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돈 빼세요"..누구를 위한 '찌라시'인가[씬나는경제]

이명철 2023. 5. 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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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 정·재계 얽힌 정보업 실상
이해관계 의한 근거 없는 정보 통용, 큰 피해 일으켜
금융권 ‘뱅크런’ 소문에 진통…금융안정까지 위협 받아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영화 속 장면 곳곳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담겨있습니다. 씬(Scene)을 통해 보이는 경제·금융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이 노출될 수 있습니다.

찌라시에 소속 여배우를 읽은 우곤은 유통업체 대표인 정사장을 만나 헛소문의 진원지 추적에 나선다. (사진=CJ ENM)
“비밀이 진실을 잃는 순간, 그것이 찌라시가 된다.”

연예기획사에서 쫓겨난 후 1인 기획사를 세운 우곤(김강우). 서로 믿고 의지하며 착실한 성과를 이뤄내던 소속 연예인 미진(고원희)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맙니다.

이유는 미진이 의원인 남정인(안성기)과 불륜 관계라는 속칭 ‘찌라시(정보지)’가 돌았기 때문입니다. “미진이가 죽는 순간 나도 죽었다”는 우곤은 직접 찌라시를 만든 업체 추적에 나섭니다.

찌라시에 목숨 잃은 여배우, 실상 알고 보니

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은 증권가 찌라시로 터진 대형 스캔들에 여배우를 잃은 우곤이 최초 유포자를 찾아 나서게 되고 여기서 정·재계의 거대한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우곤의 유일한 소속 배우였던 미진은 남정인 의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그러한 장면을 찍은 영상이 있다는 찌라시가 나돌면서 큰 타격을 입습니다. 미진을 주연으로 한 드라마마저 좌초 위기에 처하게 되죠.

미진을 달래러 치맥을 들고 방문한 우곤은 화장실에서 목을 매고 숨진 미진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전부였던 미진이 죽게 되자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된 우곤은 찌라시 유통업체를 찾아내고 그곳의 책임자인 박사장(정진영)을 만납니다.

하지만 그곳은 일개 유통업체일 뿐이었고 사실을 알고 보니 청와대 정책실과 대기업인 오앤씨 등의 얽힌 관계를 알게 됩니다.

청와대와 오앤씨그룹간 검은 커넥션의 뒷처리를 담당하는 차성주.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지만 결국 돈의 노예다. (사진=CJ ENM)
오앤씨는 청와대 정책실장인 박영진(김의성)과 합을 맺고 부당한 이득을 취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된 남정인 의원을 제거하기 위해 미진과 불륜 관계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든 것이죠.

알고 보니 미진은 청와대 비서관인 조우찬(임형준)이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고 오앤씨측의 행동대장격인 차성주(박성웅)가 자살로 위장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우곤 일행은 조우찬의

범행 영상을 대중에게 전파하고 오앤씨의 국정 개입 정황도 만천하에 알리게 됩니다.

영화 자체는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와 큰 차이가 없지만 찌라시의 유통 경로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각 회사의 정보 담당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회의를 하고, 공통되는 정보가 있으면 정보지를 만들어 배포한다는 것이죠. 주의할 점은 정보지엔 단순 사실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정·재계 등의 이해관계를 감안해 의도적인 정보도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대사처럼 ‘진실이 없는 비밀’은 결국 근거 없는 찌라시가 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이득을 얻게 되겠지만요.

근거 없는 헛소문, 이득 얻는 세력 누구인가

최근 금융·증권가에서도 다양한 찌라시들이 나와 화제가 됐습니다. 현재 증권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인 ‘SG사태’의 경우 임창정 같은 연예인은 물론 증권사 대표 등이 연관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양한 소문이 찌라시 형태로 돌았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지난달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과 관련한 찌라시가 돌아 관련 금융회사들이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뱅크런이란 수많은 고객들이 예금을 한꺼번에 인출해 은행 자금이 동나고 결국 부도에 이를 수 있게 하는 사태입니다. 3월부터 실리콘밸리은행(SVB), 크레디트스위스(SC) 등 대규모 은행들이 부도 위기를 맞으면서 국내서도 ‘은행이라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정보업계 모임에 위장으로 참가한 우곤. 참석자들은 정보의 선정성에 집중하지 예상되는 피해 등은 생각하지 않는다. (사진= CJ ENM)
인터넷은행인 토스뱅크와 2금융권의 새마을금고와 OK·웰컴저축은행 등이 잇따라 찌라시의 타깃이 됐습니다. 뱅크론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화하거나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대규모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문이 돌자 각 회사들은 유동성 위기나 뱅크런 우려를 일축하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비록 회사 자산 건전성에 대한 지적은 있을지라도 당장 위기를 겪을 상황이 아닌데도 뱅크런 찌라시가 기존 고객은 물론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금융회사 한곳이 도산하게 되면 비단 그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각 금융회사들은 서로 밀접한 직·간접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곳의 도산이 다른 곳에도 영향을 미쳐 도미노 같은 위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에 금융당국도 근거 없는 소문을 엄정 대처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저축은행업계는 찌라시 최초 유포자를 찾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헛소문이 퍼진 저축은행은 실제로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부실 저축회사’란 오명이 씌워졌다. 예금이 한번 빠져나가면 다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습니다.

누가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렸는지 알기 전에 이미 당자자가 입는 피해는 큽니다. 최초 유포자를 잡기 위한 수사 강화도 필요하지만 단순히 소문이 돌았다고 쉽게 동요하지 않는 냉철함과 객관성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영화 평점 2.5점, 경제 평점 3.0점(5점 만점)]

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 포스터. (사진=CJ ENM)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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