장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젊은 세대가 마약을 너무 가볍게 본다는 것. 그는 "마약이 흔히 소비하는 '기호식품'이 될까 걱정된다. 특히 젊은 세대가 마약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소비하는 방식에서 가볍게 접근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마약사범이 한 가지 물질만 하는 경우는 드물다. 가벼운 마약으로 시작하다가 더 강한 것을 찾는 것이 중독의 기본적인 패턴이다. 그러면서 마약이 일반화되고, 저변이 넓혀질까 걱정"이라고도 했다.

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 경기도청 봄꽃축제 마약류퇴치 캠페인(사진=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우리 사회에 퍼진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과거 마약은 조직폭력배나 특정 계층에서 '약쟁이들이 자기 몸 망가트린 일'이라는 인식으로 관심 밖의 문제였다. 그러다 최근 유명 연예인이 연루된 사건이 국민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마약 음료 사건' 같은 청소년 문제가 공분을 일으키면서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공식적인 마약 관련 통계가 없고, 마약 관리 체계도 나눠져 컨트롤타워도 없다. 이번을 계기로 컨트롤타워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마약과의 전쟁'을 벌였던 국가들이 '엄벌주의'의 한계에 봉착하면서 예방과 치료재활 위주로 마약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마약 정책은 마약범죄 단속, 처벌, 청소년 보호 등에 집중됐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마약 청정국'이라는 말은 깨진 지 오래다.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이나 지원을 늘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턱없이 부족한 예방·중독자 치료 인프라를 돌아봐야 하며, 전문가 양성도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 본부장은 마약 중독을 이겨내고 싶다면 상담기관이나 중독자치료보호 의료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상담이나 치료를 진행하는 기관에서 사법기관에 환자의 개인정보를 고지할 의무가 없다. 병원에 가면 잡혀가는 줄 알고 치료를 못 하는 경우도 있는데, 비밀이 보장된다"면서 "마약에 중독됐다면 하루라도 빨리 중복재활센터나 국가에서 지원하는 병원을 찾아 치료에 나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는 지난 2004년 12월 ▲마약류·약물남용 폐해에 대한 예방활동 및 연구사업 ▲마약류·약물남용자의 치료·재활사업 ▲마약 없는 밝은 사회 건설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주요 사업으로 ▲약물 오·남용 예방교육 ▲약물남용 예방 홍보 ▲치료·재활 프로그램 운영 ▲전문자원인력 양성프로그램 운영 등을 전개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iamb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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