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오를때까지 버텨”...전세사기 피해자한테 집 사라는 정부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2023. 5. 7.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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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기땐 문제 없던 갭투자
하락장되면서 전세사기로 전환
정부, 3년거치 혜택 등 제공하며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매매 유도
부동산 부양책 중 일부로 해석돼
근본대책은 전세자금대출 축소
부동산 기득권 의식해 못 줄여
세입자, 안심전세앱 설치해야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주최로 정부 전세사기 특별법안 비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3.4.28 [한주형기자]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30]

인천 미추홀구, 구리, 동탄 등 전국 각지서 발생한 전세사기가 사회적 화두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달 27일 범부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했죠. 사실 이는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집 값 상승기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설사 경매를 진행했어도 이미 상승한 집값을 처분하면 은행빚(선순위)과 세입자 전세보증금(후순위) 모두를 충당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죠. 하지만 집값이 하락하고 경매 낙찰가율이 61%(인천 미추홀구 평균치)까지 떨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은행이 대출금을 먼저 회수해버리면서 세입자는 눈뜨고 전세보증금을 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버렸습니다. 세입자 1명당 평균 피해액이 약 8000만원 가량으로 추산된다고 하죠. 3명의 목숨까지 앗아갈 정도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렇다면 정부 대책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걸까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대책이 추가로 필요한걸까요?

정부 “집 값 3년 후 상승할테니 좀 버텨봐”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전세사기 대책의 핵심은 ‘나중에 집값 상승할 때까지 버텨라’입니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겐 2%대 저금리(대출한도 4억원)로 신규주택 혹은 지금 경매로 넘어가는 주택을 매매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엥간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4%대인 것을 감안하면, 30년 만기로 봤을 때 이자만 해도 꽤나 혜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30년 만기로 4억원을 빌린다고 했을 때, 금리 4.5%를 적용하면 30년 동안 납부하는 이자는 약 3.3억원에 달합니다. 반면 금리 2.5%를 적용할 경우 30년 동안 납부하는 이자는 1.7억원입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가구당 평균 피해액(0.8억원)보다 이자 혜택(1.6억원)이 더 좋습니다.

정부가 지난 4월 27일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 주택을 저리 대출을 통해 구매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진출처=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아울러 지금 당장 피해로 인해서 날리게 된 세입자의 전세보증금(평균 약 0.8억원)에 대해서도 최대한 만기를 길게해서 (약 10년) 목돈이 없는 피해자가 갚아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입니다. 또한 전세사기 피해자에겐 주택구입담보대출과 관련해 3년의 거치기간도 줍니다.

정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당장 목돈 갚으라고 압박 안할게. 3년 거치기간 줬으니깐 그때 아마 부동산 또 반등해서 오를거야. 지금 집 사두고 그때 차액봐서 이번에 손실봤던 0.8억원을 메꿔”

세입자 “그다지 실효성 없는 대책”
하지만 전세사기대책위측에서 대책발표 다음날 바로 실효성이 없다고 했죠. 대책위 주장은 아니지만 직접 제가 따져보니 실효성에 의문이 들긴 합니다.

금리 2%대 주택구입대출(버팀목) 혹은 3%대 특례보금자리론은 전세사기 피해자 상당수가 이미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청년 혹은 사회초년생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정부가 또 내놓은 LH 매입임대 수준의 낮은 전세가, 즉 저렴하게 오래동안 살 수 있게끔 해주겠다는 것도 크게 와닿진 않죠. 왜냐면 전세사기 피해자 상당수는 1억원 남짓의 빌라 오피스텔에 살았고, 월 10~30만원대의 이자를 통해 저렴하게 살았으니깐요. 아무리 정부가 지원해줘도 월 이자 10만원 가량 아끼는 정도의 수준인데, 8000만원 손실 보고 월 10만원 아껴주겠다고 하니 피해자 입장에선 복장이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세사기 관련 수유동 빌라촌 스케치 2023.4.25.[김유신기자]
그래서 일각에선 이번 정부 대책을 ‘부동산 부양책’으로 읽기도 합니다. 정부는 겉으로는 집값이 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규제와 정책자금을 대거 푸는 등 부동산 부양을 하는 모양새를 보여왔는데요. 이번 전세사기 대책에서도 저금리로 해줄테니 집 사라, 아니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라고 피해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세자금대출이라는 거대한 유동성 공급 사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전세자금대출 축소가 해답이라는게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전세자금대출로 인해서 전세가가 뻥튀기가 되고, 이 부분이 매매가 상승까지 이어지면서 집 값을 과도하게 상승시켰기 때문이죠. 부동산 상승장을 틈타서 갭투자꾼들이 많아지고 그것이 바로 전세사기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고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집 값 상승기땐 전혀 터지지 않았을 문제입니다. 하지만 집 값 하락기가 되면서 어김없이 역전세, 깡통전세, 그리고 전세사기가 등장하고 말았죠. 이를 조금이나마 방지하기 위해선 과도하게 부동산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는 전세자금대출을 순차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지난해 4월 보고서를 통해 △ 전세가율이 80% 이상인 주택은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제한하거나 △ 전세자금대출 원리금 상환 유도 △ 전세자금대출 DSR 산정에 포함 등이 필요하다고 정책 제언을 했죠.

전세자금대출이 저금리 상황서 보편화되면서 대출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 같은 전세자금대출 급등이 매매가를 밀려올리면서 부동산 상승장을 만들어냈지만, 고금리로 전환된 지난해부터는 각종 전세사기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사진출처 = KB 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물론 이렇게 부동산 시장에 유동성 공급이 줄게 되면서 전세가격이 떨어질겁니다. 이는 매매가 하락에도 영향을 주겠죠 (다만 월세는 오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죠. 다만 지금의 전세자금대출은 폭탄돌리기일 뿐입니다. 저출산으로 받아줄 인구가 점점 줄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2040년 이후에 수도권 외곽과 지방부터 빈 집 현상이 더욱 많아질 겁니다. 이번 전세사기 사태의 본질은 예견된 미래가 집값 하락기로 인해 빨리 찾아온 것뿐입니다. 전세자금대출이 무분별하게 나가는한 전세사기 사태는 계속 될겁니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정부 고위관료 대다수가 강남 등 좋은 지역에 살고 있고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결책이 명확한데도 전세자금대출을 줄이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상당수 관료, 그리고 우리사회 엘리트들이 ‘그래도 서울은 안떨어져’ ‘서울 중에 강남은 괜찮아’란 의식을 공유하고 있죠. 100년 후 역사가들은 인위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유동성을 지나치게 공급한 전세자금대출이 전세사기로 이어졌다고 적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은 땜질처방식 대책으로 보여집니다.

예비 세입자는 ‘안심전세앱’ 설치해야
정부가 도저히 전세자금대출을 줄이는 것을 못하겠거든 그나마 또 하나 할 수 있는게 있습니다. 바로 깡통전세 주택인지 확인해주고 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정부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겁니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는 안심전세앱을 출시했다.

HUG 안심전세앱을 캡쳐한 장면. 적정 전세가가 얼마인지를 알려준다. <사진 = 나현준 기자>
실제로 기자가 안심전세앱을 설치하고 서울 내 모 빌라를 검색해보니 해당 주택이 임대사업자 물건인지 여부 그리고 얼마나 선순위 대출이 있고 경매 낙찰 예상금액은 얼마인지 등을 상세히 볼 수 있었다. 계약하려는 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사전에 알 수 있기에 깡통전세 및 전세사기 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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