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덕분에?’… 바이든, 견제했던 마르코스 아들을 "최고의 파트너"로 부른 이유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유창한 영어로 회담·연설·질의응답
바이든, 의원 시절과 다른 접근법
필리핀 균형→전략적 외교 작동
“울고불고 아주. 송혜교에게 배워라.”
문화평론가 김갑수가 유튜브 방송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 앞에서 감정을 격발해서는 안 된다”며 백상예술대상 수상자인 배우 박은빈의 소감 태도를 거론했다. 김갑수는 “가장 우아한 모습이 송혜교”였다며 “30살이나 먹었으면 송혜교에게 배워라”고도 했다. 일종의 조언이라는 설명이었지만, ‘감정 자제’에 대한 문화평론가 김갑수의 발언은 일반인의 강한 반발을 야기했다. 오열 직전까지 갔던 박은빈의 수상소감은 ‘표본’으로 재론됐다. “어린 시절, 배우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대상을 받을 수도 있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갑수가 요구한 절제보다는 박은빈의 솔직함에 여론이 박수를 더 쳐준 것이다.
독재자 반대했던 바이든, 아들 마르코스 환영
5월 첫 ‘아세안 코너’ 연재 기사를 준비하다가 든 생각이었다. 국가들의 치열한 전략과 한계가 엇갈리는 외교현장에서도 이러한 ‘짧은 평가’가 가능할까.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필리핀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의 만남에도 짧은 평가가 나왔다. 외교적 성과를 옆으로 밀어둔다면, 언론의 ‘독재자 아들과 만남’이라는 짧은 제목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설명을 보충할 단어와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원의원, 대통령, 1980년대 피플 파워, 로널드 레이건, 망명, 하와이, 로드리고 두테르테, 도널드 트럼프, 남중국해 등을 떠오르게 했다. 관전평은 “‘중국’을 겨냥하고자 한 바이든 정부의 의지가 ‘독재자 아들’의 워싱턴 국빈방문을 열렬히 환영했다”는 것이다.
오랜 동맹인 미국과 필리핀은 최근 며칠 낯설지만 익숙한 외교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 같은 근거를 이번 회동의 주연 배우들인 바이든, 아들 마르코스의 과거에서 찾아보자.
상원의원 바이든 “미국은 부패정권과 동일한 입장이어서는 안 돼”
바이든 대통령은 1980년대 야당이었던 민주당 소속으로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바이든 상원의원은 레이건 대통령의 마르코스 보호 역할을 강력히 비판했다. 레이건의 마르코스 지지에는 필리핀에서 미군기지 사용을 유지하려는 입장이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의회 기록에 따르면 바이든 의원은 레이건 행정부를 향해 마르코스 지지를 거두라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만약 미국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부패하고 신용을 잃은 (필리핀) 정권과 완전히 동일시된다면, 우리는 단기적으로 우리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필리핀 국민을) 소외시켜 그들을 잃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재자 대신 필리핀 민중을 선택하라고 레이건 정부에 요구한 것이다.
독재자와 절연을 요구했던 바이든의 기세는 대통령이 된 뒤 바뀌었다. 지난해 아들 마르코스가 당선된 뒤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회담을 가진 데 이어, 이번엔 워싱턴에서 그를 맞았다. 아들 마르코스의 방문은 필리핀 대통령으로서는 11년만의 미국 방문이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마르코스 대통령을 만나 “당신보다 더 나은 파트너는 생각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두 정상은 지난 1일 만남에서 대만해협 주변의 안정과 세계 안보·번영을 위한 이 지역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그러면서 아버지 마르코스와 바이든 의원 시절엔 상상할 수조차 없는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마르코스를 향한 친밀도 강화 의지’가 표출된 것이다.
앞서 필리핀은 지난 2월 초 미군에 대한 자국 해군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두 사람의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시절엔 거론조차 되기 힘든 이해와 배려가 양국 후임자 사이에서 감지됐다. 두테르테와 트럼프는 상대를 자극하는 언사를 주고받으며, 양국관계 균열 우려를 야기하기도 했다. 언론은 스트롱맨들의 설전으로 평가했다. 트럼프의 전임자 버락 오바바 대통령 시절에도 미국은 필리핀을 상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부통령은 바이든이었다. 중국이 2010년대 남중국해(서필리핀해)에서 입지를 노골적으로 강화했지만, 미국은 필리핀을 자신들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했다.
상원의원과 부통령 시절 필리핀 문제를 다뤘던 바이든은 백악관 주인이 된 뒤 새로운 접근법을 내놓은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간이라면 입국이 금지됐을 마르코스의 워싱턴 입성을 환영했다.
마르코스는 미국의 중국 견제 발판에 발을 올려놓는 모양새를 확실히 취했다. 남중국해에서 항해와 비행의 자유에 대한 변함없는 약속을 확인하고, 대만 해협에서 평화와 안정 유지는 국제 안보와 번영의 핵심 요소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항해와 비행 자유 등은 미국이 남중국해 문제를 거론할 때 사용하는 핵심 표현이다.
중국이 불편함을 충분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은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을 통해 “남중국해가 외부 세력의 사냥터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반박이다. 정작 필리핀에 대해서는 강한 발언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서는 필리핀의 외교방식을 ‘줄타기 외교’로 해석하면서, 필리핀을 완전히 적으로 돌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마르코스는 지난해 9월 미국을 방문했으며, 올해 1월엔 중국을 방문해 중국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올해 들어 다시 필리핀이 미국 기울기 분위기가 읽혀지자, 지난 4월 친강 외교부장이 필리핀을 찾아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마르코스 대통령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면서 적절하게 미국의 기대 수준을 낮추기도 했다. 그는 당장 미국 방문 마지막 날인 4일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이뤄진 행사에서 ‘중국을 향한 공격적 행동엔 미군이 필리핀 군대기지를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20분간 영어 연설 이후 이뤄진 질의응답 시간에 이같이 밝혔다.
미국 입장에서도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대척은 상원의원 시절과는 달리, 바이든 대통령이 독재자 아들을 향해 최고의 파트너로 부른 핵심적 배경일 것이다. 바이든과 마르코스의 발언은 그만큼 복잡한 속내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발언을 통해 볼 때,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를 급속 밀착이라는 짤막한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필리핀 대사를 지냈던 한동만 국립외교원 아세안센터 고문은 ‘마르코스 대통령의 자국 기지의 미군 사용허가와 미국 방문’ 등과 관련, “미·중 갈등 와중에 펼쳐지는 필리핀의 균형외교가 한층 전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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