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우리를 구해줘”, DJ “생명의 은인”…역대 대통령 美 의회연설은? [대통령의 연설]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2023. 5. 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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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5박7일 일정의 국빈방미를 마치고 지난달 30일 귀국했습니다. 일본과의 역사논쟁을 비롯한 악재가 겹치며 급락하던 지지율이 방미 후 소폭 반등하는 데 성공했는데요. 국빈만찬에서 팝송을 열창하고, 미국 의회에서 영어 연설을 능숙하게 해낸 모습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외교행보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것은 역대 대통령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전략이었는데요. 한국의 가장 중요한 우방국가인 미국과의 정상회담은 그중에서도 특히 효과가 좋았던 적이 많습니다. 양국 정상의 돈독한 모습이 뉴스를 도배하면 미국과의 동맹을 중요하시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긍정적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죠.

이같은 방미 외교활동으로 어떤 성과가 있었느냐는 물음에는 뾰족한 답을 찾기 힘든 것 역시도 역대 대통령에게서 반복되는 모습입니다. 외교성과라는 것이 공개적으로 내세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측면도 있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양국의 우호관계만 보여주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떄문이죠.

그래서인지 한국 대통령들의 7차례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살펴봐도 우호관계를 재확인하는 내용들이 대동소이하게 포함됩니다. 그나마 한국 대통령들이 미국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강조하는 부분들이 연설문에서 흥미를 끄는데요. 대통령의 연설 이번 회차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의 상하원 합동연설을 되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미국 의회 연설
▲ 김대중 “미국이 내 생명 구해”

역대 한국 대통령의 미국 상하원 의회연설 가운데 오늘날까지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과 미국의 역할’입니다. 연설문 주제와 조금 동떨어질 수 있지만 도입부에서 길게 소개되는 김 전 대통령의 인생사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요.

김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 영광된 자리에서 연설한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두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 서 결정적으로 그 생명을 구해 준 당사자가 국가원수로 이 자리에 선 예는 내가 처음일 것입니다”라며 연설을 시작해 “여러분은 1973년 내가 군사정권에 의해서 납치되어 살해될 뻔 했던 때와 1980년 독재정권하에서 사형선고가 내려졌을 때, 내 생명을 구해 주었던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1973년 나는 일본 동경의 한 호텔에서 한국의 KCIA요원에 의해서 납치되어 그들의 공작선에 실려졌습니다. 그들은 내 전신을 결박해서 바다에 던지려 하였습니다”라며 “바로 그 때 비행기 한대가 배위로 날아와 납치범들을 제지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비행기는 나를 살리기 위해 미국의 통보를 받고 날아왔던 일본 비행기 였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업적을 갖고 있지만, 이는 미국 입장에서는 역으로 높은 불확실성을 의미했습니다. 50여년간 이어진 보수진영 정권이 반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던 반면 진보진영의 김 전 대통령이 어떤 외교전략을 펴낼지 워싱턴 관가에서도 의구심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이 미국 덕분에 생명을 구한 인연, 독재에 맞선 민주주의 투사로서의 개인사를 의회에서 풀어내며 미국 정계의 불안감을 일거에 해소한 이 연설은 한국 대통령들의 해외 연설문 가운데 손에 꼽히는 명연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미국 덕에 목숨을 구한 것은 1973년만이 아닙니다. 그는 “1980년 나는 군사쿠데타 주동자들에 의해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당시 정부이양 단계에 있었던 카터 대통령과 레이건 대통령 당선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었던들 오늘의 이 연단은 비워져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첫 美의회 연설 이승만, 노태우 ”민주적으로 선출된 첫 대통령“, 김영삼 ”고향 찾아 친구를 만난 듯 하다“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한 첫 한국 대통령은 역대 최고의 ‘미국통’인 이승만 전 대통령입니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 미국을 방문한 만큼 군사적인 내용이 연설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요. 그는 ”우리는 또한 한국파병의 중대 결정을 나림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해중(海中)으로 밀려 나지 않게끔 구원해 준 트르만 전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로서 또 그 후에는 미국의 행정부 수반으로서 적의 위협을 잘 이해하고 우리를 원조하여 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2차대전 전쟁영웅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쟁중이던 한국 방문으로 대선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후 실제로 방한한 바 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미국 의회연설에서 ”먼저 미국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는 귀한 특전을 나에게 주신 데 대하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새롭게 민주주의를 열고 있는 나라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서게된 것을 나는 영예롭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임 대통령들이 군사독재를 통한 정권연장으로 미국과 많은 갈등을 빚었던 반면, 노 전 대통령은 선거로 뽑히고 평화적 정권이양까지 약속한 덕분에 40여년만에 한국 대통령으로서 미국 의회 연설에 나설 수 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미국 의회 연설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민주화 투사로서의 이력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나는 고향을 찾아 친구를 만난 듯한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며 ”그것은 아마도 스물다섯의 나이로 국회의원이 된 이래 40년 가까운 의정생활을 통해 의회는 어느덧 나의 ‘고향 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라 말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미국 의회에서는 학생운동 경력을 언급했는데요. 이 전 대통령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대학 졸업생들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길거리를 방황했습니다. 기회도 별로 없었습니다“라며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경제적 자유가 결여된 민주화만으로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이후 나는 작은 기업에 들어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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