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입국 송금 시스템 '하왈라'의 모든 것[PADO]
[편집자주] '하왈라'는 아직까지 생경한 어휘이지만 이미 한국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천 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금융 시스템입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불법 송금'의 이미지로 거론돼 왔지만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걸고 유럽 이주를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선호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는 한국도 하왈라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합니다. 그리스의 탐사보도 전문 비영리단체 '솔로몬'의 보도를 요약 소개합니다.
자니아르는 자신이 태어난 이라크 북부의 주르칸을 떠나 새로운 삶을 꿈꿨다. 자니아르의 가족은 그 꿈을 위해 1만1000유로(약 1600만 원)을 치렀다. 아버지는 땅을 팔았다. 결국 자니아르는 자신의 목숨까지 대가로 치러야 했다.
현지 이민 관련 단체에 따르면 2020~2021년 사이에만 이라크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5만6000명 이상이 지정학적 불안과 경제적 기회의 부족으로 이주를 택했다고 한다. 20세의 자니아르도 그 중 하나였다.
"자니아르는 학교를 중퇴했어요." 자니아르의 아버지 무스타파 미나 나비는 주르칸에 위치한 자신의 시멘트 집 바깥에 있는 정원에서 장미를 가꾸면서 회상했다.
"학교를 졸업한 애들도 직업을 못 구했다고 하더군요. 직업이 없으면 어떻게 정착해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겠습니까?"
자니아르는 영국으로 건너가 바버샵을 차리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2021년 11월말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차디찬 영국 해협에서 끝을 맞았다.
자니아르는 영국 이주를 위해 프랑스 북부에서 거룻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 영국 남부로 향하려다 배가 가라앉자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20여 명 가운데 하나였다.
유럽과 영국으로 밀입국하기란 어렵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비용도 크게 든다.
페리를 타고 터키의 해안에서 그리스의 섬으로 이동하는 데는 20유로(약 3만 원)가 든다. 작고 비좁은 고무보트를 타고 그리스 해안경비대에게 적발돼 쫓겨날 위험을 감수하고 밀입국하는 데는 1000~3000유로(약 150~440만 원)가 든다.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데는 어느 공항을 택하더라도 300유로(약 44만 원)을 넘지 않는다. 터키에서 그리스를 거쳐 이탈리아의 해변으로 밀입국하는 루트는 최대 1만 유로(약 1500만 원)가 든다. 사람이 꽉 찬 배가 조난을 당해 사망한 사람은 2023년에만 최소 86명이다.
비자를 갖고 있으면 배로 영국 해협을 건너는 데 35유로(약 5만 원)가 든다. 망명신청자들이 영국 해협을 건너는 데는 최대 3000유로(약 440만 원)가 든다. 여기에 익사하거나 저체온증으로 죽을 위험이 더해진다.
합법적인 이주 루트의 부재는 범죄 네트워크에 사업의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하왈라'를 통해 움직이는 비공식 은행 시스템의 역할을 증대시켰다. 하왈라란 개인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송금 시스템으로 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본 기사는 기자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작년동안 실시한 탐사의 결과로, 보다 엄격해지고 있는 이민 정책으로 이민자들이 비양심적인 밀입국업자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으며 하왈라가 사기를 당할 위험을 줄여주는 유일한 방법임을 보여준다.
본 팀은 이라크,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영국 현지는 물론이고 밀입국업자들이 유럽 이주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플랫폼인 텔레그램에서도 비밀리에 탐사를 실시했다.
취재 과정에서 본 팀은 밀입국업자, 하왈라 브로커, 하왈라 전문가, 이주를 시도 중인 사람들, 2021년 영국 해협에서 익사한 희생자 유가족, 여러 국가의 보안 전문가, 사법 전문가를 비롯, 50명이 넘는 사람들과 접촉했다.
사람들은 큰 액수의 금액(미국 달러, 이라크 디나르, 시리아 파운드)을 소리높여 외친다. 가장 높은 값을 부른 이에게 환전을 하는 것이다. 돈은 끊임없이 손바꿈을 한다.
우편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바자르 곳곳에 수십 군데가 넘는다. 어떤 곳은 이란과 거래하고 다른 곳은 오직 독일과 프랑스에만 돈을 보낸다. 또 어떤 곳은 유럽 전역에 파트너를 두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든 돈을 보낼 수 있다고 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들 업체 상당수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국제 은행 송금 대신 하왈라 시스템을 쓴다.
취재 과정에서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에 따르면 하왈라 브로커들은 이런 업무를 전업으로 하거나 부업으로 할 수 있다 한다.
터키에서 하왈라는 환전업소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에서는 작은 슈퍼나 휴대전화 판매점 주인이 하왈라 브로커인 경우도 있다. 벨기에는 세 경우 모두 해당이 된다.
- A국가에 사는 누군가가 송금을 원한다면 하왈라 브로커를 찾는다. 보통 자신의 고향에서 찾거나 (다른 지역에 있는 경우) 국적이 같거나 동향 출신인 사람이다. 그리고 브로커에게 현금을 맡긴다.
- 하왈라 브로커 A는 B국가의 브로커에게 연락해 양측이 협의한 때에 수신자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할 것을 요청한다.
- 오직 송금에 연관된 사람들만 알고 있으며 A국가에서 합의한 패스워드를 사용해 올바른 수신자가 맞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두 브로커 사이에 실제로 돈이 이동하진 않는다. 대신 수신자 측 하왈라 브로커는 해당 금액을 외상으로 브로커 A에게 달아놓는다.
- 나중에 다른 고객이 B국가에서 A국가로 송금을 요청하면 기존의 외상에서 감액한다.
하왈라 브로커의 사무실은 책상, 의자, 휴대전화, 지폐 계수기, 금고 정도로 단출한 경우도 있다. 노트가 있으면 외상 현황을 관리하기가 더 편하다.
스위프트나 블록체인처럼 거래를 기록하는 시스템은 없다. 하왈라 브로커가 영수증을 주는 것도 아니다.
하왈라는 주로 신뢰에 기반한다는 게 하왈라를 연구한 괴즈데 규란 조지타운대 부교수의 설명이다. "각기 다른 신뢰 관계를 함께 엮어서 하왈라 브로커들은 상호 간 의무를 보장하고 여러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신뢰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밀입국의 경우에는 이점이 하나 더 추가된다. 밀입국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하왈라 브로커는 오직 사람들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한 후에만 예정된 금액을 밀입국업자에게 지불한다.
자니아르의 아버지 무스타파는 하왈라 브로커가 밀입국업자에게 사기를 쳐서 자기 자신의 명성을 갉아먹진 않을 것이라 한다. "우린 옛날 사람들이에요. 만약 그가 그런 짓을 하면 아무도 그와 거래를 하지 않을 겁니다."
자니아르가 사망하자, 하왈라 브로커는 밀입국업자에게 돈을 지불하는 대신 이를 지니아르의 가족에게 돌려줬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데 대한 작은 보상이었다.
오늘날 하왈라를 통한 송금은 특히 중동과 남아시아에서 인기가 많다. 많은 이민자 커뮤니티가 고국이 돈을 보내는 방법으로 하왈라를 사용한다. 특히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에서 그렇다.
웨스턴유니언이나 머니그램 같은 업체를 통하면 수수료가 15%까지도 나오지만 하왈라 브로커는 보통 2~10% 정도를 받는다. 때때로 심지어 수수료가 0%인 경우도 있다고 아르빌의 한 브로커는 말한다. 요청한 송금이 거래가 많이 이뤄지지 않는 곳에 걸린 외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에 그렇다.
이주 루트에 대한 대금 지급 방식으로서도 하왈라는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유엔난민기구, 유로폴, 유럽연합 국경기구 프론텍스, 그리고 전문가 보고서를 통해 추산한 바로는 한 해 밀입국 대금으로 3~7억 유로(약 4400억~1조 원)가 거래된다.
소위 '난민 위기'의 절정으로 기록됐던 2015년에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럽에 다다랐다. 유로폴은 이들 중 절반이 이주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나머지는 하왈라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으로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카드가 현금을 대체하고 있듯, 밀입국업자에게 대금을 직접 지급하는 대신 중개인을 사용하는 방식(많은 경우 하왈라를 통한다)은 최근 더 중요해졌다고 취재에 응한 다양한 소식통들은 말했다.
유럽 이주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하왈라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밀입국업자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범죄자 또는 국경경비대에게 약탈 당하는 걸 피할 수 있는 예방조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요즘엔 큰 돈을 직접 갖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요."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에 위치한 마을 라냐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이민자와 밀입국업자를 연결해주는 중개인의 설명이다. "일종의 서비스죠… 최소한 사람들이 사기당하지 않게 해주는 데는 최고의 방식이고요."
그 자신도 2005년 밀입국을 한 적이 있다. 덴마크에 도착해 몇 년을 지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수입이 짭짤한 밀입국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밀입국 중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방해가 늘어나면서 하왈라 브로커가 제공하는 '보험'으로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해졌다. 국경을 넘기가 더 힘들어지자 브로커들은 이민자가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대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게 되고, 이것이 매우 중요한 안전장치가 된다.
브로커 대부분은 이주를 시도하는 이들과 같은 공동체 소속이라고 규란 교수는 설명한다. "고객들은 보통 같은 국적의 브로커를 찾죠. 동향 출신이면 더 좋고요. 다른 나라 브로커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깊은 불신을 갖고 있어요."
때때로 하왈라는 '그림자 은행 시스템'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규란 교수에 따르면 이는 정부와 사법당국이 하왈라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정부가 등록되지 않은 개인이 송금 행위를 하는 걸 우려하는 것은 오늘날 정부의 보안 감시 패러다임에 부합하지 않고 이렇게 추적할 수 없는 거래 금액이 상당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규란 교수의 말이다.
"하지만 많은 맥락에서 하왈라는 사람들이 아는 유일한 시스템이에요. 그 외에는 돈을 지불하거나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 없거든요."
텔레그램 그룹에서는 밀입국 서비스의 가격, 지불 방법, 추가 정보를 문의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제공한다. 게시된 메시지는 보통 며칠 후에 삭제된다.
그룹 관리자들은 여러 차례 "암호"나 "해독"에 대해 언급했다. 이주 루트 중 주요 지점에 도착하면 하왈라 브로커에게 돈을 받기 위해 전달하는 패스워드를 말하는 것이다. 한 밀입국업자는 이렇게 메시지를 올렸다. "불가리아를 거쳐 세르비아로 가는 길 있음. 돈 내는 곳까지 도보 5시간 (...) 소피아에서 지문채취할 경우 해독 암호 XXXX."
여기 밀입국업자들은 특정 하왈라 브로커를 추천하는데 대부분 터키에 있다. 이주 희망자는 여기에 밀입국 대금을 맡기면 된다. 그러나 한 업자는 어느 하왈라 브로커를 쓸지는 이민자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한 업자는 신분을 숨기고 접근한 본 팀의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밀입국 대금을 맡길 곳의 전화번호와 이스탄불 주소를 제공했다. 악사라이 지역의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 있는 사무실이었다.
사무실 직원은 주소와 밀입국업자의 이름을 확인해줬으며 자신들이 송금 업무에 익숙하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가 방문하자 더 말하기를 거부했다.
1984년 이라크에서 태어난 쿠르드인 알라 카심 라히마('아부 알 아울'로 불린다)는 이를 잘 알고 있다.
네덜란드의 난민 수용소에서 살던 시절, 아부 알 아울은 암시장에서 먹을 것을 팔곤 했다. 나중에 그는 이탈리아로 이주해 밀입국업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저 자신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발칸 반도나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 독일 등지로 보내줄 수 있도록 조율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이탈리아의 감옥에 갇혀, 사람들을 이탈리아 남부에서 유럽 다른 곳으로 밀입국시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수사 당국은 그의 돈을 압수하지 못했다.
"이민자 한 명당 500~600유로(약 70~90만 원)를 불렀죠. 대금은 터키에 있는 브로커가 맡아두고 있고요. 지금도 그래요." 그가 재판을 받기 전인 2022년 11월에 한 말이다. 그는 터키에 보관된 자신의 돈이 약 30만 유로(약 4억4000만 원) 정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네덜란드에도 은행 계좌를 갖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28만 유로 가까이를 이체했고 6만 유로를 현금으로 인출했다고 한다. 이를 의심스럽게 여긴 은행은 거래를 막았다.
그가 연루된 밀입국 사건('아스트롤라비오' 사건이라 불린다)에서 이탈리아의 금융경찰은 그가 통화 중 다른 송금 시스템 말고 하왈라를 쓸 것을 노골적으로 권하는 걸 녹취했다. "아니 이 양반아, 웨스턴유니언 쓰지 마라고. 하왈라를 써!"
"최근의 경찰 조사 결과 유럽연합 국가로의 불법 이주에 (하왈라 브로커)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브로커들은 소위 '사라피' (또는 하왈라) 방식을 실시할 뿐만 아니라 유럽 이주를 희망하는 이민자들을 선발하는 '에이전시'의 역할도 합니다." 이탈리아 금융경찰이 아스트롤라비오 수사 최종 보고서에서 한 말이다.
수사팀은 보고서에서 이런 언급도 했다. "하왈라 브로커들은 조직력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믿을만한 밀입국업자들을 선택했다. (...) 오직 이민자들을 성공적으로 이동시켜야만 하왈라 브로커가 밀입국업자들이 받는 대금에서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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