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우리를 깔보게 만드는 천년의 습관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3. 5. 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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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지난 2천년간 중국은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지 못했다. 몇차례 대군을 보낸 적은 있지만(가장 최근은 6.25) 장기 점령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국은 종주국으로서 자신의 위신에 도전하지 않는 한 한반도의 자치권을 보장했다. 중국인들은 그것을 관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중화제국의 특성으로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그 중화제국은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를 기어코 자신들의 영토에 복속시킨 나라다. 그들이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일찌감치 접은 것은 한반도를 직접 지배하는 것이 제국의 역량에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고래로 중국의 위협은 서북에 있었으므로 동쪽에 제2 전선을 펼치기 보다는 친교하는 것이 낫다고 봤을 것이다.

20세기 이후 우리는 베스트팔렌식 ‘주권 국가’ 정신에 입각해 한·중 관계를 생각해왔다. 한국 사람 그 누구도 중국을 조아려야 할 ‘상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대통령이 100여년 전의 조선 왕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 관리를 상전대하듯 응접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아마 상당수 한국인들은 그런 비굴한 나라로 사느니 ‘싸우다 죽자’는 쪽일 것이다. 물론 현실이 되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모든 주권 국가를 동일한 정도로 존중한다는 베스트팔렌의 만국평등 정신은 어느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17세기 유럽 국가들이 장장 30년에 걸쳐 싸우다 지쳐 합의한 신사협정이 베스트팔렌 조약이다. 서구 국가들에는 DNA처럼 핏속에 각인돼 있지만 그런 역사적 배경이 없는 한국과 중국같은 나라에는 외래 문명의 정신으로서 주입됐을 뿐이다. 피흘려 얻은 것과 그저 주어진 것에는 차이가 있다.

몇년전 미국에 간 시진핑이 트럼프를 상대로 한국을 ‘과거에 중국의 일부였던 나라’로 설명해 우리를 격분케 했다. 아마도 그것이 중국인들의 평균적 한반도관이 아닐까한다. 지금 우리 입장에선 기가 찬 노릇이지만 사실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이걸 대륙의 오만으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조선시대 엘리트들 다수는 중국 황제가 한반도를 ‘한때 중국의 일부였던 나라’라고 하면 황송해했을 것이다. 그들은 한반도 정권의 뿌리로 ‘기자조선’을 신봉했고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은 기자가 중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엘리트들 중에는 진실로 ‘중국의 일부’이고자 하는 위인들도 있었다.

일본은 달랐다. 일본은 대륙과 바다를 격한 지리적 이점을 앞세워 중국에 고분고분하게 군 적이 별로 없었다. 그들이 선진문화로서 중화를 흠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에게는 중화와 스스로의 ‘야마토 문명’을 구분하는 자의식이 일찍부터 싹텄다. 1871년 청일수호조규가 체결될 당시 청나라 실력자였던 이홍장은 “일본은 원나라 초기 중국에 조공을 중단했으므로 조선.류큐.베트남 등의 속국과는 다르다”고 공식문서에 썼다(김기혁,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

한반도는 적어도 최근 1천년간 중국을 상대로 ‘인정 투쟁’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독립선언으로서의 인정 투쟁말이다. 역사학자 김기혁은 “한국은 중국을 제외한 주요국 가운데 중국의 종주권을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인정하고 마지막으로 포기한 국가”라고 주장했다. 그런 한반도를 중국인들이 ‘한때 우리의 일부’라고 한다고 해서(특히 그들의 과장·왜곡 어법을 감안하면) 그렇게 길길이 뛰는 것도 실은 민망한 측면이 있다. 중국이 보기에는 스스로는 한번 싸워보지도 않은 자들이 남들이 세워놓은 규칙을 앞세워 “너와 나는 원래부터 동급”이라고 맞먹으려 드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오늘’이 계속 쌓이면 역사가 된다. 100년 전까지 우리의 오늘은 사대적 비굴로 점철돼 그것이 지금까지도 중국인의 한반도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반도를 속국처럼 대하는 인식 말이다. 그것은 시진핑 시대이후 한층 노골화하는 중이다. 6년전 시진핑은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접견하며 자신은 상석에 앉고 이 전 총리는 테이블 옆에 앉도록 해 마치 조공 사절을 알현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중 했을때는 열끼중 여덟끼 혼밥 굴욕을 안겼다. 대통령을 따라 중국을 방문한 청와대 기자단이 중국 공안에 폭행당했다.

그같은 무례에 문재인은 항의하기는 커녕 현지 연설에서 중국을 ‘큰 봉우리’로 추켜세우고, 한국은 ‘작은 나라’로 비하했다. 마치 조선의 사대 엘리트가 빙의된 것처럼. 그런 ‘오늘’이 5년간 쌓인 결과 중국은 더 기고만장해졌다. 한국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대만문제를 언급했다고 그 입을 ‘주둥이’에 비유했다. 윤 대통령의 방미 외교에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저들이 저렇게 우리를 업신여기는 것은 멀게는 1천년동안 조아리기만 한 우리 선조들의 책임이 있고, 가깝게는 5년동안 저자세로 일관한 전 정부의 책임이 있다.

물론 중국과 맞닿아 있으면서 존중받고 살기는 쉽지 않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중국과 사이에 바다가 있느냐 없느냐 차이다. 그러나 그 제한된 공간에서 투쟁하지 않으면 영원히 업신여김당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할말은 하고 거래도 하는 정상적인 관계가 되려면 더 영리하고 담대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워싱턴 선언’으로 당분간 수면 아래로 잠복할 핵보유 이슈도 대중국 견제의 측면에서 불씨를 살려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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