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적자폭 석달째 축소에 커지는 흑자 전환 기대감… “보호주의 확산은 악재”

세종=전준범 기자 2023. 5. 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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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적자는 14개월째 이어지고 있지만
적자폭은 석달째 줄어 “흑자 전환 기대”
반도체·중국 등 세계 경제 회복이 관건
문제는 날로 심해지는 ‘보호주의 기조’
“자원 비효율 배분…세계 경제에 악재”

올해 1월 125억달러를 웃돌던 우리나라 무역수지 적자가 3개월 연속 개선 흐름을 보이면서 지난달 26억달러 수준까지 줄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르면 5~6월 중 월간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만약 5월 중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 지난해 3월부터 지속해온 마이너스(-) 행진이 15개월 만에 끝나는 것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 관련 실적이 살아나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결국 ‘세계 경제 회복’과 같은 말인데, 변수는 글로벌 경기 개선을 방해하는 ‘자국 우선주의’ 기조 확산이다. 전문가들은 보호주의 심화에 따른 세계 교역 단절이 세계 경제 성장을 억누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1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나, 적자 폭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꾸준히 줄었다. 5월 1일 부산항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있다. / 연합뉴스

◇ 무역적자 1월 123억불서 4월 26억불로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액은 496억2000만달러, 수입액은 522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로써 무역수지는 작년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14개월째 적자 흐름을 이어갔다. 이는 1995년 1월~1997년 5월(17개월) 이후 가장 긴 기간의 연속 무역 적자다. 2023년 들어 무역 적자 누적치는 250억6000만달러로, 작년 연간 적자 누적치(477억달러)의 절반을 불과 넉 달 만에 넘어섰다.

다만 다행스러운 부분은 무역 적자 폭이 3개월 연속 개선 흐름을 나타냈다는 사실이다. 올해 첫 달에 125억1000만달러이던 무역 적자 규모는 2월 52억7000만달러, 3월 46억2000만달러, 4월 26억2000만달러로 석 달째 그 폭을 줄였다. 수출 부진이 여전한 가운데서도 통상 당국의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이달 1일 “앞으로 적자 추세가 상당히 완화할 것”이라고 했다.

자본시장에서도 한국의 수출 경기가 저점을 통과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 2일 낸 보고서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년 넘게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며 “수출 정체기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수입이 줄어들면서 이르면 5~6월 중에는 무역수지가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대중 수출 실적 개선은 무역수지 흑자 전환을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다. 사진은 중국 동부 저장성의 한 회사에서 기술자가 제품을 살피는 모습. / AFP 연합뉴스

◇ 흑자 전환 조건 ‘반도체 업황·대중 수출 회복’

무역수지 흑자 전환을 위한 수입 쪽 전제 조건이 에너지 수입 부담 완화라면, 수출 쪽에서는 반도체 업황과 대중(對中) 수출 실적 개선이 꼽힌다. 특히 반도체의 부활 여부가 중요하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477억달러에 달하는 연간 무역 적자를 냈지만, 동시에 수출액은 6839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수출이 버텨준 덕에 에너지 수입 급증 쓰나미 속에서도 무역 적자를 500억달러 밑으로 억누를 수 있었다는 의미다. 작년에 반도체 수출은 1292억2700만달러로 전체 수출의 18.9%를 책임졌다.

하지만 올해 4월 반도체 수출액은 63억8000만달러로,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9%로 쪼그라들었다. 1년 전인 2022년 4월의 반도체 수출액이 131억2000만달러, 비중이 20.7%에 달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수출 선봉장’의 역할이 크게 약해진 셈이다. 현재 반도체의 수출 비중(4월 기준)은 자동차(61억6000만달러·12.4%)와 비슷하다. 반도체 수출은 작년 8월부터 9개월째 마이너스 흐름을 지속 중이다.

반도체 수출 위축은 대중 수출 감소와도 연결된다. 중국은 한국의 주요 교역국인 동시에 최대 반도체 수출 시장이다. 한국산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40.3%에 달한다. 반도체 업황이 흔들리면서 지난달 대중 수출도 26.5% 감소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무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대중 수출액은 382억달러(약 51조2000억원)로 작년 1분기보다 28.2% 줄었다. 감소 폭은 중국이 주요 국가·지역으로 분류하는 23곳 중 가장 컸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가 5월 1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밀컨연구소 글로벌 콘퍼런스 2023′ 대담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각국의 보호주의가 성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지적했다. / AFP 연합뉴스

◇ “각국 보호주의가 세계 경제에 악영향”

전문가들은 결국 이 모든 게 글로벌 경기 회복 여부와 연관된 문제라고 말한다.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업황 개선은 반도체 구매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한국 데스크를 맡고 있는 요띤 진자락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 수입이 한국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이들 국가의 약화된 수요가 올해 한국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여러 기관에서 “하반기 이후 글로벌 경제가 회복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만 미·중 무역 갈등 이후 확산 중인 보호주의 기조는 세계 경제의 빠른 회복을 방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이달 1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밀컨연구소 글로벌 콘퍼런스 2023′ 대담에 참석해 “각국의 보호주의가 성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안타깝게도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2.8%로 둔화할 뿐 아니라 내년에는 3%가량 회복에 그칠 것”이라며 “향후 5년간 3%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 IMF는 자국 우선주의에 따른 세계 교역 단절 현상이 심해지면 글로벌 경제 규모가 장기적으로 2%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지난달 공개한 ‘주요국 자국 우선주의 산업정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의 핵심원자재법(CRMA) 등을 대표적인 자국 우선주의 산업 정책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이런 정책이 자국의 생산과 고용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경학적 분절화(geo-economic fragmentation)가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해 세계 경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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