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등 남미에 확산되는 리튬 국유화 흐름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미래 먹거리 확보 위한 광물 전쟁 본격화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4월20일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TV연설을 통해 리튬 생산을 담당하는 국유기업을 설립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리튬 산업의 국유화를 선언한 것이다. 칠레는 현재 세계 리튬의 52%를 생산하고 있다. 호주에 이은 세계 2위 리튬 생산국이다. 리튬 매장량으로만 치면 세계 최다여서 칠레 대통령의 발표가 주목을 받았다. 이차전지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리튬의 국유화 흐름이 최근 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볼리비아가 리튬 국유화를 선언했다. 세계 3위 리튬 매장량을 보유한 아르헨티나는 리튬을 전략물자로 지정하고 기업의 채굴권을 정지시킨 바 있다. 칠레의 리튬 국유화는 지난 2월 멕시코의 국유화 선언 직후 이뤄졌다.
두 번은 실수하지 않는다
전 세계는 현재 배터리를 둘러싼 경쟁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고 있다. 석탄,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통한 대량의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인류 문명은 '멜서스의 덫'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의 직접 연소를 최소화해야 하며, 이를 대체하기 위한 전기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은 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전기는 기본적으로 저장하기 매우 어렵다. 19세기 후반 이후 수많은 발명가가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도전해 왔지만 현재까지 제일 효과적인 전기 저장 수단은 1990년대 초반 일본의 소니가 개발한 리튬을 근간으로 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처음에는 휴대전화, 노트북 등을 중심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점차 사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자동차 보급 확대에 따라 리튬이온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그 특성상 대규모 광물자원을 필요로 한다. 리륨이온 전지는 이름 그대로 대량의 리튬과 더불어 코발트, 니켈, 망간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배터리 수요 확대는 필연적으로 광물에 대한 수요 확대로 이어진다. 원유의 경우 세계적으로 약 70개국에서 생산·판매되고 있으며 시장점유율 1위 국가의 경우에도 약 2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광물자원 생산은 특정 국가에 집중된 만큼 배터리 수요 확대는 이들 광물자원을 보유한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은 그렇지 못한 나라에 비해 경제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배터리와 관련된 광물자원을 보유한 국가들은 이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특히 리튬은 지역별로 자원의 특성이나 기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춘 추출 공정 설계를 조정해야 한다. 리튬의 생산 공정은 리튬을 함유한 염수를 태양열로 증발시켜 농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증발 과정에서 염화리튬이 중간 생성물로 생기는데 이러한 염화리튬에 소다회를 혼합하면 탄산리튬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수산화리튬을 얻고 싶다면 기상 조건에 따라 반응물질 투입량을 조절해야 한다. 리튬을 보유한 국가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리튬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배터리에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고품질로 가공하는 데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거처럼 저렴한 원료 형태로 다른 국가에 판매하지 않고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배터리와 관련한 광물자원을 보유한 국가들은 일련의 산업들을 구축하면서 가치 사슬의 고부가가치 부문을 자국 내에 확보하려 한다. 대표적인 국가로는 인도네시아를 들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니켈 생산 국가로서 2020년 원광 형태의 니켈 수출을 금지시킨 바 있다. 인도네시아는 대규모로 보유한 니켈과 2억7000만 명에 이르는 인구를 활용해 자국 내에서 이차전지 및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니켈 채굴 및 가공에서 시작해 양극재, 배터리 셀과 팩, 그리고 전기자동차에 이르는 종합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140GWh 규모의 배터리 제조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 수요의 약 5~9%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움직임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 중국의 CATL 등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대차도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건립한 바 있다.
광물 부국인 칠레도 최근 이차전지 및 전기차의 국내 생산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칠레의 경우 양호한 일조량 덕에 태양광발전이 매우 활발한데, 2025년이 되면 전력요금이 메가와트아워(MWh)당 15달러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유럽의 25% 수준에 불과하다. 구리와 리튬을 비롯한 대규모 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렴한 전력을 통해 배터리 및 전기차 산업을 자국 내에서 육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선진국들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리튬, 흑연, 니켈, 코발트 등 이차전지에 포함되는 광물자원을 중심으로 31개 광물을 국가 핵심광물로 지정한 바 있다. 이런 전략을 통해 이차전지 및 전기차 등 제조업 육성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제정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경우 미국 외에 캐나다와 멕시코 등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 체결 국가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해서도 미국 내 생산과 동일한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캐나다로서는 이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광물자원을 보유한 호주도 캐나다와 유사한 접근을 통해 취약한 제조업을 육성하고 안정적인 고용 창출 기회로 활용하려고 한다.
우리 기업들도 자원 확보 전략 다시 짜야
1990년대 이후 30년간 진행된 세계화 시대에는 시장이 하나로 통합돼 있었기 때문에 각국은 자신들의 우위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자원이 많은 국가들은 이들을 판매하는 데 주력했고 미국, 독일과 같은 국가들은 기술 개발을,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우 저렴한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이를 가공해 수출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화의 흐름이 약해지면서 각국은 해외에 의존하던 제조업을 자국 내에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특히 미래 주력산업이 될 것이 확실한 이차전지와 전기차의 경우 자원 의존도가 높아 자원을 대규모로 보유한 국가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단기적으로 우리 기업들은 해외투자를 강화해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국내 산업의 공동화와 중복 투자로 인한 수익성 저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은 근본적 전환과 생산방식을 고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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