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농촌가정] “내 이름은 이나영, 시어머니가 지어주셨어요”

서지민 2023. 5. 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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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농촌가정] 3대가 사는 다문화가족
캄보디아서 시집와 애먹던 일들 이젠 웃으며 얘기하는 추억거리
살뜰히 챙겨주는 시모와 다문화센터 친구들 덕에 한국살이 ‘든든’

부부와 두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이 이상적인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이런 형태의 가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랑’과 ‘배려’를 근간으로 하는 가족의 의미는 여전한 듯하다. 새로운 가족 유형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가운데 가정의 달을 맞아 농촌에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여러 가족을 만나 그 중요성을 되새겨본다.

전북 남원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나영씨(왼쪽 두번째)가 남편 최원근씨, 시어머니, 삼남매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전북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구불구불 나 있는 골목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한 가정집에 다다른다. 텔레비전이 있는 안방에선 만화영화 소리가 크게 흘러나오고 간간이 리모컨 쟁탈전이 벌어진다. 남매끼리 투닥투닥 싸우다가도 할머니가 정성스레 깎은 참외를 들고 등장하면 금세 잦아든다.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이 집은 캄보디아에서 온 이나영씨(놉코우른·35)네다. 이씨는 2009년 한국에 와서 남편 최원근씨(52)와 결혼해 다문화가족을 꾸렸다. 지금은 부부를 비롯해 시어머니, 아들 둘, 딸 하나가 한집에서 화목하게 살고 있다.

‘이나영’은 시어머니가 직접 작명소에서 받아 온 이름이다. 한국 사람들이 ‘놉코우른’이란 이름을 어려워하자 속상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이씨를 보고 시어머니가 서둘러 자신의 성을 따서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준 것.

최씨는 “타지에 홀로 와서 외로워하는 아내를 위해 모임이 생길 때마다 같이 갔다”며 “그때마다 아내 이름을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들어서 서로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웃으면서 말하는 에피소드가 됐다”고 10여년 전 일을 회상했다.

새로 시작한 한국 생활에서 이씨를 힘들게 한 것은 이름뿐이 아니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젓갈을 많이 넣는 전라도 음식에 적응을 못해 반찬에 손을 못 대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생선을 좋아하는 이씨를 위해 시어머니는 매일 시장에서 싱싱한 고등어·갈치를 사서 바싹 구워줬다.

“집안일을 전혀 못하는 채로 시집을 와서 그것도 어려웠어요. 시어머니께 칼질하는 법, 국 끓이는 법 등을 차근차근 배우면서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이제는 눈 감고도 김치찌개·추어탕을 끓여요.”

일취월장한 요리 실력으로 이씨는 종종 가족들에게 고향 음식을 선보인다. 한국의 부침개와 비슷한 캄보디아 음식 ‘반차에우’도 인기가 많지만 아이들은 특히 ‘월남쌈’을 좋아한다. 라이스페이퍼에 오이·당근·단무지 등과 삶은 돼지고기를 넣어 쌈을 싸 먹는 음식이다. 이렇게 캄보디아 음식이 식탁에 올라온 날엔 가족들 모두 연신 “칭앙나(캄보디아 말로 ‘맛있다’라는 뜻)”라고 외친다.

시끌벅적 아침식사가 끝나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부부는 밭으로 나간다. 이씨는 남편과 함께 5만2800㎡(1만6000평) 규모 논에서 벼를 재배하고 990㎡(300평)의 밭에서 고추·오이를 키운다.

농사일을 서둘러 끝내고 이씨가 향하는 곳은 남원 시내에 있는 다문화센터다. 이씨는 여기서 한국 문화와 아이들 양육법 등을 배운다.

“최근 첫째가 사춘기에 접어든 거 같아요. 뭘 해줘야 할지도 감이 안 와서 이곳에서 만난 언니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정규 수업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가족 말고 다른 한국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도 좋아요. 센터에서 만난 다른 나라 다문화가족들과도 서로 음식을 나눠 먹고 나들이를 가기도 해요.”

요새 이씨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행복한 고민은 바로 다음 가족 여행 후보지다. 1년에 한두번씩 꼬박꼬박 떠나는 가족 여행은 이씨에게 가장 중요한 행사다. 지난해에는 다 같이 전남 여수에 가서 밤바다를 구경했다.

“자주는 못 가지만 잊을 만하면 한번씩 캄보디아에도 갔다 와요. 지난번 저희 아버지 생신 때 온 가족이 출동했죠. 고향에서도 벼농사를 짓는데 남편이 가서 이것저것 손봐주고 오곤 해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에는 사뭇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온다. 이때 어김없이 집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은 바로 커피향이다. 최근 커피의 매력에 빠진 이씨는 시간 날 때마다 직접 커피를 내리며 향을 음미한다. 바리스타 수업도 듣는 이씨는 시어머니·남편에게 커피를 내려주며 날로 느는 실력을 자랑한다.

“남편이랑 올해는 꼭 새로 집을 짓자고 다짐했어요. 아이들이 커서 각자 방이 필요하거든요. 새집에선 침실은 작게 하고 거실은 최대한 크게 할 생각이에요. 지금처럼 제가 만든 요리를 나눠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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