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스토리]'슈퍼 을' ASML도 동참…美 반도체 규제 성공할까

이인준 기자 2023. 5. 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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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미·중 갈등 한복판에 선 네덜란드 ASML
EUV 독점 생산하며 '슈퍼 을' 위상 확고
美 압박에도, 中 생태계 자립 가능성↑
韓도 장비 자급율 높여야

[서울=뉴시스]ASML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와 ASML코리아 이우경 대표이사. (사진=업체 제공) 2022.11.1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최근 미국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을 견제하기 위해 대(對) 중국 제재를 밀어붙이고 있어 반도체 업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반도체는 웬만한 장비 하나가 수백억원을 호가할 정도로 고비용 산업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5000억원에 달하는 장비까지 나왔다.

장비 하나가 산업 지형도를 바꿔 놓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장비를 구하지 못해 반도체 기업들이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네덜란드 장비업체인 ASML이 생산하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가 단적인 예다. ASML는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 을(乙)'로 통한다.

TSMC도, 삼성도 줄 서서 기다린다는 EUV

EUV는 반도체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포토(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작업)' 공정에 쓰인다.

기존에는 회로를 새길 때 불화아르곤(ArF) 광원을 썼는데, 회로가 미세화되면서 한계에 부딪혔다. 빛에 간섭이나 산란이 생겨 원래 그리려던 것과 다른 패턴 왜곡이 생기는 것이다. 이른바 '회절(diffraction)' 현상이다. 반도체 업체들은 이에 여러 차례에 나눠서 그리는 '멀티 패터닝' 기술 등 제조 과정으로 이를 극복했지만, 대신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갔다.

업계의 이런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준 것이 EUV다. 업계에서는 EUV를 '세필'에 비유한다. 도화지에 선을 얇게 그리려면, 붓의 두께를 줄이면 된다. 회절 현상은 빛의 파장이 길수록 더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을 사용하면 반도체 회로를 더 미세하고 오밀조밀하게 새길 수 있다.

단계를 줄여 포토 공정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이를 통해 오염 가능성도 줄여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의 비율)이 개선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오늘날 첨단 반도체 생산은 EUV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고사시키기 위해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나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실수" 부정적 전망 잇달아

미국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10월7일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명문화해 발표했고, 수출 통제에 일본과 네덜란드가 동참 입장을 밝혔다. 반도체 3대 장비 수출국이 모두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는 과연 성공할까. 일단 미국의 승리로 평가 받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소재와 장비를 구하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해 중국 반도체 기업 폐업 건수는 5746곳으로, 전년보다 68% 급증했다. 최근 2년간 9166개사가 문을 닫았다.

[엘패소( 미 텍사스주)=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이 2023년 1월 8일 텍사스주 엘패소의 국경 장벽 부근을 시찰하고 있다. 바이든은 멕시코 국경에 1500명의 현역 군인을 파병해서 5월11 해제되는 국경 추방령 이후 쇄도할 이민의 물결에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장기적 중국이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자립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UV를 독점 생산하는 ASML는 중국의 기술 복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그럼에도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가 실수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은 장비를 구할 수 없다면 스스로 개발할 것"이라면서 "압력을 가할수록 노력은 배가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도 최근 "중국의 핵무기와 인공지능(AI)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해 마련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규제가 실제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평가에도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 규제 품목을 확대하는 방안을 계속 추진할 전망이다.

반도체 공급망 위기 지속…韓 자급률 높여야

한국의 반도체 장비 자립도 상황은 어떨까.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상무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중 수출 통제 유예 조치를 1년 더 연장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는 근심을 안고 있던 한국 반도체 업계는 일단 한시름 덜었다. 삼성전자는 낸드 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은 그동안 국경 없는 산업으로 통했다. 장비(미국·일본·네덜란드), 소재(일본), 제조(한국·대만) 등 분업화된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중 갈등 이후 더 이상 지정학적 리스크가 없는 생산이 불가능해졌다.

각국은 자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동맹국들끼리 핵심기술을 공유하고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이른바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이 확산되고 있다. 사실상 미국과 그 동맹국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한국은 반도체 제조가 불가능하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 장벽이 높아 지금 같은 장비의 독과점 구조는 향후 10년 내에는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미국 등 반도체 장비 수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만 한국의 소재, 장비 자급률이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핵심 장비의 국산화율을 높이면서 해외 의존도를 줄여 나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다. 또 기술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후공정 분야에 집중돼 있다.

앞으로 거대 시장인 중국의 반도체 장비 자립 시도가 이어질 전망이어서 한국도 지속적인 연구개발·투자가 없다면 기술력에서 중국에 따라 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들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ijoin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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