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컴공과 오지 말고 농사나?"…유리천장 깨는 인재들 [긱스]

고은이 2023. 5. 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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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여자는 컴공과 오지 말고 농사나 지어라." 최근 서울 한 사립대의 공과대학 강사가 강의 중 이런 말을 한 게 드러나 논란이 됐습니다. 테크 분야의 여성 인재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과는 거꾸로 가는 발언이었죠. 한때 테크 영역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개발은 물론 정보기술(IT) 기획과 재무, 세일즈 등 테크업계 전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테크 분야의 여성 리더십을 지원하는 '걸스인텍코리아(Girls in tech Korea)'의 이현승 한국지부장(텔레파씨 공동창업자)을 만나 '여성X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현승 걸스인텍 한국지부장.

"'테크분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 개발자 혹은 컴공? 이렇게 떠오르는 것들의 특징이 있나요. 혹시 성(性)에 대한 부분은요?" 

이현승 걸스인텍 한국지부장은 비영리단체인 걸스인텍코리아를 이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본사인 걸스인텍은 전 세계 6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테크 분야에 관심이 있는 여성들을 위한 교육과 네트워킹 등을 지원한다. 이중 한국 지부인 걸스인텍코리아는 2014년 설립된 이후 10년 동안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페이스북) 등과 협업해 '여성코딩데이' '우먼스피치나잇'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왔다. 

테크 분야는 남성 종사자 수가 많았던 분야 중 하나였다. '개발자'라고 하면 '체크남방을 즐겨 입는 남성'일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새 많은 여성들이 테크 분야에 뛰어들어 두각을 보이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2015년 국내 소프트웨어(SW) 분야 여성 비중은 12.5%였다. 지난해엔 22.6%까지 올랐다. 걸스인텍의 목표는 '걸스인텍 같은 곳이 더 이상 필요없어지는 세상'이다. 다음은 이 지부장과의 일문일답. 

늘어나는 테크업계 여성 인재

Q. 최근 몇년 새 테크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어난 것 같다. 
A. 그렇다. 숫자 자체가 많아졌다. 여성 종사자가 특히 적었던 백엔드 분야나 IT세일즈 쪽에도 수가 늘었다. 지난해 걸스앤텍이 IT세일즈 업무 관련 세미나를 했는데 '이런 행사가 너무 필요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테크 분야 내에서도 여성들이 참여하는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헤이조이스(여성 커리어 성장플랫폼)나 스여일삶(스타트업 여성 종사자 커뮤니티) 같은 곳들도 생겼다. 

Q. 걸스인텍은 테크분야 여성들의 리더십 조성을 지원하는데 그 배경은. 
A. 여성 종사자는 늘었지만 사실 테크업계의 리더 포지션에는 아직 여성들이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한 리더십은 백인 남성의 리더십을 기본으로 만든 경우가 많다. 강하고 담대한 불도저 리더십을 옳은 리더십이라고 생각하는데 백인 여성으로만 가도 사람들은 그 리더에게 엄마 같은, 따뜻한 면을 기대한다. 그래서 이 여성 리더가 담대하고 강한 리더십을 보이면 반감을 갖기도 한다. 이게 여성 리더의 모수가 많아져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다양한 사례들이 발굴되고 많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맞는 고유의 리더십을 찾아가야 한다. 


Q. 테크 분야의 여성 리더들은 '여성 대표'라는 수식어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A. 여성 리더의 숫자 자체가 적으니까 여성 창업자나 여성 대표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당사자 입장에선 '굳이 왜 여성이라는 사실이 강조돼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남성 리더에게 남성 창업자나 남성 대표라고 강조하진 않는 것처럼 말이다. 큰 흐름 상 필요한 부분, 거쳐가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움츠러들지 말고 목소리 내라" 

Q. 여성 종사자들이 늘었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A.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두려움이 있는 여성들이 아직 꽤 있다. 예전과 비교하면 그런 경향성이 줄었지만 여전히 있다. 예컨대 걸스인텍이 연사로 모시고싶다고 컨택을 했을 때 ‘저는 아직 그 정도로 내비칠 수 있는 만한 이력이 없어요’라며 거절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외부에서 봤을 때는 충분히 궁금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경우에도 그렇다. 여성들이 자신감을 갖고 움츠러 들지 않고 목소리를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조직에서도 더 큰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A.  조직 내에서 팀장 같은 리더급 제안이 왔을 때 여성 종사자들이 스스로 손사래를 치는 경우들이 있다. 제안한 사람은 그 사람이 리더 역할을 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제안한 건데 당사자 스스로 거절해버리면 이 제안자의 판단까지 부정하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좋은 제안이 오면 일단 오케이를 하고 HOW(어떻게)에 대해서는 그 후에 생각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기회가 온다면 그걸 잡아서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았으면 한다. 

Q. 여성으로서 테크 분야에서 가질 수 있는 강점이 있을까. 
A. 많다. 개발은 물론 어떤 서비스에 대한 정책을 정할 때 여성 사용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공감할 수 있다. 만약 여성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내가 감수해야지’가 아니라 생각 자체를 ‘이거 불편하네. 그러면 어떻게 개선해야할까’로 바꿔보면 거기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테크업계 다양성 더 강화돼야 

Q. 걸스인텍에 어떻게 합류하게됐나. 
A. 2016년에 집카 창업자인 로빈 체이스 강연을 들으면서 걸스인텍을 통해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걸스인텍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2019년부터 한국지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운영진이 15명인데 여성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걸스인텍이 지난 3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진행한 '일이 되게 하는 법' 세미나. @걸스인텍


Q. 텔레파씨의 공동창업자인데, 여성 창업자로서 느꼈던 아쉬움이 있다면. 
A. 금융이나 투자 용어, 개념에 대해 장벽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 한국에서 남성들은 문화적으로 가정을 책임진다는 개념으로 경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데,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덜 배우는 측면이 있다. 금융이나 경제 용어들을 조금 더 어렸을 때 접하고 돈과 경제의 흐름에 대한 이해도를 갖추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 창업하는 순간 숨만 쉬어도 돈이고, 비용이 나가는데 그 지출을 어떻게 관리하고 자금을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이해도 같은 부분이다. 

Q. 테크업계의 문화가 달라질 필요도 있을까.
A.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소속감을 느끼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술 먹으면서 노는 분위기가 있다면 만약 조직원 중 누군가가 그걸 싫어한다고 했을 때 거기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걸스인텍이 필요없어지는 세상이 목표"

Q. 올해 걸스인텍의 계획이 있다면. 
A. 각 여성들의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개인 레벨로 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개발자 커뮤니티를 만들어 코딩 과제를 운영하고 있고, 네트워킹도 더 활성화하려고 한다. 예컨대 6~10명 정도의 그룹을 만들어 대화를 하고 서로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드는 식이다.  

걸스인텍이 지난 22일 진행한 '앞서가는 개발자들의 3가지 비밀' 행사. @걸스인텍


Q. 여성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A.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중요하다. 예컨대 구직만 하더라도 남자들은 채용 조건 중 70%만 충족해도 지원하는데 여자들은 200%, 내가 뭔가 자격이 돼야지만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것은 물론 주변에 선후배, 동료가 있다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면 좋겠다.

Q. 걸스인텍이 나아가고 싶은 방향은. 
A. 테크분야 여성들이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남 눈치 안보고 확신에 차 나아갈 수 있는 세상. 그 여성들에게 손가락질하는 문화가 없는 세상. 걸스인텍 운영진이 따로 추진하지 않더라도 서로 지원하고 돕는 문화. 걸스인텍 같은 곳이 더 이상 필요없어지는 세상이 목표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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