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란에도 英 여왕 대관식에 국회의장 보내

김태훈 2023. 5. 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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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 등 세계 각국의 정상급 인사들이 참석했다.

6·25전쟁 당시 영국은 연인원 5만6000여명의 병력을 유엔군 일원으로 한국에 파병했는데, 이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당시 한국에 있던 영국군은 고국의 여왕 대관식에 맞춰 경기 포천 마전리에서 축하행사를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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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6월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열려
신익희 당시 국회의장이 韓 대표로 참석
이번 한덕수 총리보다 의전 서열 더 높아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 등 세계 각국의 정상급 인사들이 참석했다. 한국도 행정부의 ‘2인자’인 한덕수 국무총리를 대관식에 보내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축하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왼쪽)이 대관식 하루 전인 지난 5일(현지시간)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환영 리셉션에서 우리 정부의 축하 사절인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한 총리 오른쪽은 윤여철 주영 대사. 연합뉴스
이번 대관식은 21세기 들어선 처음 열린 행사다. 그간 영국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개최된 대관식은 꼭 70년 전인 1953년 6월 2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위한 것이었다. 현 국왕 찰스 3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가 1952년 즉위해 2022년 별세하기까지 70년간 재임했으며, 그 사이 영국에서 국왕의 교체는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당시 한국은 6·25전쟁 중이었다. 그래도 대관식에 우리 정부를 대표해 축하 사절을 보냈다. 당시 국회의장이던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이 그 임무를 수행했다. 국가 의전서열로 따지면 이번의 한 총리보다 더 ‘급’이 높은 인물을 참석시킨 셈이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춘 해공이 적임자이기도 했으나, 그만큼 영국과의 관계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6·25전쟁 당시 영국은 연인원 5만6000여명의 병력을 유엔군 일원으로 한국에 파병했는데, 이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영국군 참전용사 가운데 1000여명이 북한군 및 중공군과의 교전에서 전사했다. 그들 상당수가 부산 유엔군묘지(현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20연대 통신병 덕 레이먼드가 1953년 6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을 기념하고자 그린 현수막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현수막은 당시 20연대가 주둔하던 경기 연천 삼화리 부대 막사 앞에 내걸렸다. 주영한국문화원 제공
비록 전란의 와중이었으나 한국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을 축하하는 의식이 있었다. 당시 한국에 있던 영국군은 고국의 여왕 대관식에 맞춰 경기 포천 마전리에서 축하행사를 열기로 했다. 그런데 최전방에 있던 왕립포병대 소속 20연대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느라 합류가 어려웠다. 결국 20연대는 주둔지인 연천 삼화리에서 따로 행사를 갖기로 하고 스스로 제작한 축하 현수막을 막사 앞에 내걸었다. 당시 20연대 통신병이었던 덕 레이먼드가 틈틈이 현수막을 그렸다고 한다.
‘대관식을 축하하며, 한국에서, 1953’이라고 적힌 이 현수막은 휴전 후 종적을 감췄다가 2013년 한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매물로 나왔다. 어느 고미술품 수집가가 가치를 알아보고 사들여 우리 문화체육관광부에 전달했다. 문체부는 6·25전쟁 참전국인 영국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뜻에서 이듬해인 2014년 현수막을 영국 정부에 기증했다. 현재 런던 울위치에 있는 왕립포병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48∼1954년 국회의장을 지낸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대관식에 한국을 대표해 축하 사절로 참석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생전에 엘리자베스 2세는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이 즉위했을 때는 물론 대관식 당시에도 꽤 많은 수의 영국군이 한국에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군 사상자 또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었다. 대관식을 마치고 세계 각국의 사절단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한국에서 온 해공과 악수하며 꽤 오랫동안 그의 손을 붙들고 놔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딱한 처지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그곳에 있던 영국군 장병들의 건강을 기원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2세는 1999년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국빈 방한했을 때 DJ의 환영사에 화답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보는 한국은 제가 왕위에 오른 1953년 당시 영국민이 알던 것과 많이 다릅니다.” 한국에 관한 기억 하면 온통 6·25전쟁의 비극뿐이었는데, 그로부터 50년도 안 돼 눈부신 성장을 이룬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한 것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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