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총공’에 벌벌 떠는 민주당, 아이돌 소속사보다 다루기 쉽다
● 민주당은 바보들의 집합소인가
● “지금 하는 건 정치가 아닌 전쟁”
● ‘간발 효과’가 낳은 분노와 혐오
● “민주당 장악하자”던 백낙청
● 문자폭탄 주력부대, 문파→개딸
● “문자 총공세하니 벌벌 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인 2018년 11월 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만독불침은 만 가지 독에도 침범당하지 않는, 즉 어떤 독에도 죽지 않는 불사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무협소설 용어다. 스스로 그 경지에 올랐다고 자신하는 이재명을 '만독불침 선생'으로 불러도 무방하리라. 아니 꼭 그런 예우를 해드리고 싶다. 이재명의 다양한 범죄 혐의에 대한 전방위적 검찰 수사를 밀어붙인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건재한 그의 모습은 '만독불침의 화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하게 만드니 말이다.
설령 결국엔 그 신화가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던 저력만큼은 놀라운 일로 평가받을 만하지 않은가. 그 놀라운 일이 가능했던 배경과 이유는 무엇일까. 그걸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분위기'다. 사회적 분위기에 절대적 영향을 받는 주식시장 분석가인 로버트 프렉터는 "분위기가 사건을 지배한다"고 했는데, 이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정치의 전쟁화' 촉진하는 팬덤정치
이재명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대선 패배 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점을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의 다양한 범죄 혐의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었고,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었기에 그런 궁금증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재명은 과거에 그 어떤 전례도 없던 변칙적인 대응책을 강구했다.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금배지를 단 후에 민주당을 장악해 당대표가 돼 민주당을 만독불침의 방탄복으로 이용하는 시나리오다.놀랍게도 이 시나리오는 성공했다. 이게 말이 되나. 그런 만화 같은 일이 일어난 민주당은 바보들의 집합소인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민주당에 영악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바보들의 집합소'란 말인가. 민주당 의원들이 바보가 아니라 너무도 영악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도 모른다. 좋건 나쁘건 민주당은 노무현·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사실상 '팬덤 정당'이 됐고, 특정 정치인을 추종하는 '정치 팬덤'의 규모와 열정과 전투력 등을 기준으로 종합적 평가를 할 때 이재명은 노무현·문재인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공격적이고 유능한 '팬덤 정치인'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운동장에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바뀔 조짐이 보이면 모든 게 다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간 입을 굳게 닫고 있거나 거짓말을 했던 이들이 각자 알고 있던 사실과 진실의 편린들을 내놓기 시작하면 게임은 순식간에 종료되고 만다. 그러나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진실의 전모는 여전히 미궁에 머무르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건 현시점에서 꼭 필요한 일은 '만독불침' 이재명의 '정치 팬덤' 관리술과 그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다.
왜 그런가. 최근 정대철 헌정회장이 잘 지적했듯이, "지금 하는 건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전쟁 같은 정치'의 승자는 없다. 모두가 다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모두 다 힘을 합쳐 국리민복을 위한 고민을 해도 모자랄 판에 오직 반대편을 죽이기 위한 일에 모든 역량과 열정을 바치는 정치는 나라를 결딴내고야 말 것이다. '전쟁 같은 정치'는 늘 존재했던 현상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극단적 양상을 보인 적은 없었다. 그건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팬덤 정치'의 전성시대와 무관치 않다.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PESD)
나는 이미 '신동아' 2022년 2월호에 쓴 [‘재명학' 일군 이재명의 15년 팬덤 관리술: 文과 달리 李는 팬덤 CEO…손가락혁명군의 유산']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재명의 팬덤 관리술을 다룬 적이 있다. 그 글만으론 충분치 않다. 이재명의 대선 패배 이후 그의 팬덤이 약화되기는커녕 외려 강화되는 동시에 극렬해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이재명의 팬덤은 그의 정치생명을 유지·연장시켜줄 뿐만 아니라 '정치의 전쟁화'를 촉진하는 최대 동력이 됐다. 어떻게? 왜?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연재할 이 글을 통해 이런 일련의 질문에 답해 보련다.2022년 3·9 대선의 승자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였지만, 그는 대선 사상 최소 표차(24만7077표, 0.73%포인트)로 이긴 후보가 됨으로써 과거 그 어떤 당선자보다 더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운명에 처해졌다. 여기에 더하여 국회는 민주당 독주 체제였고, 윤석열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인물이었다. 이재명에 대한 수사를 밀어붙이기엔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윤석열은 자신이 대통령이 된 최대 이유였던 '윤석열스러움'을 집권 후에도 고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윤석열스러움'의 핵심은 상황과 여건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소신(또는 고집)을 밀어붙이는 뚝심 또는 강성 기질이었다. 그 기질로 대통령은 될 수 있었지만, 과연 성공적인 국정 운영도 가능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승리하거나 패배했을 땐 승자나 패자에겐 이른바 '간발 효과(nearness effect)'라는 게 나타나는 법인데, 그건 개인이나 집단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게 마련이다. 패자인 민주당의 경우엔 "반성과 쇄신보다는 자기 위로와 결의"만 넘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같은 해 3월 10일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도 역대 최고 득표율 성과를 거뒀다"며 "대선이 생긴 이래 가장 근소한 표차인 24만 표 차이로 (대통령이) 결정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은 "통상 대선에서 진 정당이 반성과 쇄신책을 쏟아내며 내홍을 겪는 것과 달리 일사불란하게 단합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간발 효과'는 이른바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PESD·Post Election Stress Disorder)'로 나타났다. 직장인 김모(38) 씨는 "이재명 후보가 졌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힘들다. 간발의 차로 패배해서인지 더욱 더 분하고 슬픈 마음에 잠들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전모(44) 씨는 "본투표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고 개표방송을 봤는데 졌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났다. 이번 대선만큼 패배의 후유증이 큰 선거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외래 진료 중 대선 이후 '화나서 잠을 못 자겠다'고 하거나 상대 후보와 지지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환자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말했다.(‘중앙일보', 2022년 3월 13일자)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증오와 혐오를 드러내는 것으로 대응했다. 주로 4050이 활동하는 당시 친여(親與)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엔 "민주당의 선거 패배는 의식 없는 2030 때문"이라는 주장과 함께 '청년 혐오' 글이 연달아 올라오고 있었다. 50대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회사의 임원인데 대구에서 내가 왜 민주당을 열혈 지지했는지 모르겠다. (2030들에게) 야근 많이 시키고, 말 안 들으면 해고할 것"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북한과 전쟁을 하면 죽는 것은 청년들이니 잘 버텨봐라" "나는 기간제 대깨윤이니까 마구 야근시킬 예정" "니들이 뽑은 대통령이랑 잘 살아라"와 같은 글도 올라왔다.(‘조선일보', 2022년 3월 12일자)
이재명 지지자들의 '민주당 장악' 운동
대선 당일 방송 3사가 공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남성 지지율은 윤석열 58.7% 대 이재명 36.3%였지만, 20대 여성에서는 이재명 58.0% 대 윤석열 33.8%로 정반대의 결과를 나타냈다. 또 30대 남성은 윤석열 52.8% 대 이재명 42.6%였지만, 30대 여성에서는 이재명 49.7% 대 윤석열 43.8%로 드러났다.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이 이재명에게 과반의 표를 몰아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듯 대선 막판에 등장한 이슈는 이재명에게 표를 던진 2030 여성의 결집이었는데, 이들에게 나타난 '간발 효과'는 민주당 입당으로 이어졌다. 민주당 서울특별시당은 보도자료를 내고 "3월 10∼11일 이틀 동안 온라인 입당자는 약 1만1000명에 달한다"며 "이 중 여성이 80%에 육박하고, 특히 2030 여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당은 "신규 입당 이외에도 일반당원에서 당비를 납부하는 권리당원으로 전환하겠다는 문의 역시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신규 당원 가입은 전국적 현상이 됐다.
3월 10일 개설된 이재명의 팬클럽 '재명이네 마을'(네이버 카페) 회원 수는 3월 17일 기준으로 11만896명을 기록했으며, 총 게시글은 13만4030개, 누적 방문자는 123만2307명이었다. 이재명은 카페 개설 하루 뒤 이곳을 방문해 글을 남겼다. 그는 낙선 인사를 겸한 인증글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패배의 책임은 오롯이 제게 있다"며 "서로를 향한 위로와 격려로 우리의 연대와 결속이 더욱 단단해질 수 있음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 글엔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이후 이재명은 이 카페에 하루에 3번꼴로 방문하는 등 지극정성의 공을 들였다.
이재명은 3월 15~16일 이틀간 172명 민주당 의원 전원에게 전화를 돌려 "제가 많이 부족했다.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는 의원뿐만 아니라 80여 명에 달하는 원외 지역위원장에게도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이에 민주당 일각에선 이재명이 '조기 등판론'을 염두에 둔 행보를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백낙청은 "이재명은 김대중 이후 최고의 정치지도자"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 훌륭한 분이지만 대통령으로서 썩 잘한 분은 아니었다고 봐요. 문재인 대통령은 아주 착한 분이죠. 촛불정부의 대통령으로서 잘해보려고 열심히 애쓴 건 사실이지만, 그 분은 정치지도자라고 보기는 좀 어려운 면이 있어요. 김대중 대통령 이후로는 뛰어난 정치인이 없었고. 특히 촛불혁명 이후에 촛불혁명을 현실 정치권과 연결시켜 줄 인재가 없었다고 봐요.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가 드디어 (뛰어난 정치지도자) 한 사람을 발견했다, 건졌다 하는 점에서 다소나마 위로가 됩니다."
"이재명은 김대중 이후 최고의 정치지도자"라는 백낙청의 주장은 진보 지식계에선 결코 예외적인 건 아니었다. 표현의 방식만 좀 다를 뿐, 그간 정치적 발언을 공공연히 해온 백낙청을 비롯한 진보 지식인 대부분이 그런 식의 '이재명 예찬론'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이런 '이재명 예찬론'은 이재명 지지자들에 의한 '민주당 장악' 운동의 심리적 토대가 됐다.
‘개딸' 등 이재명 팬덤의 '문자 총공'
3월 중순 이재명을 지지하는 여성 네티즌들이 이재명에게 SNS DM(다이렉트 메시지) 등으로 답장을 받았다는 인증글을 잇따라 올리기 시작했다. 인증글에 따르면 이재명은 자신을 응원하는 여성 네티즌을 친근감의 표시로 '개딸'이라고 불렀다. '개딸'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나온 말로, '강아지'처럼 천방지축인 딸을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인데, 여성 네티즌들은 이재명을 '잼칠라'(재명+친칠라)로 부르며 화답했다.‘개딸'이라는 작명의 발단은 이재명의 2006년 블로그 게시글이었다. 그 제목은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였다. 이 게시글이 갑작스럽게 유명해지면서, 많은 청년 여성층이 딸이 없는 이재명의 패배를 위로하며 '제가 딸이 돼드릴 게요'라는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해당 게시글의 댓글이 1000개를 넘으며 대호황을 이룬 게 '개딸'의 탄생 배경이었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스스로를 '개혁의 딸' '양심의 아들'이라면서 새로운 의미 부여를 했고, 이를 줄인 게 개딸·양아들이라고 했다.
작가 임명묵은 "이런 현상은 팬덤이 만들어지고, 또 위기를 겪으며 오히려 결속을 굳건히 다지는 팬덤 현상의 전형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선거 패배라는 '악재'는 팬덤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아이돌 팬덤에서는 이를 두고 '한(恨)을 먹는다'고 표현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이 지지하는 아이돌이 잘 안 풀리거나,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자꾸 속에 한을 품게 된다며 나온 표현인데, 당연하게도 한을 많이 품고 있을수록 더 '독한' 팬덤이 되기 좋다. 이 고문이 0.7%포인트라는 아슬아슬한 표 차로 패배한 일은 팬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한'을 먹는 계기가 되었고, 선거 지지를 위해 결성된 이재명 팬덤은 오히려 패배를 통해 진정한 팬덤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우리가 딸이 돼드리겠다'는 댓글 릴레이였던 것이다."
이재명과 개딸은 친근감의 표현을 위해 소통에 당시 유행하던 이른바 '자나체'를 끌어들였다. 한 여성 네티즌이 "아빠 사랑하잔(잖)아"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이재명은 "고맙자나(잖아)"라고 답했다. 또 다른 네티즌이 "건강관리 어떻게 하시나요?"라고 묻자 이재명은 "숨쉬기, 밥숟갈 들기 등"이라고 답했다. '답장을 하는 분이 이 전 후보 본인이 아니라 보좌진이냐'는 질문에는 "저는 보좌관 없는 실업자"라고 답했다. 이재명은 한 여성 네티즌이 "아빠 혹시 디엠 밀려서 못 보고 계세요?"라고 질문하자 "(DM이) 너무 많이 밀려 있지요. 우리 개딸님 너무너무 고맙잖아. 사랑합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재명은 "정말 고맙잔아, 내가 힘 나잔아. 이젠 외롭지 않을 것 같잔아"라며 여성 지지자들 응원에 화답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즈음 매일 수백~수천 통씩 쏟아지는 압박성 문자 메시지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대선 전과 다른 점은 문자폭탄을 던지는 주력부대가 문재인을 지지하는 '문파'에서 '개딸'을 비롯한 이재명 극성 지지층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디시인사이드 '이재명 갤러리' 등 일부 친명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이른바 '문자 총공(총공격)'의 주력이었다. 이들은 스마트폰 예약문자 기능을 활용해 특정 시각에 민주당 의원들에 문자메시지를 뿌리며 집단적인 의사를 표시했다. 한 호남권 재선 의원은 "지난 일주일 사이 받은 문자메시지가 1만 개는 족히 넘는다.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말했다.
3월 24일에 열리는 원내대표 선거에 나선 특정 주자에 대한 비토(거부)를 요구하는 문자폭탄도 쏟아졌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낙연 전 대표를 도운 박광온 의원은 절대 안 된다. 이 전 지사를 공개 지지했던 박홍근 의원을 뽑으라"는 식이었다. 한 수도권 3선 의원은 "의원단을 직접 압박하는 양상에 의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아이돌 덕질보다 재밌다"
개딸을 비롯한 이재명 팬덤의 활동 기준은 대의나 명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들은 모든 대의와 명분은 이재명이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 오직 이재명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만 따지는 인물 중심의 지지나 공격 활동을 벌였다. 문재인 정부와 당 주류를 향한 쓴소리 때문에 18원 후원금이 쏟아지던 민주당 의원 조응천에 대한 대응이 좋은 예였다.극성 친문 지지층에겐 눈엣가시 같은 조응천이었지만 대선 국면에서 '이재명의 친구'(사시 동기)로 알려지면서 이재명 팬덤은 이른바 '1004원 후원금 세례'로 전환했다. 그러나 나중에 조응천이 이재명에 대해 원칙에 따른 쓴소리를 하자, 이재명 팬덤은 다시 조응천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교주에 대한 충성을 절대시하는 종교적 행위와 비슷했다.
이재명 팬덤의 1004원 세례는 친명 의원들이 누릴 수 있는 특혜였다. 대선 때 이재명의 수행 실장을 맡았던 한준호의 후원금 계좌에는 3월 중하순의 1주간 이 같은 소액 후원 500여 건이 몰렸다. 이재명의 중앙대 후배로 이재명을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든 김남국에게는 20·30세대란 의미가 실린 '20300'원 후원금이 쏟아졌다. 이재명 캠프에서 '젠더' 이슈를 담당한 권인숙은 3월 17일 페이스북에 "선거일 이후 일주일 동안 보내주신 (소액) 후원금이 2000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며 액수를 공개했다.
1004원 후원이 달콤한 '당근'이라면 여전히 살아있는 18원 후원은 쓰디쓴 '채찍'이었다. 이재명 팬덤이 압박한 '검찰 개혁 찬성' 서약 요구를 거부한 의원에겐 무서운 채찍이 가해졌다. 실명으로 그걸 발설하는 것도 어려웠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초선 의원은 "서약 참여를 거부하자, 곧바로 나를 내부의 적인 것처럼 몰아세우더라"며 "1004원은커녕 '18원' 세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즈음 대표적 여초 커뮤니티 중 하나인 '여성시대' 카페엔 이재명 팬덤의 막강한 위세를 말해주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남자 아이돌 덕질보다 이재명 덕질이 재밌다. (아이돌) 소속사가 잘못할 땐 팩스 총공세를 벌여도 말을 듣지 않지만, 일주일 만에 10만 명 당원 가입하고 문자 총공세하니 민주당이 벌벌 떤다. 소속사보다 다루기 쉽다."(‘중앙일보', 2022년 3월 23일자)
상황이 그랬던 만큼 3월 24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서울 중랑을 3선 의원 박홍근이 당선된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 '박원순계'로 분류됐지만 박원순이 숨진 뒤 중진 중 가장 먼저 이재명 지지 의사를 밝혔던 그는 이후 이재명 후보 경선캠프 비서실장을 맡으며, '이재명계'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 경선 결과에 대해 한 '이재명계' 초선 의원은 "(이 고문이) 굳이 당장 전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이제야 비로소 진짜 '이재명의 민주당'이 돼가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평가했다.(‘SBS 뉴스', 2022년 3월 27일자)
막강한 권력 기구 된 이재명 팬카페
이재명의 공식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에 3월 23일 기준으로 14만여 명의 가입자가 몰리면서 이곳은 막강한 권력 기구로 다시 태어났다. 회원들은 '이재명의 민주당'을 공고히 하기 위해 '소속사 인기 순위'라는 이름의 인기투표를 진행했다. 투표에 참여한 회원은 1만7837명이었는데, 민주당 정치인 중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정치인에게 투표를 하는 방식이었다. 대부분 친명계 인물들이 상위권, 대부분 친문·친이낙연계 인물들이 하위권에 랭크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3월 26일 발표된 순위에 따르면 1위는 최강욱 의원, 2위는 최민희 전 의원, 3위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4위는 이재명 캠프 출신 박찬대 의원, 5위는 김남국 의원이었다. 6위는 민주당 신임 원내대변인에 임명된 이수진 의원, 7위는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우상호 의원, 8위는 김진애 전 의원, 9위는 박주민 의원, 10위는 김용민 의원이었다. 이낙연은 56위를 차지했으며, 친문·친이낙연 지지자들에게 인기 있는 박광온이 65위로 꼴찌였다. 이밖에 김진표 의원(61위), 전해철 의원(59위), 설훈 의원(58위), 홍영표 의원(55위), 김종민 의원(50위) 등이 하위권에 그쳤다.
인기투표 순위는 토요일마다 공개되며 1~10위 정치인들 사진 밑에는 후원계좌가 노출됐는데, 이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이재명 앞에 줄을 설 것을 요구하는 암묵적 압박이 됐다. 투표 결과를 본 이재명 지지자들은 "순위가 참 옳다" "제대로 정리됐다" "프로듀스101처럼 재미있다" "이거 나중에 공천 순위면 볼 만하겠다" "민주당은 공천 때 참고해 달라" "10위 안에 든 의원들에게 후원금 보내야겠다" "순위가 이렇게 정확할 줄이야. 줄 세우는 거 좋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조선일보', 2022년 3월 27일자)
이재명은 4월 2일 밤 이제 회원 수 17만4000명을 넘어선 '재명이네 마을'에 직접 '이장 한다잔아(한다잖아)'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그는 "사실 고민 많았는데 투표까지 해 결정했으니 거부할 수가 없잔아(없잖아). 마을 주민 여러분의 봄날 같은 따스한 사랑에 너무 감사하잔아(감사하잖아)"라며 카페 회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이 카페에서 온라인 투표를 진행해 99.6%의 찬성으로 이재명을 '1대 이장'으로 뽑았고, 이재명은 이를 수락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이었다.
이재명은 "우리 모두 함께 손잡고, 동막골 같은 행복한 마을 한번 만들어보잔아(보잖아). 내가 먼저 존중하고, 지향이 같다면 작은 다름은 사랑으로 감싸주면 더 좋잔아(좋잖아)"라고 했다. 이어 "개딸, 냥아, 개삼촌, 개이모, 개언니, 개형 그리고 개혁동지와 당원동지 시민 여러분 모두 모두 깊이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이에 화답하듯 경기도지사를 꿈꾸며 이젠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친명 의원이 된 안민석은 4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풍(노무현 열풍) 이후 20년 만에 20여만 명의 청년 당원이 자발적으로 민주당에 가입한 것은 가히 기적"이라며, '당비 6개월 납부' 조건 규정을 개정해 신규 당원들에게 지방선거 공천·8월 전당대회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취약한 조직이었단 말인가!
4월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된 개딸을 비롯한 이재명 팬덤의 민주당 의원 장악 시도는 "당원 가입하고 문자 총공세하니 민주당이 벌벌 떤다. 소속사보다 다루기 쉽다"고 했던 어느 이재명 팬의 말을 실감나게 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아 거대 정당이 이렇게 취약한 조직이었단 말인가! 그런 놀라움을 안겨줄 정도로 민주당은 '이재명의 정당'이 되기 위해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재명이 팬덤을 앞세워 '민주당의 방탄화'를 추진함으로써 '정치 팬덤' 관리술의 신기원을 열어젖히는 모습은 다음 호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6월호 '‘만독불침 선생' 이재명의 '정치 팬덤' 관리술②'로 이어집니다.
강준만
●1956년 출생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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