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우리는 한 식구입니다”
고령 홀몸어르신 동고동락 공동체…노노(老老)케어 덕에 웃음꽃
마을·시 힘합쳐 주택 짓고 생활비 지원…1인 1실 쓰며 거실·부엌 공유
“혼자라 느끼던 서러움 여긴 읎어유” 서로서로 돌보며 몸도 마음도 건강
급속히 고령화하는 농촌에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홀몸어르신이 모여 살며 ‘노노(老老)케어’를 실현하는 공동생활홈도 그중 하나다.
“예전엔 반찬이 뭐 필요 있었겠슈. 혼자 먹는데 기냥 물에 말아 먹고 마는 거쥬. 근디 요새는 밥 먹는 게 낙이유.”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4리 먹방마을에 사는 지영병씨(83)는 요즘 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
자식들은 대처로 나가고 아내와 사별한 지 5년. 몇달 전까지만 해도 혼자 먹을 밥상을 차리는 일이 성가시기만 했다. 하루에 한끼는 건너뛰고 나머지는 맨밥에 김치 하나로 때우듯 해결하기 바빴다. 3월 ‘공동생활홈’에 입주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지씨는 한 지붕 아래 이웃사촌 할머니 다섯명과 함께 산다. 삼시 세끼 때가 되면 모두가 제철 먹거리가 풍성한 밥상 주위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니, 어찌 식사 시간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먹방마을 공동생활홈은 말 그대로 홀몸어르신이 함께 사는 집이다. 마을주민이 주축이 된 마을기업 ‘꿈이있는 먹방마을 영농조합법인’(대표 서광수)이 토지를 구입하고 시가 지원한 ‘어르신 동거동락 생활방’ 시범사업 예산 3억5000만원으로 건축비를 보태 세워졌다.
본래 탄광촌이던 마을은 1990년대 이후 폐광하면서 급격히 쇠락했고 2016년 마을재생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재생사업을 주도하던 이들이 열악한 환경에 거주하는 고령 홀몸어르신이 많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위한 공동생활홈을 제안한 것이다.
공동생활홈엔 최대 일곱명이 살 수 있다. 이층 양옥집으로 개별 화장실이 딸린 방이 1층에 다섯개, 2층에 두개가 있다.
1인 1실을 사용하며 거실과 부엌은 공유한다. 같이 살되 충분히 사생활을 보장받는 구조다. 준공 직후 입주자를 받았는데 코로나19로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올해 다시 열었다. 현재 성별을 구분해 1층엔 할머니 다섯분, 2층에 할아버지 한분이 거주한다.
먹방마을 공동생활홈 입주 자격은 크게 세가지다. 성주4리 주민이면서 65세 이상이고 특별한 소득이 없는 경우다. 명문화한 강제 조건은 아니고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입주 혜택이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마을주민이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는 기준이다.
이웃을 두고 사촌이라고 하는데 한집에 산다면 가족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공동생활홈에서 생활하는 여섯분은 이제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됐다. 2019년 입주한 주동분씨(83)는 공동생활홈에 들어온 이후 마음이 더없이 든든하다. “나이가 들믄 이래저래 아플 때가 많잖아유. 그러면 옆방 언니가 물도 떠다 주고 약도 챙겨주면서 알은체를 해줘서 고맙쥬. 혼자믄 서럽거든유. 여는 복작복작하니 서러울 일이 읎어유.”
윤정숙씨(77)는 방에 홀로 있다가 문득 거실에서 말소리가 들려오면 외로움은 사라지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사람과 부대끼며 온기를 느낄 때면 어릴 적 대가족 품에 살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독거노인이 겪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고독감에서 비롯한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증이다. 이는 우리 공동체에 유지돼왔던 사회적 유대감을 약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다. 공동생활홈은 홀몸어르신끼리 관계를 돈독히 하고 일상을 공유하면서 정신건강을 돌보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공동생활홈을 가장 반기는 건 입주자 자녀들이다. 도시에 사는 터라 자주 찾아올 수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차에 수시로 안부를 확인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 자녀들은 이제 “공동생활홈에 사는 어르신 모두가 부모님 같다”며 고향에 올 때마다 고마움을 전한다.
생활비가 준 것도 큰 장점이다. 소득이 적은 홀몸어르신에게 난방비는 큰 문제다. 특히 농촌은 도시와 견줘 연료비가 더 많이 들고 갈수록 그 차이가 벌어진다. 그런데 한 집만 보일러를 켜도 여섯명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하면 부담이 덜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전기장판만 켜놓고 겨울을 났다는 전수씨(86)는 “공동생활홈에 살면서 지난겨울은 걱정 없이 보냈다”면서 “덕분에 감기도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곳 생활비는 750만원으로 시에서 나오는 예산과 마을 노인회에서 지원하는 금액으로 충당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만족하는 공동생활이지만 처음부터 잘 돌아갔던 것은 아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이상 혼자 살던 이들이 모였다보니 초기엔 삐걱대기도 했다.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이 다르고 좋아하는 반찬도 각양각색이라 부딪친 적도 더러 있다. 다행스러운 건 수십년 살 비비고 산 이웃사촌인 덕에 갈등이 크게 번지진 않았다는 것. 속을 터놓고 대화하며 금세 생활방식을 맞춰갔다.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지씨는 “서로 다 아는 처지에 몇마디만 나눠도 이해한다”면서 “다투고 삐지고 그러다 사르르 마음을 풀면서 사는 것이 재미”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입주자와 비입주자의 관계였다. 먹방마을엔 80여가구가 살고 대부분이 65세 이상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만 입주한 탓에 ‘누구는 혜택을 보고 누구는 손해를 본다’는 불만이 쌓였다. 실마리는 젊은 주민들이 찾았다. 부녀회가 공동생활홈 도우미를 자처하며 자주 들러 대화 창구가 돼줬다. 공동생활홈 안팎 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운동·문화 수업을 열면서 마을주민과 입주자 사이 징검다리 노릇을 했다. 지금은 공동생활홈이 마을의 구심점이 돼가고 있다.
농촌 고령화가 심각하다. 자녀는 도시로 나가고 반평생 함께한 배우자는 먼저 세상을 떠나 홀로 남은 어르신이 많다. 그렇다보니 혼자 지내다 제때 돌봄을 받지 못하고 쓸쓸히 죽음을 맞는 사례가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고독자 사망자수는 3378명이다. 전체 사망자수 가운데 1% 정도지만, 최근 5년간 증가 추세다. 공동생활홈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서로 안부를 묻고 함께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돌봄이 된다. 농촌 홀몸어르신들의 삶을 매개하는 공동생활홈은 가족을 형성하는 또 다른 울타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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