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는 재계 총수, 하반기에도 30개국 강행군
[편집자주]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재계 '총'수들의 한주의 현장 활동을 '총'정리하고, 그들의 행보('총총'걸음)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 한국 기업들이 나아갈 길을 점검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출장은 어땠습니까?" " (체력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최태원 SK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3일 오후 상의가 주최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국제세미나' 인삿말을 하고 떠나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배웅하던 중 기자가 던진 질문에 답한 말이다.
최 회장은 지난달 24~29일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 일정이 끝난 직후 15인승 전용기의 뒷좌석에 몸을 싣고 다시 남미로 향했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지지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북유럽 3개국 방문에 이어 이번에는 남미 국가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최 회장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남미 2개국을 찾아가 2030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지지를 호소했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가 한번 훓고 지나간 국가를 찾아가 지지를 호소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차가 12시간이나 차이가 나 낮밤이 바뀌어도 직접 찾아가 만나 서 부산을 지지해달라는 호소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사우디의 오일머니를 기대하는 국가들에게 사우디와 달리 우리가 딱히 약속해줄 것도 마땅치 않아 발로 뛰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최 회장은 하반기에도 매월 최소 5개국씩 총 30개국 이상을 찾아다니며 부산엑스포를 지지해줄 것을 요청할 예정이다.
과거 이건희 삼성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활동할 때 기자들에게 행선지를 비보도로 해 줄 것을 요청한 것처럼 최 회장도 방문한 지역이 공개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방문지가 공개되면 엑스포 유치 경쟁국인 사우디가 다시 작업(?)에 들어가 우리 쪽으로 기울었던 표심을 되돌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잦은 출장으로 인한 육체적 부담보다는 엑스포 유치를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정신적 부담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그는 3일 열린 탄소중립 국제세미나 개회부터 첫날 행사가 끝날 때까지 4시간 가량 자리를 지키며 12시간의 남미 시차를 극복하고 있었다.
최 회장 외에 지난 주 두드러진 뉴스를 제공한 총수는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다. 조카인 박철완 전 상무와의 경영권 분쟁을 겪은 박 명예회장은 장남인 박준경 사장에게 일정 부분 경영을 넘겨놓은 상태로 자신은 무보수 명예회장직으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해 7월 박준경 사장이 등기임원이 되면서 인사권을 제외한 현안 업무는 모두 박 사장과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왔다. 대신 1주일에 2번 정도 회의에 참석해 큰 가닥에서의 업무 지시만 했었다.
박 회장은 매주 화요일은 10여명의 금호석유화학그룹 사장들이 모이는 사장단 회의를 주재했고, 목요일은 임원 회의를 진행했다.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 이같은 회의도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 사석에서 만나 본 박 명예회장은 차분하면서도 현안 하나하나에 꼼꼼하게 챙기는 스타일이었다. 올해 우리나이로 76세지만 건강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법무부와의 취업제한 이슈로 소송전을 벌여온 것에 대한 부담과 이와는 별개로 이제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게 옳은 일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찬구 회장이 현업에서 물러났다면, 이우현 OCI 회장은 인적분할한 지주회사 OCI홀딩스 회장으로 승진해 지난 2일부터 그룹 전체를 총괄하게 됐다.
지난 주 기업 본연의 업무인 사업현장과 파트너, 고객들을 찾아다니는 총수들의 활동도 눈에 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달 윤 대통령의 방미 수행이 끝난 직후부터 이달 중순까지 북미에 머물며 버라이즌과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기업 CEO들과 바이오 업계 최고 경영자들과 만나 사업 현안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회장은 세계 최대 바이오클러스터인 미국 동부에서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 및 바이오 벤처 인큐베이션 회사 등 바이오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CEO들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고 삼성 측은 7일 밝혔다.(참조: 7일 오후 2시 내용추가 수정)
이 회장은 △호아킨 두아토 J&J CEO △지오반니 카포리오BMS CEO △누바 아페얀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CEO △크리스토퍼 비에바허 바이오젠 CEO △케빈 알리 오가논 CEO와 각각 만나, 바이오 사업 경쟁력 강화 및 신사업 발굴을 위한 상호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롤 통해 '제2반도체 신화' 구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이다.
이 회장의 폭넓은 글로벌 네트워크는 삼성 바이오 사업이 빅파마들과의 협업을 확대하며 미래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 회장은 제약사와의 미팅 후 북미 판매법인 직원들을 만나 글로벌 공급망 현황을 점검하고 격려했다.
그는 "출발점은 중요하지 않다, 과감하고 끈기있는 도전이 승패를 가른다, 반도체 성공 DNA를 바이오 신화로 이어가자"라고 말했다. 7일 방한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방한 이튿날 추진되는 '경제인 간담회'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선 현대기아차 회장은 지난 4일 오전 충남 당진 현대제철 공장을 찾아 2시간 가량 현장 점검했다. 현장경영과는 별개로 정 회장은 재능기부의 형태로 오는 25일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에 참여해 MZ세대와의 소통에도 나설 계획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항공기 격납고(Hangar)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최태원 부산엑스포 공동유치위원장, 장성민 대통령비서실 미래전략기획관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30부산세계박람회 대한항공 특별기 공개행사'를 가졌다.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을 위해 보잉777-300ER 항공기에 걸그룹 블랙핑크 이미지를 랩핑한 행사다. 조 회장은 이날 행사 환영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한편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영광"이라고 밝혔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 3일 오후 2시 50분쯤 이마트 연수점을 방문해 1시간 가량 매장을 둘러보며 취재진은 물론 고객들과 적극 소통했다.
구자은 LS 회장은 지난 2일 LS전선이 강원도 동해시에 건설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초고압직류송전(HVDC) 해저케이블 전용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준공식에는 구 회장을 비롯해 명노현 ㈜LS 대표, 구본규 LS전선 대표 등 그룹 내 주요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기업 본연의 업무가 아닌 다른 이슈로 재계를 달군 총수들도 있다.
HDC 그룹의 정몽규 회장은 대한축구협회장으로서 지난 3일 협회 이사진 개편 내용을 발표하며 지난 3월 승부조작 가담자들을 사면한 조치에 대해 다시 한번 대국민 사과했다.
조현준 효성 그룹 회장의 동생인 조현문 전 효성그룹 부사장은 강요미수혐의로 형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지난 3일 첫 재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조 전 부사장은 2013년 부친인 조석래 명예회장 등에게 '비자금 자료를 폭로하겠다'며 본인의 사임과 관련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사과할 것을 강요하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법정에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다양한 농담을 하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 외에도 직원들 복장논란의 중심에 섰던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이번에는 혼외자 문제와 그 생모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뉴스로 재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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