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3’ 이경영 시선으로 본 한석규의 낭만에 대하여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3. 5. 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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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놈은 그랬다. 무모했고 되바라졌으며 지 잘난 맛으로 메스부터 휘둘렀다. 아나키스트처럼 선배들이 조심스레 쌓아올린 질서를 뒤흔들고 윤리를 팽개쳤다.

놈의 제자란 놈이 그랬다. “가끔은 미치지 않고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있더라고요. 그걸 사부님은 낭만이라고 하셨고요.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사람을 살려왔습니다.”

낭만?.. 낭만이라니... 저 창백한 수술등 아래 누워 차가운 메스와 바늘과 봉합사의 기능에 기대 생사의 기로를 걷고 있는 환자를 두고 낭만? 사람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필드에서 낭만을 찾아?

5일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에서 차진만(이경영 분)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다리가 꺾여 동맥이 손상된 환자를 두고 부용주(한석규 분)는 신경봉합술을 먼저 시행하겠단다. 동맥 손상은 생명을 위협한다. 신경은 손상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최악의 경우 다리 기능만 잃을 뿐이다.

모든 수술은 환자의 생명이 우선, 안전이 그 다음, 기능적인 선택은 가장 마지막여야 마땅하다. 대대로 이어진 수술실의 원칙이다. 그런데 기능을 위해 테이블데스의 위험을 감수한다고? 확실하다. 부용주는 미쳤다. 부용주의 아이들도 미쳤다. 어떡하면 저런 결론을 낼 수 있는지 그 사고방식을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환자가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니 다리는 물론 소중하다. 다리 기능을 잃는다면 크게 좌절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살아만 있으면 다른 꿈을 꿀 수도 있다. 젊음의 가능성이란 얼마나 다양한가 말이다. 그러니 의사는 살리면 된다. 그 다음은 온전히 환자 몫이다. GS건 CS건 의사의 역할은 살리는 데까지다. 환자의 인생을 의사가 무슨 수로 책임지나? 그럴 능력도 권리도 없는 것이 의사다.

돌담병원 외상센터로 내려오며 스스로가 추해보이는 자괴감을 느꼈다. 대학병원을 그만둔다는 소문이 나자 서울 유수의 병원들이 영입의사를 타진해왔다. 외상센터를 개원한다는 돌담병원의 박민국(김주헌 분) 원장도 가세했다. 물론 지방의 외상센터로 갈 의향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그곳엔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않는 부용주가 있었다.

박민국 원장 얘기는 들었다. 엘리트 의식이 대단하단 평판을 들었는데 지방 병원에 그렇게 오래 머무르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의사로서 닥터 부용주에 대한 존경심이 한 몫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존경심? 부용주에게 존경심이라니 가당키나 한 소린가?

치사한 자존심이 발동했다. “부용주 그 친구를 외상센터에서 제외시켜 주세요. 부용주가 없는 외상센터라면 한 번 생각해보죠.” 얼마 남지 않은 의사생활 폼나게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이놈의 욕심이, 이놈의 허세가 꼭 안간힘을 쓰게 만든다.

그런 자괴감을 안고 내려왔다. 그리고 충동적이고 무모한 부용주의 만행을 보았다. 준공도 안떨어진 외상센터에서 불법수술을 감행하지 않나, 환자 다리 살려보겠다고 환자 목숨을 담보로 삼지 않나. 저 미친 짓은 말려야 한다. 치사한 자존심으로 시작된 돌담병원행이지만 저 부용주를 주저앉혀 의료정의를 다시 세우는 일은 차진만의 마지막 소명일 지도 모를 일이다.

불꺼진 수술방에서 핸드폰 불빛만으로 수술에 성공한 솜씨니 솜씨만큼은 일류임에 분명하다. 놈은 그 훌륭한 솜씨를 앞세워 위험한 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딸 차은재(이성경 분)마저도 그 추종자가 되어버렸다.

낭만(浪漫)? 일본의 소설가이자 영문학자 나쓰메 소세키가 romance(로망)을 음차한 일본식 한자어지만 물결 랑(浪)에 흩어질 만(漫)은 합쳐서 ‘제멋대로 하다’는 뜻이다.

부용주와 아이들은 ‘로망’의 의미로 쓰는 모양이지만 그들의 낭만은 방종에 불과하다. 그리고 로망이든 방종이든 생사가 오가는 수술방에 합당한 용어가 아니다. 절제된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 누대에 걸쳐 획득·계승된 원칙만으로 운영돼야 한다. 부용주는 “편협하고 고지식해서 답답하다”고 비판하지만 돌담병원 외상센터에서만큼은 ‘낭만’이란 불온한 사상을 뿌리뽑고야 말겠다.

차진만 입장은 이럴 것으로 유추된다. 6일 방송될 4회 예고편에선 테이블데스가 실제로 일어날 것으로 보여 차진만의 고집이 더욱 굳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부용주의 추종자인 서우진(안효섭 분)에게서 차진만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부용주식 낭만파의 위기를 예고하는 듯도 싶다.

서우진은 복통을 호소하는 해당 선수를 ‘꾀병’으로 진단, 퇴원시키며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으니 수액이라도 놔주자”는 장동화(이신영 분)의 의견에 “GS가 언제부터 환자스트레스까지 관리했지?”라 타박했었다.

사실 장동화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면 선수는 추락사고를 겪지 않았을 수 있다. 그 선택의 순간에 서우진은 마치 차진만처럼 행동했고 그 죄책감 때문인지 수술하면서는 선수활동까지 고려 ‘신경봉합술 먼저’를 주장했다.

의사라면 최선을 다해도 누구나 환자를 잃을 수 있다. 그 잘난 차진만도 교수실 앞에 “내 아들의 죽음에 대답해주십시오.”란 글귀를 들이미는 보호자를 두고 있지 않은가.

환자를 위한 최선을 고민하는 ‘김사부’ 부용주와 “그러니까 그걸 왜 고민하냐고? 살릴 수순이 이미 정해져있는데”라는 차진만의 갈등은 회를 거듭할수록 심해질 전망이다.

차진만이 본인 독백처럼 볼썽사나운 꼴을 보고 난 뒤에야 너덜너덜 내려놓게 될지, 아니면 예상치 못하게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지가 궁금하다. 아집만 버리면 될텐데 부용주 말처럼 방법이 간단하다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 또 방법이 간단하다고 쉽다는 건 아니니까.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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