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대해부] 실리콘·구리, 핵심 원료로 변신… 증설 경쟁 한창

권오은 기자 2023. 5.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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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반도체 신화를 이을 산업으로 2차전지가 꼽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중국 제외)에서 국내 2차전지 빅3 업체의 점유율은 53%로 절반을 넘었다. K배터리의 위상은 배터리셀을 넘어 소재와 장비 등 2차전지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2030년 전기차 생산이 5400만대로 폭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2차전지를 놓고 ‘배터리 패권경쟁’을 펼치는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음극재는 2차전지 재료비 원가의 약 14%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 중 하나로 양극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저장·방출해 전기를 발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2차전지의 저장 용량과 충전 시간을 좌우한다. 이런 음극재의 활물질(전기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활성 물질)로 흑연이 많이 쓰이고 있다. 흑연은 규칙적인 층상 구조를 갖고 있어 리튬이온이 흑연의 층 사이로 들어와 저장됐다가 방출되기 유리하다.

중국이 2차전지 소재 중 음극재에서 강세인 것도 최대 흑연 생산국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흑연 채굴량 130만톤(t) 가운데 중국이 65.4%(85만t)를 차지했다. 한국은 1.3%(1만7000t)에 그쳤다. 지난해 중국의 음극재 점유율은 84%로 양극재 점유율(60%)을 20%포인트(p) 이상 웃돌았다.

포스코퓨처엠dl 세종공장에서 생산한 천연흑연 음극재. /포스코퓨처엠 제공.

◇ 천연흑연 → 인조흑연 → 실리콘음극재 고도화

음극재 원자재로 쓰이는 흑연은 크게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으로 나뉜다. 천연흑연이 구조적 안정성이 떨어져 충·방전 과정에서 팽창 문제가 불거지면서 인조흑연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인조흑연은 3000℃ 이상의 고온 열처리를 통해 만들어져 천연흑연보다 구조가 더 균일해 안정성이 높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흑연 음극재를 양산하는 포스코퓨처엠도 천연흑연 음극재에 이어 인조흑연 음극재 사업을 키우고 있다. 포항에 연산 8000t 규모의 인조흑연 음극재 1단계 공장을 운영 중이고, 올해 2단계 공장이 첫 삽을 떴다. 2024년 하반기에 인조흑연 음극재 공장 2단계 공장이 완성되면 연간 1만8000t 규모의 생산체제를 갖추게 된다. 전기차 약 47만 대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차세대 음극재 원자재로는 실리콘이 꼽힌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분석 자료에 따르면 실리콘 음극재의 용량은 그램(g)당 약 1400mAh(1mAh = 1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류량)로 천연흑연(360mAh)이나 인조흑연(350mAh)의 4배 수준이다. 그만큼 전기차 주행거리가 늘어나고 급속 충전에도 유리하다. 지난해 기준 4억달러(약 5300억원) 수준인 실리콘 음극재 수요가 2030년 54억달러(약 7조2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실리콘 음극재 가격이 흑연음극재보다 10배가량 비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실리콘 음극재가 충전 과정에서 흑연 음극재보다 더 많이 팽창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래픽=손민균

◇ 실리콘 음극재 생산능력 확장 중

2차전지용 실리콘은 크게 탄화규소계(Si-C)와 산화물계(SiOx)로 나뉜다. 탄화규소계 실리콘 음극재는 가격과 충·방전 효율에 강점이 있고, 산화물계 실리콘 음극재는 초기 용량이나 유지율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SK머티리얼즈가 미국 배터리 소재기업 그룹14테크놀로지스와 합작사(SK머티리얼즈그룹14)를 설립해 경북 상주시의 공장에서 올해 3분기부터 탄화규소계 실리콘 음극재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생산 능력도 올해 연산 2000t에서 2025년 1만t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SKC도 탄화규소계 실리콘 음극재 기술을 보유한 영국 넥시온(Nexeon)에 950억원을 투자해 지분을 확보하고,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

한솔케미칼 역시 탄화규소계 실리콘 음극재 생산에 나섰다. 올해 1분기 전북 익산시에 연산 750t 규모의 실리콘 음극재 공장을 짓고 가동에 들어갔다.

산화물계 실리콘 음극재를 생산하는 대주전자재료는 생산능력을 기존 연간 2000t 수준에서 2024년 1만t, 2025년 2만t까지 늘리기 위해 공장을 신·증설하고 있다.

포스코그룹(POSCO홀딩스)은 탄화규소계와 산화물계 실리콘 음극재 사업을 동시에 추진한다. 포스코실리콘솔루션은 591억원을 투자해 포항에 산화물계 실리콘 음극재 450t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기로 했다. 4단계에 걸쳐 추가 투자를 진행해 2030년까지 2만5000t 규모의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포스코퓨처엠은 포항에 탄화규소계 실리콘 음극재를 연간 50t을 생산할 수 있는 시험 설비를 세우는 중이다.

LG화학은 100% 실리콘으로 구성된 음극재를 뜻하는 ‘퓨어 실리콘(Pure Silicon)’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실리콘이 5% 들어간 음극재가 쓰이는 점을 고려하면 2차전지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을 전망이다.

그래픽=정서희

◇ 구리, 전지박 핵심 원료로 변신

동전부터 전선, 총알까지 다양한 용도로 쓰이던 구리도 2차전지용 핵심 광물로 떠올랐다. 구리를 이용해 2차전지 음극재를 감싸는 전지박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전지박은 전기 화학반응에서 발생한 전자를 모으거나 공급하는 집전체 역할을 한다. 2차전지 성능을 위해 가벼우면서 높은 균일도를 가져야 한다. 이에 2차전지 소재 기업은 전도성이 높고 무른 성질을 지닌 구리를 이용해 전지박(동박)을 만들고 있다.

2차전지 생산량 확대에 발맞춰 동박 생산 능력도 경쟁적으로 키우고 있다. SKC의 자회사 SK넥실리스는 올해 하반기부터 말레이시아에 연산 5만t 규모의 동박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또 2024년에 연산 5만t 규모로 폴란드에 동박 공장도 준공한다. SKC는 연간 5만2000t의 동박을 생산할 수 있는 전북 정읍공장을 포함해 2025년까지 연산 25만t 생산 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다.

동박은 전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배터리에 약 30㎏이 들어간다. 5만2000t은 전기차 150만~2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현재 국내 공장과 말레이시아 공장을 통해 연간 6만t의 동박을 생산할 수 있는데, 2027년까지 말레이시아, 스페인, 미국 거점을 통해 생산능력을 23만t으로 키울 계획이다. 솔루스첨단소재는 2026년까지 유럽과 캐나다에 연산 11만8000t의 동박 생산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고려아연의 자회사 케이잼(KZAM)은 현재 1만3000t 수준인 동박 생산능력을 2027년까지 6만t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고려아연은 동박 생산을 위한 핵심 설비인 티타늄 드럼을 12만t 물량까지 확보해 추가 증산을 위한 사전 작업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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