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현 손 꼭 잡은 포크볼 마스터의 '거짓말' 기술 전수, 진화하는 괴물 신인의 고마운 조력자 [대전 현장]

정재근 2023. 5. 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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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의 손가락을 세심하게 만지는 베테랑 장민재의 정성. 대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일희 일비' 감정 변화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만큼이나 투수에게 중요한 또 한 종류의 '포커페이스'가 있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등 변화구를 던지는 그 순간에도 "나 지금 직구 던지는 거야"라는 거짓말로 타자를 속일 수 있는 투구폼의 포커페이스 기술이다.

직구 구속이 160km를 찍은 괴물 신인 김서현은 이미 고교 때부터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포크볼, 스플리터, 너클볼까지 독학으로 터득한 구종 천재다. 김서현은 올 시즌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된 후 손혁 단장과의 면담을 통해 구종을 빠른 공, 슬라이더, 체인지업으로 단순화했다. 그리고 서산 2군에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더 정교하게 연마했다. 제구력 향상을 위해 팔 높이도 일정하게 고정했다.

퓨처스리그에서 5경기를 소화한 후 4월 19일 드디어 1군에 모습을 드러낸 김서현의 데뷔전은 강렬했다. 한화 구단의 트래킹 데이터에 160.1km의 최고 구속이 찍혔다. 한화는 2년 차 문동주에 이어 김서현까지, 두 명의 160km 투수를 보유한 구단이 됐다. 김서현은 이후 6경기에 나와 7이닝을 소화하며 5피안타(1홈런)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하며 한화 불펜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3일 잠실 두산전 7회 마운드에 올라 투구하는 한화 김서현. 잠실=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

3일 잠실 두산전 7회에 등판한 김서현은 또 한 번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김서현의 투구폼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배운 지 3일밖에 안 된 스위퍼를 대담하게 던졌다. 허경민과 로하스를 땅볼로 잡은 후 상대한 장승현에게 던진 두 번째 공이 스위퍼였다. 오타니가 2023 WBC 결승전에서 트라웃을 잡아낸 공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해진 스위퍼는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유행하는 변형 슬라이더다.

매일 매일 진화하는 김서현은 아직 완성된 투수가 아니다.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것과 동시에, 갈고 닦아야 할 부분이 많은 원석에 가깝다. 김서현 자신도 그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경기 전 훈련을 지켜보면 김서현은 끊임없이 선배들에게 묻고 또 묻는다.

지난 4월 2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촬영한 영상이다. 팀의 베테랑 투수 장민재가 김서현의 손을 붙잡고 한 참 동안 손가락의 위치와 손목 각도에 관해 설명했다. 김서현이 먼저 장민재에게 조언을 구했고, 장민재는 기꺼이 자신의 훈련 시간을 후배에게 투자했다.

훈련 전부터 시작된 장민재의 노하우 전수

김서현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의 그립은 완성됐지만, 릴리스 포인트 직전 손목의 각도가 달라서 타자에게 구종을 읽힐 수 있는 약점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입단 15년 차 베테랑 장민재. 직구 평균 구속이 136km에 불과하지만, 주 무기인 포크볼로 지난 시즌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데 이어 올 시즌에도 든든한 지킴이가 되고 있다. 장민재는 선발로 나선 5경기에서 1승2패 2.81의 평균자책점으로 문동주(4경기 1승2패 2.38)와 함께 한화 선발 마운드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2일 잠실 두산전. 6회말 한화 장민재가 마운드를 내려가며 아쉬워하고 있다. 장민재는 마운드를 내려간 후에야 뒤늦게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오열했다. 팀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이었다.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

지난 2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 등판한 장민재는 5⅔이닝 동안 4안타 1볼넷 2사구로 1실점 하며 마운드를 꿋꿋하게 지켰다. 두산 선발 라울 알칸타라에 막힌 타선이 한 점도 뽑아내지 못하며 팀은 0대3으로 패했지만 장민재의 역투는 눈부셨다. 장민재는 이날 총 92개의 투구 중 절반이 넘는 49구를 포크볼로 던졌다. 직구는 28개를 던졌고, 슬라이더(8개)와 커브(7개)를 양념처럼 섞어 두산 타선을 요리했다.

직구와 똑같은 폼으로 던지는 포크볼, 직구 최고구속 138km의 장민재가 사는 법이다. 타자들은 장민재의 투구폼에서 직구와 포크볼의 차이를 알 수가 없다. 장민재가 김서현에게 조언한 것도 바로 그 부분이다. 장민재는 자신이 포크볼을 던질 때 직구처럼 끝까지 공을 채는 것처럼,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질 때도 손가락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까지 최대한 손목 각도를 직구처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 지금 직구 던지는 거야'라는 거짓말에 타자가 속을 수 있게 말이다.

공을 잡은 김서현의 손가락을 세심하게 조정해 가며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아낌없이 알려주려 애쓰는 장민재의 모습에서 베테랑의 진정한 품격이 느껴졌다. 14살 차이 선후배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똑같이 뜨거웠다.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그립을 시범 보이며 긴 시간을 김서현을 위해 투자한 장민재
김서현의 투구폼이 마음에 든 후에야 장민재는 자기 훈련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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