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형 뮤지션 우즈 그리고 조승연이 걸어온 길
(시사저널=김영대 음악 평론가)
음악평론가 입장에서 유독 관심을 갖는 두 부류의 뮤지션이 있다. 하나는 물론 완성된 천재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아이디어와 어디서든 눈에 띄는 색깔을 갖고 있고 이를 완벽주의적 과정을 통해 구체화시킨다. 평론가의 예상을 비웃듯 늘 상상 그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재능 앞에 평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경외 섞인 찬사뿐이다. 또 하나는 천재성이 느껴지지만 아직 그 재능이 얇은 막에 싸여 있듯 채 만개하지 않은 기대주들이다. 언뜻 들어도 비범한 아이디어와 감각을 지니고 있지만 완성형이라기보다는 진행형인 재능들, 하지만 매번 새로운 음악을 들고나올 때마다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통해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를 자극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최근 새 앨범 'OO-LI'를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아이돌 '우즈(WOODZ)'는 아마도 후자에 속하는, 발전과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뮤지션일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아이돌 출신 뮤지션
뮤지션으로서 우즈(조승연)의 이력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킬 만큼 다양한 업앤다운으로 이뤄져 있다. 원래 다국적 아이돌 그룹인 UNIQ의 멤버로 음악을 시작한 그의 포지션은 지금과 달리 래퍼와 댄서였다. 하지만 중국 시장을 야심 차게 겨냥했던 이 그룹은 한한령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나 사실상 좌초하게 됐고, 그는 힙합 오디션 《SHOW ME THE MONEY 5》에 출연했지만 성공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 후 와신상담, 또 다른 오디션 《프로듀스 X 101》에서는 최종 5위를 기록하며 아이돌 그룹 X1의 멤버로서 장밋빛 길이 열리는 듯했지만 이 프로그램이 음악방송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 중 하나인 투표조작 사건에 휘말리며 팀은 조용히 해체의 길을 걷게 됐다. 좌절할 만했지만 우즈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퇴색하지 않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올라운더로서의 재능을 주목받은 그는 2020년이 돼서야 알앤비 스타일을 앞세운 솔로 데뷔작 'EQUAL'을 내놓게 되는데, 판매량이나 히트곡 여부보다는 모든 곡의 작사·작곡에 참여하면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을 본격적으로 보여줬다는 것이 중요했다. 주목할 만한 재능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3년, 우즈는 지난 네 장의 미니 앨범을 통해 늘 부지런히 변화와 발전을 꾀했다. 중요한 것은 그 결과물들이 늘 트렌디한 완성도와 아티스트의 개인성을 조화시키면서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사람들 수를 차츰 늘려 왔다는 부분이다. 재능이 많은 천재형 아티스트들이 데뷔작에 모든 음악적 정수를 몰아넣지만 정작 커리어가 진행돼 가면서 동어반복을 통해 조로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는데 우즈의 경우는 완전히 그 반대였다. 매 앨범을 통해 새로운 모습과 음악적 지향점을 보여주려 노력한 것은 물론, 그것이 단순히 변신이 아닌 점진적인 발전의 모습으로 채워졌다는 데 의미 있었다. 일례로 작년에 발표한 'COLORFUL TRAUMA'는 그에게 익숙한 어반 알앤비 스타일이 아닌 록 음악으로 급격한 변화를 꾀하는 와중에도 오히려 앨범의 구성미와 송라이터로서의 능력이 더 성숙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제 우즈는 다섯 번째 미니 앨범 'OO-LI'를 통해 짧다면 짧은 지난 3년간의 커리어에서 가장 성숙한 아티스트십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새 앨범의 가장 큰 테마는 '나'에 대한 직면과 탐구다. 방황과 좌절 속에서 상처받은 영혼, 그 상처 속에서 갈구하는 자유와 순수,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자기애에 대한 깨달음이 이 앨범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주제의식이다. 그래서 이 앨범의 가장 중요한 곡은 선공개곡이자 앨범의 마지막 트랙을 장식하는 《심연》이다. '바깥이 무섭다'면서 아직 세상에 채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속 깊은 곳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뮤지션의 모순된 자아, '싫어진다면 그대로 떠나가라'는 체념과 '이런 변덕마저도 사랑할 수 있나요'라고 미련을 남기는 이중성 속에서 그는 아직 '나를 덜 사랑'하는 사람임을 어렵게 털어놓는다. 음악도 이런 모순된 감정과 체념의 메시지를 어쿠스틱하고 심플한 연주로 차분하게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저 깊은 곳 어딘가에 숨겨진 자아를 마주하고 한 걸음을 더 내딛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앨범의 타이틀곡인 《Journey》가 입증해 보인다. 앨범 전체의 사운드 디자인을 규정하는 다이내믹하고 시원한 리얼 밴드 플레이 위에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멜로딕한 선율이 돋보이는 정공법의 팝 록 스타일 곡으로, 마치 한 줄기 햇살이 구름을 뚫고 나오듯 폭발적으로 터지는 후렴구의 고음이 퍽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 후렴이 그냥 반복되지 않고 오히려 마지막 1분은 다짐과도 같은 잔잔한 포스트-코러스만이 밴드의 변주와 함께 흐르는데, 이는 어떤 여행을 떠나도 잃지 않을 나만의 공간이 있음을 잊지 않으려는 일종의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깨달았지만 채 확신하지 못하는 청춘의 불완전함이 이렇게 가사와 사운드의 절묘한 조합으로 표현되는데,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음악 기술자로서 우즈의 내공이 한결 성숙했음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Drowning》은 지난 앨범의 수록곡 《안녕이란 말도 함께》가 떠오르는 풍성한 선율과 리듬감이 돋보이는 곡으로, 큰 틀 안에서 영미권 팝의 장르적 영향권 안에 있지만 2000년대 이후의 가요적 감수성에도 익숙한 MZ세대 뮤지션의 독특한 감수성을 잘 보여주는 곡이기도 하다. 타이틀 곡인 《Journey》와 함께 그간 꾸준히 성장해온 보컬리스트로서 우즈의 성장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곡으로, 앨범에서 가사와 곡, 보컬의 조화가 가장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순간이기도 하다.
"발전하는 그의 음악성은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어"
이 앨범은 전작과 유사하게 다양한 장르를 소환한다. 음악 동료들인 네이슨(Nathan), HOHO 등 재능 있는 프로듀서들과 함께 록이라는 큰 틀 안에서 얼터너티브, 펑크, 브릿팝, 하드코어, 개러지 등 다양한 하위 장르들을 솜씨 있게 버무리는 모습은 음악팬들에게 익숙한 우즈의 모습이다. 하지만 앨범을 들으며 장르 그 자체가 도드라진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장르에 대한 탐구라는 측면에서는 이전 앨범에 비해 파격적이지 않다고도 느껴지는데,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일정 부분 착시이기도 하다.
이 앨범은 이전 앨범들과 유사하게 곡들마다 거의 동어반복이 없는 다채로운 편곡을 들려주고 있지만 주제의식의 분명함과 서사의 유기성 때문인지 그 어느 때보다 일관된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앨범의 곡은 크게 Deep Deep Sleep, Drowning, Busted, 심연과 같은 침잠과 염세적 이미지와 Journey, Who Knows, Ready To Fight 같은 상승과 돌파의 이미지로 나뉘는데 이 각각이 아티스트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이중성의 면모를 보여줄 뿐 아니라 아이돌 출신 싱어송라이터로서 수없이 많은 난관을 통해 극복의 과정을 걸어온 우즈 개인의 서사와 맞물려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아직 채 음악성이 무르익지 않은 젊은 뮤지션이지만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상반된 경향을 주목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흔치 않은 일이다. 탐구를 끝낸 확신의 첫 발걸음, 우즈는 여전히 평론가 입장에서 흥미를 자아내는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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