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로 16년' 최정원…"도나와 이별 걱정 보단 매일 빛나고파" [조재현의 조명]

조재현 기자 2023. 5.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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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에 '댄싱퀸' 새길래요"…"'맘마미아!'는 운명"
대표 1세대 뮤지컬 배우…"환갑에도 무대, 롤모델 되고파"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16년째 도나 역을 맡고 있는 배우 최정원. (신시컴퍼니 제공)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이른 아침 책가방 들고 손 흔들며 미소 지으며 그 앤 집을 나섰지 / 그 앨 보낸 뒤 멍하니 한참 그냥 앉아 가는 뒷모습을 보았어 / 잡아보려 해도 내 곁에서 언제나 멀어져갔어 / 노력할수록 내 손에서 빠져나갔어.'

세계적인 팝 그룹 아바의 음악을 엮은 원조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의 대표 넘버 중 하나인 '슬리핑 스루 마이 핑거스'의 일부다. '맘마미아!'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섬을 배경으로 독립적인 미혼모 도나와 행복한 가정에 대한 환상을 가진 딸 소피, 그리고 소피의 아빠일 가능성이 있는 도나의 옛 연인 샘, 빌, 해리가 벌이는 유쾌한 소동을 그린다.

소피의 결혼식 전날 밤, 도나가 소피의 머리를 빗겨주며 지난날을 추억하는 이 넘버에 삶을 투영하는 배우가 있다. 2007년부터 16년째 주인공 도나 역으로 무대에 오르는 최정원(54)이다.

'잔뜩 힘을 줘 연기할 필요가 없다.'

최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오래도록 한 캐릭터를 맡을 수 있는 비결을 이같이 설명했다. 소피와 비슷한 또래의 딸 가수 유하(24)를 키우며 얻은 감정을 무대에서 자연스레 풀어놓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최정원이 부르는 '슬리핑 스루 마이 핑거스'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넘버 '슬리핑 스루 마이 핑거스'를 부르는 최정원. (신시컴퍼니 제공)

최정원은 공식 석상에서 '도나를 위해 태어난 배우'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만큼 도나와 닮은 구석이 많아서다. "작품 속 소피와 충돌하는 장면에선 사춘기 시절 딸과 싸우던 게 생각나요. 소피 머리카락을 빗겨줄 땐 매일 아침 딸의 머리를 땋아주던 기억도 나죠. 유하와는 남편보다 더 친한 친구가 됐어요."

엄마의 시간은 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유하의 '맘마미아!' 관람 후기가 달라졌어요. 관객들은 웃는데 '엄마도 저런 젊은 시절이 있었겠다' 싶어 눈물이 난대요. 딸이 사춘기 땐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 싶기도 했는데…아니었나 봐요.(웃음)"

최정원은 진 켈리 주연의 뮤지컬 영화 '싱잉 인 더 레인'을 보고 뮤지컬에 매료됐다. 1989년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 후 쉼 없이 무대를 지켜온 1세대 뮤지컬 대표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도 '맘마미아!'는 특별하다. 최정원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도나 역을 맡고 있는 배우다. 어느덧 1040여회 무대에 섰다. 최정원은 "1500회, 아니 2000회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정원보다 더 많이 무대에 오른 배우가 있다. 1등은 스페인의 배우 니나(NINA·본명 안나 마리아 아구스티 플로레스)로, 2004~2010년과 2015~2017년 사이에 2400회 이상 공연했다.

뮤지컬 '맘마미아!' 공연 모습. (신시컴퍼니 제공)

기록에 대한 욕심도 있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무대에 오르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어서다. "2400이란 숫자는 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연 횟수도 물론 중요하죠. 근데 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도나로 무대에 서잖아요. 이런 점에서 제가 '위너'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관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금 체력이 30대나 40대였을 때보다 더 좋아요. 꾸준한 운동과 식단 조절 덕분이죠. 최고의 컨디션이에요. 환갑이 두렵지 않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가 선보이는 도나도 늘 새롭다. "작품도 사람 같아요. 알면 알수록 정이 생기고 더 궁금해지죠. 매번 다음 시즌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도 더 성장했다고 느껴요."

자다가도 툭 치면 자동으로 대사를 내뱉을 것 같지만 마음가짐은 언제나 '첫 공'이다. 특히 한국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 아니기에 지금 사회에 맞는 상황이나 유머 코드를 늘 고민한다. "전 1000번도 넘게 한 일이지만, 관객들은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저 역시 처음인 것처럼 연기해야 해요. 연구를 많이 하죠. '언제나 처음처럼, 처음은 언제나처럼.' 제가 좋아하는 말이에요."

아찔한 기억도 있었다. 2007년 첫 공연을 마친 후 응급실에 실려 간 것. 쓸개관 안에 담석이 생겨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진통제를 맞으며 버텼다.

"진짜 무서운 건 무대에 서지 못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작품 속 넘버를 한두 소절 불러보고 소리가 나온다 싶으면 잠들곤 했죠. 나중에 공연을 마무리하고 병원에 다시 갔더니 담석 3개가 다 빠져있더라고요. 의사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어요.(웃음)"

뮤지컬 '맘마미아!'의 주역 최정원. (신시컴퍼니 제공)

도나와는 돌고 돌아 만났다. '맘마미아!'는 2004년 한국에서 초연했는데 최정원은 당시 제작사 신시컴퍼니의 오디션 제안을 거절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루시 역을 연기할 때다. 당시 딸이 있었지만, 엄마보단 미혼의 아름다운 여성 역할에 마음이 더 끌렸던 탓이다.

기회는 또 왔다. 2006년 '미스 사이공'의 엘렌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져 실의에 빠졌을 때 한 줄기 빛처럼 도나가 다가왔다. 그는 오디션에서 '완벽한 도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때 제안이 마치 '주님의 목소리' 같았죠. 돌이켜보면 전화위복이 됐어요. 그래서 16년을 도나로 멋지게 살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도나와 이별의 순간도 생각하고 있을까. 최정원은 쓸데없는 걱정 대신 현재에 집중하고자 한다. 죽는 날까지 관객들에게 매일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이별의 순간은 알 수 없고 스스로 정할 수도 없죠.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전 매일 어제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느끼고 있어요. 오랜 시간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서 후배들에게 나이 드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어요. 오히려 빨리 나이가 들고 싶게끔 만들어주고 싶죠.(웃음)"

최정원은 '맘마미아!'를 운명 같은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딸한테 그랬어요. 제 묘비에는 '신나게 춤춰봐 / 인생은 멋진 거야 / 기억해 넌 정말 최고의 댄싱퀸'이란 가사를 새겨 달라고요."

뮤지컬 '맘마미아!'의 주역 최정원. (신시컴퍼니 제공)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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