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존재 자체가 형용모순…정치 없는 1년

성한용 2023. 5. 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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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79
정치 모르는 검사 출신 대통령 태생적 한계
취임 1년 지지율 87년 이후 역대 최저 수준
‘총선 승리로 정권교체 완성’ 인식은 신기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4일 서울 용산구 용산미군기지 반환 부지에 조성된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행사 뒤 전망 언덕에 올라 기념 식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치에도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치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대화와 타협, 공존과 통합입니다. 대화와 타협, 공존과 통합은 정치의 본령입니다.

변하는 것은 정치인과 유권자, 제도와 문화입니다. 정치인과 유권자, 제도와 문화는 시대마다 나라마다 제각각입니다. 진화하기도 하고 퇴화하기도 합니다. 2023년 대한민국의 정치인과 유권자, 제도와 문화는 어디쯤 와 있을까요?

오는 5월 10일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에 취임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1년 성적표는 어떨까요?

낙제 점수입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 5일 발표한 대통령 직무 평가는 긍정 33%, 부정 57%였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일주일 전에 비해 좋아진 수치가 이 정도입니다.

역대 대통령 취임 1년 성적은 어땠을까요? 한국갤럽 같은 조사의 긍정 평가 수치만 보겠습니다. 노태우 45%, 김영삼 55%, 김대중 60%, 노무현 25%, 이명박 34%, 박근혜 57%, 문재인 78%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1년은 국회에서 탄핵을 추진하던 시기였습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의 1년 성적표는 1987년 대통령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합니다.

성적이 왜 이렇게 나쁠까요? 공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왜 못했을까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주로 야당 탓, 언론 탓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2021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사퇴한 직후 ‘윤석열 총장, 정치하지 마시라’는 칼럼을 쓴 일이 있습니다. 윤석열 총장이 대선주자로 나서면 안 된다고 조언하며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첫째, 정치와 국정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둘째, 여론조사의 높은 수치는 거품이기 때문에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틀렸습니다. 여론조사 수치는 거품이 아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주자 경선에서 승리했고,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저는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내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결국 국가가 불행해지고 국민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 취임 1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잘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역시 태생적 한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할 때 매우 특이한 대통령입니다.

윤 대통령 1년, 정치의 복원이 필요하다

첫째, 그는 국회의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 국회의원을 하지 않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그리고 과도기의 최규하 대통령뿐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치를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대통령은 가장 정치적인 자리입니다. 어느 공직자보다도 뛰어난 정치적 수완과 역량이 필요합니다. 정치를 모르는 대통령은 형용모순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존재 자체가 형용모순인 셈입니다.

둘째,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입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범죄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주 임무로 하는 공무원입니다. 범죄자를 추적해서 체포하고 재판에 회부해 유죄판결을 받아내야 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악당을 때려잡는 사람입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과 불굴의 투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입니다. 국회와 함께 국정의 양대 축입니다.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해야 합니다. 생각이 다른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대화하고 타협하고 설득하지 않는 대통령은 형용모순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존재 자체가 형용모순인 셈입니다.

어쨌든 ‘정치를 모르는 강직한 검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체성인 동시에 이미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국민의힘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를 꺾었고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뒤에는 바로 이러한 그의 정체성이 직무 수행의 치명적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유권자들은 지난 1년 동안 인내심을 갖고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봤습니다. 대선 직후 한국갤럽 직무 수행 평가를 보면 긍정 52%, 부정 37%였습니다.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긍정이 부정보다 높았습니다. 18~29세는 긍정 45%, 부정 41%였습니다. 30대는 긍정 54%, 부정 38%였습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출발이었습니다.

하지만 1년 뒤에는 긍정 33%, 부정 57%로 역전됐습니다. 모든 지역에서 부정이 긍정보다 더 높습니다. 18~29세는 긍정 13%, 부정 66%입니다. 30대는 긍정 26%, 부정 69%입니다. 2030 민심이 1년 만에 완전히 뒤집힌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한국갤럽은 부정 평가의 이유를 외교, 경제·민생·물가, 일본 관계의 순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긍정 평가의 이유도 첫 번째가 외교였습니다. 자유 응답 방식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지금까지 민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은 김건희 여사 비선 논란, 권성동 문자 메시지 노출, 이준석 전 대표 징계, 북미 순방 중 비속어 발언, 이태원 참사 부실 대처, 출근길 약식 회견 중단, <문화방송> 기자 대통령 전용기 탑승 거부, 전당대회 나경원·안철수 비판, 주69시간제 파문, 워싱턴포스트 ‘무릎’ 발언 등이었습니다.

모두 다 소통 및 정치 관련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정치인 출신 대통령이었으면 아예 처음부터 발생하지도 않았을 사건들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실패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정치 부재’라는 의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를 선거라는 좁은 의미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말과 행동이 내년 총선 승리에 맞춰져 있습니다. 올해 초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돼야 공약했던 정책을 차질없이 할 수 있다”며 “그러지 못하면 거의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착각입니다.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돼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을 쉽게 입법화할 수 없습니다. 국회법은 여당의 일방적 독주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총선에서 지면 거의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사실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법률안 제출권 및 재의 요구권, 예산편성권, 인사권을 가진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탄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총선 이후에도 대통령 탄핵에 필요한 국회의원 200명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총선에서 여당이 이기면 정권교체가 완성된다는 국민의힘 주장도, 총선에서 야당이 이기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는 야권 일부의 주장도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른바 ‘뇌피셜’에 불과한 것입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실패의 늪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정치의 회복입니다. 협상과 타협입니다. 공존과 통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살고 국민의힘도 살고, 이재명 대표도 살고 민주당도 사는 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한민국 정치가 낳은 쌍생아입니다. 두 사람은 영혼의 동반자인지도 모릅니다. 상대를 죽이려 들면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워집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이 <서울신문>에 ‘호모 폴리티쿠스’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최근 ‘누가 윤석열 시대 열었나’라는 글에서 “경쟁하면서도 공존했던 과거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 이후 정치가 전·현직 대통령들의 싸움으로 전락했다”며 “윤석열의 집권은 정치 없는 민주주의가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집단에 야심을 가질 기회를 준 결과”라고 짚었습니다. 정확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치 없는 민주주의의 책임을 정치인들에게만 지워서는 곤란합니다.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3김이 돌아와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다른 정치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는 윤석열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대통령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었다면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을까요? 의문입니다.

정치 복원의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정치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유권자들도 달라져야 합니다. 대화하고 타협해야 합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고 통합해야 합니다.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선동가들에게 휘둘리면 안 됩니다. 총선에서 승리하면 천국이 도래하고, 패배하면 지옥에 빠진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사기꾼들입니다.

대한민국 정치는 하루아침에 망가진 것이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회복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반성과 성찰과 인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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