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된 반도체 봤어?”…‘친환경’ 목숨 건 삼성, 나무에 답 있을까? [세모금]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최근 반도체 업계에 소소하게 화제가 된 뉴스가 있습니다.
바로 나무로 된 반도체 칩이 나왔다는 것이죠. 즉, 전기가 통하지 않는 나무에 전기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 결과가 세상에 최초로 공개됐다는 것입니다.
좀 정확히 설명해보면, 반도체 칩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품 중에, 전기가 통하도록 스위치 역할을 하는 ‘트랜지스터’라는 조립물이 있는데요. 흔히 기사를 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TSMC에서 제작한다고 하는 반도체 칩이 있잖아요. 이 반도체 칩에는 ‘트랜지스터’라는 부품이 꼭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요. 얼마나 많이 들어가냐고요?
미국의 유명한 PC용 중앙처리장치(CPU) 기업 인텔이 2017년 10나노미터 공정 세부 도입 계획을 발표하는 행사에서 자신들은 1㎟당 트랜지스터 1억800만개를 집어넣는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가로와 세로 각각 1㎜인 사각형 크기에 1억800만개의 트랜지스터가 담긴다면, 도대체 트랜지스터 1개는 얼마나 작은 것일까요? 어쨌든 이 트랜지스터가 칩 하나에 매우 빼곡하게 들어갈수록 해당 반도체 칩 성능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트랜지스터를 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럼 원래는 무엇으로 만들었느냐? 원래 트랜지스터를 규소(모래의 구성 성분)나 게르마늄으로 만듭니다. 나무로는 트랜지스터를 만들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스웨덴 린세핑대 연구팀은 지난달 24일 발사 나무를 이용해 전자회로에서 전류와 전압 신호를 증폭하거나 전기 신호의 스위치 역할을 하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를 통해 발표합니다. 스웨덴 과학자들이 살아있는 나무와 식물에 전기를 전달하는 능력을 부여해 천연 전자센서와 같은 전기장치를 개발하는 방법을 발표했다는 내용인데요. 학계에 문의해보니 인정받는 과학 저널 중 한 곳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연구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죠.
대부분 아시는 바와 같이 나무는 평상시 건조한 상태에서는 전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젖거나 고압 전기와 닿았을 때 전기가 통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만들어진 트랜지스터의 크기는 어떻게 될까요? 새로 개발된 나무 트랜지스터는 가로와 세로 각각 3㎝로 실제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칩에 넣는 트랜지스터와 비교하면 매우 큰 편이라고 합니다.
그럼 성능은 어떨까요? 현재 실제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트랜지스터는 1초에 수십억번 신호가 오가는 기가Hz(헤르츠) 수준의 속도를 자랑하는데요. 스웨덴 연구원이 설계하고 테스트 한 트랜지스터는 1초에 1번 정도의 전기 신호가 오가는, 1Hz 미만의 성능을 보여주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연구진은 나무와 식물 내 유기결합 물질인 리그닌을 제거하고 나무에서 물을 운반하는 루미나라고 불리는 관의 네트워크에 공간을 확보한 뒤 전도성 화합물을 포함한 액체 용액에 목재를 담가 스며들게 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렇게 만든 목재로 트랜지스터 구조를 짰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런 성능도 잘 안 나오는 트랜지스터를 왜 만드는 것일까요? 과학자들은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에 대한 식물의 저항력을 모니터링하는 연구나 임업 분야에서 이 트랜지스터가 활용가치가 높다고 보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같이 환경을 생각해 만든 제품이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게 아닙니다. 2000년 김재환 인하대 교수(현재 명예교수)는 종이에 전기를 흘리면 파르르 떠는 운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국제 학계에 처음으로 정식 보고해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2009년 종이의 성분인 셀룰로오스(나무 섬유소)와 탄소나노튜브를 섞으면 반도체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실제로 ‘종이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작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018년에는 주병권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 연구진이 이 셀룰로오스를 기반으로 생분해성 ‘유기 광트랜지스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기존 유기 광트랜지스터는 폐기물로 처리돼 환경오염을 일으킬 염려가 있는 만큼, 자연 분해될 수 있는 소자 개발의 필요성이 부각됐는데요.
이 연구를 주도해 국제적인 학술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주 교수는 헤럴드경제와 최근 통화에서 이같은 트랜지스터를 만든 이유를 “무엇보다 환경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환경 관점에서 보면 기존 트랜지스터는 폐기물이 된다고 생각해, 흙으로 돌아갈수 있는 분해가능한 트랜지스터를 연구하다보니 이같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이라며 “이 뿐만 아니라 웨어러블 전자기기 시장이 확장되는 트렌드에 맞춰, 트랜지스터가 휘어져도 깨지지 않고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들기 위해 나무의 성분을 활용해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정말 ‘친환경 칩’ 개발을 위해 이같이 연구를 한 것이죠.
당장 나무 트랜지스터가 상용화되긴 어렵지만, 반도체 회사들이 이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질만 하긴 합니다. 실제로 최근 ‘친환경’이 중요한 기업 경영 문제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을 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청정 에너지, 지속 가능성, 탄소 발자국 감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9월 삼성전자는 7조원 규모의 ‘신환경경영전략’을 발표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을 밝힌 바 있습니다. ▷초전력 반도체·제품 개발 ▷공정가스 처리 신기술 개발 ▷정부·동종업계와의 협력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반도체 칩이 들어가는 제품들의 성능이 높아질 수록 그만큼 전력 사용과 탄소 배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문제 해결이 정말 당면 과제가 된 것이죠.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 1위인 대만 TSMC는 지난 2020년 덴마크 에너지 기업 오스테드로부터 1기가와트(GW)에 육박하는 해상풍력 단지 전력을 통째로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이전까지 아마존·구글 등 미국 IT 대기업들의 주무대였던 대규모 시장에 TSMC가 동참한 것인데요. 특히 단일 전력구매계약(PPA)으로 역대 최대였던 전력 구매량을 선보였죠. TSMC의 핵심 고객사인 애플이 늦어도 2030년엔 온실가스 순배출량이 ‘제로’인 기업과만 거래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영향도 큽니다. TSMC도 요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기조에서 트랜지스터의 소재가 바뀌거나 개량되는 일은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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