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경미' 시대, 한중관계는 어디로 가야 하나? [차이나는 중국]

김재현 전문위원 2023. 5. 7. 06: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차이 나는 중국을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3.4.28 /로이터=뉴스1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나요?"

2000년 초 필자가 면접을 볼 때, 국내 자동차 대기업의 임원이 던진 질문이다. 당시 중국은 1999년 11월 미국과의 WTO 가입 협상을 타결한 후 WTO 정식 가입을 준비하고 있던 차였다.

그때 필자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국의 WTO 가입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중국은 2001년 WTO에 정식 가입한 후 국제 분업구조에 본격적으로 편입했으며 지난 20여년간 한국이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이 완제품을 전 세계에 수출하는 구조에서 한국도 막대한 수혜를 누렸다.

그동안 순탄치 않은 환경에서도 양국관계를 지탱해올 수 있었던 건 한국이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대외정책 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미경미(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 행보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완전히 굳어지는 분위기다.
대중 무역흑자 시대는 끝나는가?
올해 두 가지 측면에서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안미경중에서 안미경미로 본격 전환됨과 동시에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지속된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 기조가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3년 동안(2000~2022년)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 합계는 6873억달러로 대미 무역흑자 합계(3372억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중 무역흑자가 증가하면서 한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는 2013년 사상 최고치인 628억달러를 기록한 후 하락하기 시작했다.

2016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등 여파로 큰 폭 감소했던 대중 무역흑자는 2018년 556억달러로 반등했지만, 이후 다시 하락하다가 지난해에는 12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올해는 1~3월 누적 대중 무역적자만 78억4000만달러에 달한다. 이대로라면 대중 무역수지는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적자 규모도 200억~30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D램 등 반도체 가격 급락으로 대중 수출은 줄어든 반면, 중국에서 주로 수입하는 배터리 양극재 소재인 수산화리튬 수입은 급증해 대중 무역구조가 개선될 기미가 안보이는 게 문제다.

이와 달리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019년 115억달러에서 2022년 280억달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1~3월 누적 대미 무역흑자도 72억달러에 달하는 등 작년 수준은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미국 위주로 바뀌는 것(①)과 비슷한 시기에 대중·대미 무역수지가 반대방향으로 변화한 것(②)은 재밌는 현상이다. ① 때문에 ②라는 결과가 발생한 것인지, ② 때문에 ①이 발생했는지 단언하긴 어렵지만, 선후관계와 상관없이 ①과 ②가 연관이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2001년 중국의 WTO 가입과 더불어 20여년간 지속되어온 대중 무역흑자 구조가 작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대외정책 기조의 안미경미 전환과 더불어 대중 무역적자 구조가 고착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항미원조'와 장진호 전투의 의미
6·25 전쟁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장진호' 포스터/사진=중국 인터넷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7일 미 의회 연설에서 "미 해병대 1사단은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12만 명의 인해 전술을 돌파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뒀다. 장진호 전투에서만 미군 4500명이 전사했고, 6·25 전쟁에서 미군 약 3만7000명이 전사했다"며 한미 혈맹관계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전쟁의 위대한 승리는 중국과 세계에 중대하고 심원한 의의를 갖고 있다"며 즉각 윤 대통령의 발언에 불만을 표시했다.

사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2017년 6월 미국을 공식 방문하면서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67년 전 미군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으로 첫 공식 일정을 시작한 바 있다. 그때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중국이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걸까?

이유는 2018년을 기점으로 미중 경쟁관계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6·25전쟁을 일컫는 항미원조라는 명칭부터 살펴보자.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을 대만으로 쫓아내고 1949년 10월 신중국을 세웠으나 찢어지게 가난한 신생국이었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대만해협을 건너가 대만을 통일할 계획을 세웠으나 6·25전쟁 발발 후 미국이 제7함대를 대만해협으로 급파하면서 대만 수복의 꿈을 접게 된다. 이때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인 미국은 전 세계 GDP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초강대국이었다.

중국에 있어서 항미원조 전쟁은 신생국인 중국이 당시 초강대국인 미국에 밀리지 않고 싸움으로써 국가로서 지위를 공공히 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론 한국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다.

1999년 미국과의 WTO 가입협상 타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중국에게 미국의 협조는 필수였기에 그동안 중국은 항미원조라는 키워드를 엄격히 관리해왔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을 빠르게 추격했다. 2003년 미국의 14.5%에 불과했던 중국 GDP(국내총생산)는 2018년 67.7%까지 증가했다.

중국의 거침없는 추격에 미국이 위협을 느꼈으리라는 건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결국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을 본격화했고 갈등이 표면화되자 중국은 항미원조를 가둔 빗장을 풀어헤쳤다.

중국에선 장진호가 항미원조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부상했는데, 2021년 개봉한 영화 '장진호'는 박스오피스 매출 56억9400만위안(약 1조820억원)으로 역대 중국 영화 흥행 1위를 차지했다. 무려 1억명이 넘는 중국인이 영화를 관람했다. '장진호'는 한국전쟁을 다뤘지만, 국군(한국군)과 북한군은 나오지 않으며 중공군과 미군의 대결이 주요 내용이다. 역시 '항미'가 키워드다.

한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안미경미로 전환했다고 해서 한중관계를 완전히 내팽겨칠 수는 없다. 특히 대중 무역적자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윤석열 정부가 미중 경쟁 시대에 한중관계를 슬기롭게 관리하기를 기대해본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